면회를 다녀온 지 한 달쯤 지났을 무렵 소대장에게 전화가 왔다. 아들이 면도기를 분해해서 면도날만 따로 보관하다 적발되었다고 한다. 소대장은 사람 좋게 웃으며 별일 없으니 걱정 말고 편하게 면회를 와 달라는 전화였다. 그때 흔들리는 그림자가, 알 수 없는 두려움이 결국 면도날이었구나. 아들은 면도날로 무엇을 하려 했을까?
아들을 만나기 전 소대장을 먼저 만났다. 소대장은 아들과 면담을 통해서 그동안 있었던 일을 다 들었으며 적절한 조치를 취했으니 걱정 말라고 했다. 대대장 역시 이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여 그동안 괴롭혔던 선임은 다른 부대로 전출을 보냈고, 내무반은 계급 별로 될 수 있으면 동기끼리 쓰도록 조치했다고 한다. 나는 내 눈으로 봐야 믿을 수 있다고 내무반 방문을 요청했다. 소대장은 망설이다 어딘가로 전화를 했다. 잠시 후 나는 면회소를 벗어나 소대장과 함께 내무반으로 들어가니 아들이 화들짝 놀랬다. 내가 온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던 모양이다. 나는 내무반을 천천히 둘러봤다. 현대식 건물의 내무반은 침상이 아닌 침대와 개인 캐비닛으로 여덟 명씩 한 내무반을 쓰고 있었다. 캐비닛에는 계급과 이름이 적혀 있었다. 소대장 말처럼 같은 계급끼리 내무반을 쓰고 있었다.
반갑습니다. 민간인이 내무반에 들어와서 많이 놀랬죠? 저는 이 친구 아버지입니다. 여기서 누가 선임이죠?
군인 한 명이 관등성명을 말하며 앞으로 나섰다. 나는 최대한 허리를 굽혀 잘 부탁드린다고 인사를 했다. 그리고 같은 내무반을 쓰는 모든 군인들에게도 허리를 굽혀 인사를 했다. 정신없이 오느라 빈 손으로 왔다며 대신 px에서 맛있는 거 사드시라고 용돈을 선임에게 줬다. 소대장은 그러면 안 된다고 거듭 사양을 했다.
그럼 소대장님, 선임이 아니라 아들에게 용돈을 주면 문제없는 거죠? 여러분 다들 얼마인지 봤죠? 너는 속일 생각 말고, 내가 준 돈만큼 다 써야 한다. 알았지? 그럼 재미있게 회식하십시오.
장병들의 우레와 같은 환호 속에서 나는 아들과 부대를 나왔다.
소대장한테서 면도날 이야기 들었다. 왜 그랬어? 정말 손목이라도...
아니야. 그냥 쇼야.
쇼라고?
괴롭혔던 선임은 전출 가고, 동기끼리 내무반 쓰고 다 좋아졌잖아. 동기들도 다 내 덕분이라고 고맙다고 난리야.
정말 이 모든 게 쇼였다고?
치밀한 작전이었지.
내가 아는 너는 그런 작전을 세울 만큼 똑똑하지 않거든.
아빠가 몰라서 그래, 나 얼마나 똑똑한데.
아들의 흔들리는 눈동자를 바라본다. 정말 쇼였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