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이 시작되었다.

by 윤희웅

나는 오랫동안 불면증에 시달려왔다. 아니 지금도 불면증으로 잠을 자지 못하고 있다. 하루를 뜬눈으로 새우면 다음 날은 정신없이 자기도 했다. 당연히 생체리듬은 엉망이 되었다. 몸을 일부러 피곤하게 만들어도 보고 규칙적인 생활을 해봤지만, 불면증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사실 불면증으로 규칙적인 생활이 어려웠다. 수면제를 처방받아먹어도 봤다. 잠을 자기는커녕 온종일 약에 취해서 비몽사몽이었다. 조금 더 센 약을 먹으니 아예, 침대에서 일어나지를 못했다. 차라리 피곤함에 절여 있는 것이 약에 취해 비몽사몽 하는 것보다 났다는 생각을 했다. 약을 안 먹으니 예전처럼 불면증으로 잠을 이루지 못하는 날들의 연속이었다. 침대에 누우면 잡다한 생각이 줄줄이 끊임없이 떠올랐다. 아쉬웠던 장면부터 그때 이 말을 해야 했는데 하는 후회의 순간까지 지난 하루가 아침부터 다시 재생되었다. 침대에 누워 양을 세보기도 했다. 백 마리, 천마리 양들을 세다 보면 날이 밝았다. 밤새 뒤척이며 자리를 바꿔보지만 잠은 오지 않았다. 지금 몇 시인지 시계를 확인하고 싶은 충동이 강렬하게 밀려왔다. 새벽에 출근을 해야 하는데…. 몇 번을 망설이다 시계를 보면 지금 당장 잠들더라도 몇 시간을 잠들 수 있는지 쓸데없는 계산을 한다. 계산한 이후에는 다음날 수면 부족으로 얼마나 힘들까 또다시 고민한다. 유튜브에서 갖은 빗소리를 다 들었다. 그러면서 또 생각한다. 이 영상이 몇십 분짜리인지, 지금쯤 몇 분이 지났을지, 이 영상이 다 끝나고 나면 출근 시간일 텐데 또 걱정한다. 그럼 또다시 지금은 몇 시일까 궁금해진다. 그래도 시계를 보면 안 된다. 눈을 감고, 뒤척이며 억지로 잠을 자야 한다. 방문 밖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아들이 들어와 방에 불을 켰다.


“아빠, 자? 내가 모기 잡았어, 얼마나 내 피를 빨았는지 피가 10cc가 넘는 것 같아. 봐봐”

“네 정녕, 단매에 죽고 싶은 것이냐? 모기 한 마리 잡았다고 불면증으로 잠 못 이루는 아빠를 깨워?”

“봐봐, 진짜 엄청나지 않아. 귀 옆으로 모기가 윙거리며 지나가는 것을 내가 누워서 중국 영화처럼 손을 뻗어 잡았지. 모기를 휴지에 눌러 죽이니까 피가 '팍' 하고 터지는데 세상에 이게 다 내 피잖아. 흡혈귀 같은 모기라도 살생은 안 되는데...,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살생한 손을 씻고, 경건한 마음으로 다시 자야겠다.”


잠깐 선잠을 잔 것 같았는데, 그러다 잠이 들뻔했는데, 단지 모기 하나 잡았다고 방에 들어와 불을 켜고, 말을 시키고, 끝내 잠을 깨우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그렇게 아들은 홀연히 사라졌다. 다시 자려고 노력을 해보지만 잠은 다시 오지 않았다. 일어나 앉아 유튜브에서 모깃소리를 검색했다. 모깃소리가 울리는 휴대전화를 아들 방문 앞에 살며시 놓고 왔다. 잠시 후 아들 방에 불이 켜졌다. 서성이며 혼잣말하는 아들의 목소리도 들렸다. 나는 눈을 감고 잠든 '척'하고 있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십분, 아니 이십 분쯤 방문이 열리며 불이 켜졌다. 아들은 내 침대로 휴대전화를 던지며 선전 포고를 했다.


“분명히 아빠의 도발로 인해 전쟁은 시작됐다. 각오해.”

“어느 누구도 부당한 침해를 감수할 의무는 없다. 나는 정당방위였다. 도발은 네가 먼저 했어.”


여명이 밝아오는 새벽 다섯 시, 그렇게 아들과의 전쟁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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