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으로 돌아온 나는 며칠을 고민하다 군에 있는 아들에게 편지를 썼다.
아들, 이제 넌 스무 살이 막 넘었지. 믿기지 않겠지만 아빠 에게도 스무 살이 있었어. 지금은 세 번째 스무 살을 기다리고 있지. 그럼 나는 첫 번째 스무 살에 무엇을 했을까? 기억을 되짚어보면 일단 아침에 늦게 일어났어. 아니 오후에 일어났지. 그리고 울었다. 내가 아직 살아있다는 사실에 대한 절망, 끼니를 걱정해야 될 가난의 분노, 그럼에도 살고 싶은 오열, 그런 감정들 속에서 스스로 무너져 가고 있었지.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집을 나섰어. 청량리역에서 미국 사람들이나 사용하는 날이 잔뜩 선 면도칼을 샀어. 기차를 타고 어디선가 내렸고, 기차역 앞에서 버스를 타고 또 어디선가 내렸다. 버스에서 내린 나는 산으로 올라갔어. 산속 작은 암자를 지나쳐 더 깊은 산속으로 들어갔다. 산 속이라 그런지 어느새 해가 뉘엿뉘엿 빠르게 지고 있었지. 그때, 뒤에서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어. 뒤를 돌아본 순간, 스님이 숨을 헐떡이며 올라오고 있었어.
어디 가십니까?
산 너머 마을에 갑니다.
산 너머에는 마을이 없습니다. 어서 내려오십시오.
나는 장발 스님을 따라 암자로 들어갔어. 스님은 작은 암자에서 혼자 공부 중이라고 했어. 저녁 공양을 준비하는 중에 산으로 들어가는 내 뒷모습을 보고 따라왔다며 아직도 숨을 헐떡였지. 스님은 밤이 깊었으니 날이 밝으면 내려가라고 했어. 그렇게 저녁을 함께했고 달이 밝은 마루에 앉아 술도 한 잔 했어. 아직 스님은 아니라고 밝힌 스님은 스님이 되고 싶다고 했어. 나는 무엇도 되고 싶은 것이 없다고 했지. 그때 스님은 혼자 있기 적적하고 텃밭도 일구어야 하니 며칠만 같이 있자며 권했어. 그렇게 일주일을 스님과 함께 보냈다. 암자 앞 작은 텃밭을 가꾸고, 암자 옆 텃밭을 새로 일구었지. 일주일 동안 스님은 별 말없이 일만 시켰어. 스님과 함께 아침, 저녁으로 참선을 했고, 밥을 먹고, 저녁에는 술도 한 잔 씩 했다.
그거 아십니까? 아이가 태어나서 언제쯤 걷는지 말입니다.
보통 돌 지나면 걷지 않을까요?
아이가 기어 다니다 처음 첫발을 걸을 때까지 보통 이천 번 이상 넘어진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첫 발을 떼고 나서 이천 번 이상 더 넘어져야 제대로 걷는다고 하네요.
그렇게 많이 넘어지는 줄 몰랐어요.
우리는 모두 이천 번, 아니 그 이상 넘어져도 일어난 저력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래도 세상이 무섭습니까?
며칠 후, 나는 스님의 배웅을 받으며 집에 돌아왔지. 나는 암자에서 뭘 하고 싶은지 고민을 했고, 집에 돌아와서 지금까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았어. 물론 세상일 다 그렇듯이 하고 싶은 일을 다 하지는 못했지. 그래도 나는 내 형편에서 그나마 비슷한 것을 찾아서 했지. 백 프로 만족스럽지는 않아도 포기하지 않았어. 그렇게 두 번째 스무 살을 보냈고, 이제 세 번째 스무 살을 기다리고 있어. 우리가 지구를 지킬 것도 아니고, 나라를 구할 것도 아니잖아. 나를 지키고, 나를 구하면 되는 거야. 우리는 이천 번 이상 넘어져도 일어선 경험을 가진 저력 있는 사람들이잖아. 부디 군생활 마지막 날까지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지키고, 구하기를 부탁한다.
아들에게 답장이 왔다.
그럼 면도칼은 집안 내력인가? 나라는 못 지켜도, 나는 지킬 테니까 걱정 마세요.
그렇게 아들은 짧은 편지와 함께 이십 개월의 군생활을 무사히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