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알코올 중독자가 되었다.

by 윤희웅

새벽 모기 전쟁이 있은 후 나는 아들의 도발을 기다리며 불안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절대 방심하면 안 된다. 무심코 한 작은 실수가 꼬투리가 되어 부메랑처럼 날아올 수 있기 때문이었다. 잔뜩 긴장을 하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긴장한 보람도 없는 조용한 며칠이 지나간 저녁이었다. 저녁 메뉴로 부대찌개를 했다. 말이 부대 찌개지 스팸에 김치를 넣고 끓인 스팸 김치찌개다. 두부와 라면을 넣는다면 감쪽같은 부대찌개가 될 것 같았다. 방에서 뒹굴 거리는 아들을 불렀다.


"아들, 오늘 저녁 메뉴는 부대찌개다. 그런데 애석하게도 두부가 없네. 두부 한 모와 소주 한 병 사 오면 아빠가 행복해질 것 같다. 심부름 좀 해라."

"소주는 왜? 술 좀 그만 먹어."

"화룡정점이라고 할까? 부대찌개에는 역시 소주지. 소주가 빠지면 부대찌개가 아니지."

"슈퍼 아줌마가 젊은이가 매일 술을 마시냐고 뭐라고 한단 말이야. 소주는 싫어."

"소주는 아빠가 마시는 거라고 이야기하면 되잖아."


아들은 카드를 받아 들고 투덜거리며 두부 한 모와 소주 여섯 병을 사 왔다.


"야, 소주 한 병만 사 오라니까 뭐 이렇게 많이 사 왔어."

"일주일치야. 그런데 술이 그렇게 좋아? 술이 맛있어?"

"술이 맛있어서 먹는 사람이 어디 있니? 다 외롭고 슬퍼서 마시는 거지."

"옛날에는 집에서 술 안 먹었잖아. 제발, 집에서 그만 먹고, 밖에서 먹고 들어와."

"집에서 혼자 먹는 술, 나도 싫다. 그런데 어쩔 수가 없어. 같이 술을 먹던 입사 동기들은 하나, 둘 말없이 사라졌지, 그렇다고 후배들하고 술을 먹자니 후배들이 싫어하고..."

"아빠가 꼰대 짓을 하니까 싫어하겠지."

"나도 알아. 그냥 말없이 이야기만 듣고 싶은데 술이 들어가면 나도 모르게 일장연설을 하고 있으니 사실 꼰대가 맞지. 또 문제는 술값이야. 그렇게 꼰대 짓을 하고 술값도 안내면 얼마나 내 욕을 하겠어. 그런데 술값이 장난이 아니야. 다섯 명이 삼겹살에 소주만 마셔도 이십만 원이 훌쩍 넘어. 이차로 간단하게 호프라도 마시잖아 계산할 때 또, 나만 쳐다봐. 그럼 어떻게 해? 또 계산해야지. 그러다 보니까 회사 카드로 먹는 회식이 아닌 이상 술자리를 슬슬 피하게 되는 거야. 경제적으로 타격이 심하니 어쩔 수 없지. 그래서 집에 들어올 때 소주 한 병 사 들고 와서 저녁 먹으면서 한 잔, 뉴스 보면서 한 잔, 그렇게 매일 외롭고 슬픈 술을 마시는 거지."

"그렇니까 아빠 말은 후배들에게 술 사주는 것이 아까워서 집에서 혼 술 한다는 말이잖아. 내가 보기에는 아빠가 외롭고 슬픈 것이 아니라 짠내 펄펄 나는 자린고비 같은데?"

"그래, 아빠는 자린고비다. 너 밥 먹지 마."

"이제 보니까 그냥 자린고비가 아니라 속 좁은 밴댕이 자린고비네."

"시끄러워, 꺼져."

"아, 그리고 집 앞 서울 슈퍼에서는 앞으로 술을 사지 못할 거야. 만약에 술을 사려면 길 건너 삼성 슈퍼로 가야 할걸?"

"왜?"

"그럴 일이 있어. 술 사러 서울 슈퍼 가지 마. 아마, 쪽팔릴 거야."


매일 한 병씩 여섯 병의 소주를 마신 일주일 후, 나는 아들의 서울 슈퍼 금지령을 잊고 퇴근 후 서울 슈퍼에 들어갔다. 콩나물 한 봉지, 두부 한모, 라면, 대파, 소주 한 병까지 간단하게 장을 보고 계산대 앞에 섰다. 서울 슈퍼 안주인은 당황한 얼굴로 소주 한 병을 만지작 거리다 계산대 옆으로 빼는 것이 아닌가?


"사장님, 그 소주 제가 들고 온 거예요. 같이 계산해 주세요."

"죄송하지만 소주는 못 팔겠어요."

"왜요?"

"저 번에 아드님이 소주를 많이 사가서 제가 물어봐죠? 오늘 집에 손님 오시니? 하니까 아드님이 눈물을 뚝뚝 떨구면서 우리 아버지가 알코올 중독자예요. 앞으로 우리 아버지에게 술 팔지 말아 주세요.라고 부탁을 했어요. 얼마나 착한 아들이에요. 그런 아들이 있다니 정말 부럽네요. 아드님 생각해서 술은 이제 그만 드세요."


나는 소주를 사지도 못하고, 동네에서 알코올 중독자로 소문이 나고, 아들은 효자로 소문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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