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그림자

by 윤희웅

첫 면회는 논산 훈련소 퇴소식 날, 짧게 진행되었다. 연병장 그늘에 돗자리를 깔고 준비해온 음식을 먹었다. 이등병 계급장을 반짝이며 아들은 내 앞에 섰다.

인사 안 해? 충성 그런 거 해야지.

충성은 나라에 하는 거지 아빠한테 하는 거 아니거든.

그래도 남들은 다 하잖아.

그래서 더 안 해. 치킨 사 왔어?

치킨 식으면 맛없어 그래서 닭강정 사 왔는데.

항상 아빠 마음대로야. 나는 치킨이 먹고 싶다고, 닭강정 싫다고.

이 놈은 군대를 가도 변한 게 없네.


아들은 같이 먹자는 말 한마디도 없이 닭강정과 피자, 콜라, 김밥 등을 쉼 없이 먹었다.

여자 친구랑 통화 안 해?

내 전화 안 받아.

부대에서 어떻게 전화했어?

훈련 과목마다 1등에게 전화 사용권을 줬는데 세 번인가 1등을 해서 전화를 했는데 한 번은 도서관이라며 다음에 통화하자고 해서 말도 제대로 못 했고, 두 번은 아예 안 받더라고. 까인 것 같아.

너는 그 세 번 중에 적어도 한 번 정도는 아빠에게 전화할 생각은 못했니?

아빠가 내 여자 친구는 아니잖아.


역시 군대는 군대일 뿐, 사람을 변화시키는 곳은 아니었다. 그렇게 짧은 면회를 마치고 아들은 후반기 교육을 받으러 이동을 했다. 두 달의 후반기 교육을 마친 아들은 강원도 홍천으로 배치되었다. 자대 배치 후 한 달이 지나야 만 면회가 가능하며 그 시기는 따로 편지를 주겠다는 연락이 왔다. 그리고 두 달쯤 되었을 무렵 편지가 왔다. 그동안 훈련이 있어서 면회가 금지되었다는 이야기와 면회를 오면 외박이 가능하다는 것과 면회 올 날짜, 하룻밤을 보낼 펜션 주소, 그때 먹어야 할 음식, 간식, 음료까지 다 적은 편지가 도착했다. 부대 앞에서 만난 아들은 나에게 거수경례를 했다.

아빠한테는 충성하는 거 아니라며?

뒤에서 선임들이 지켜보고 있잖아.

저 사람이 선임이야? 그럼 인사 좀 하고 가자.

그러지 말고 그냥 빨리 여기서 떠나. 답답해 죽겠어.


군대가 힘들긴 힘든 모양이었다. 아들은 하룻밤을 보낼 펜션도 이왕이면 부대에서 멀리 떨어진 곳을 원했다. 되도록이면 군인들과 만나고 싶지 않다고 했다. 군대라는 환경보다 그 안에서 같이 생활하는 사람이 더 힘들다는 것을 말 안 해도 알 것 같았다. 나는 미리 검색해둔 목욕탕으로 아들을 데리고 갔다.

목욕은 왜? 나올 때 씻고 나왔어, 안 씻어도 돼.

샤워는 했어도 탕 속에 몸을 담그면 긴장도 풀리고 좋아. 그리고 내 등 좀 밀어라 너 없으니까 등이 간질간질해서 미치겠다.

아들의 등을 밀어주며 곳곳을 살펴봤다. 무릎 근처에 멍과 어깨 주변 살갗이 까져있었다. 여전히 팔꿈치에는 때가 꼬질꼬질 모여 있었다.

무릎은 왜 멍이 들었어? 어깨는 또 왜 까졌고?

군인이 훈련받다 보면 자연히 생기는 거야. 이러려고 목욕하자고 했구나.

내가 어디 다친 곳 없냐고 물어보면 말하지 않을 거잖아. 내 눈으로 확인해야지. 요즘 구타는 없지?

구타는 없고, 얼차려는 간혹 있지.

우리 때는 치약 뚜껑에 원산폭격하고 그랬는데.


아들은 펜션에 도착해서 옷을 갈아입고 귀에 이어폰을 끼었다. 내일 출발할 때까지 말도 시키지 말라는 이야기와 함께 노트북과 휴대폰, 리스트에 적은 간식과 음료수를 들고 방으로 들어갔다. 저녁을 먹을 때 잠깐 얼굴을 봤다. 나는 궁금한 것이 많은데 아들은 그렇지 못했다. 짧은 몇 개월 동안 기가 다 빨린 것 같았다. 속이 허한 허수아비처럼 작은 바람에도 휘청 휘청거렸다. 저녁에 술 한잔 하고 잠깐 잠이 들었을 때, 펜션을 나가는 현관문 소리가 들렸다. 이 새벽에 무슨 일일까 궁금해졌다. 아들의 뒤를 따라 문 밖으로 나갔다. 아들은 벌써 펜션을 벗어나 걸어가고 있었다. 뒤따라 걸을까 하다 그냥 기다리기로 했다. 삼십 분쯤 흘렀을까, 아들이 돌아왔다.

왜, 안 자고 나와 있어?

잠이 안 와서. 너는?

잠자기 아까워서.

힘드니?

그럼 쉬워?

별의별 사람들이 다 있지? 이전에는 사람을 선택해서 만날 수 있었잖아. 싫은 사람은 안 봐도 되고, 하지만 군대는 싫어도 어쩔 수 없이 24시간을 같이 지내야 하니 얼마나 힘들겠니?

이유도 없이 괴롭히는 게 제일 힘들어. 심심해서, 재미있어서 괴롭힌다는데 내가 어떻게 할 방법도 없고 말도 안 통하고 미치겠어.

별 도움은 안 되겠지만 시간이 약이다. 시간은 흘러간다. 그래도 힘들면 아빠에게 이야기해. 방법을 찾아볼게. 너도 잘 알잖아. 아빠가 1인 시위는 잘해.

제발 쪽팔리게 그러지 마.

부대 앞에서 안 하고 국방부 앞에 가서 할게.

정말, 왜 그래? 내가 알아서 해. 걱정하지 마.

알았어 그럼, 국방부 앞에서 안 하고 청와대 앞에서 할게. 그럼 됐지?

아주 신났네.

농담이고, 아빠가 방법을 찾아볼 테니까 조금이라도 힘들면 연락해.


다음날, 부대 안으로 들어가는 아들의 흔들리는 그림자를 바라봤다. 억장이 무너졌다. 제발 별일 없어야 하는데..., 알 수 없는 두려움이 나를 깊게 감쌌다.



keyword
이전 06화아들 군대 가는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