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놈

by 윤희웅

아들의 첫 번째 아르바이트는 집에서 가까운 복합 쇼핑몰이었다. 아홉 시 출근, 여섯 시 퇴근, 점심시간은 한 시간, 최저임금으로 계산해서 주급으로 받았다. 나는 아들의 첫 사회생활에 불안과 감동이 밀려왔다. 출근 전날 밤 나는 아들과 함께 치맥을 하면서 사회생활의 경험과 아버지로서의 권위를 보여줄 요량으로 일장 연설을 했다.


“스무 살이라는 적지 않은 나이에 사회생활을 처음 시작한 것에 진심으로 축하와 애도를 표한다. 용돈 받아 쓸 때가 좋았다는 생각이 너의 뇌리를 떠나지 않을 것이다. 부디 아빠 돈의 소중함을 배우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사회생활 어려운 거 하나 없다. 다 사람 사는 모습이고, 네가 하기 싫으면 상대방도 하기 싫다는 것만 명심해라. 지금부터 사회생활 잘하는 세 가지 법칙을 말해주겠다. 세 가지 법칙만 지키면 어디 가서 욕은 안 먹는다.

첫째, 시간 약속 지키기. 지각하지 마라. 혹여 시간 약속을 했다면 적어도 오 분 먼저 가 있어라.

둘째, 인사 잘하기. 누구든지 보이면 확실하게 인사를 해라. 대충 고개만 까딱거리면 인사 안 한 것만 못하다. 이왕 하는 인사 제대로 해라.

셋째, 정리 잘하기. 퇴근할 때나 자리 옮길 때 항상 너의 자리는 깨끗하게 정리해라. 내가 안 했는데 하지 말고 그냥 하는 김에 정리하고 청소해라.

이 세 가지만 지키면 너는 절대 욕 안 먹는다. 일이야 잘할 수도 있고, 모르면 배우면 되지만 인성은 가정교육이고, 말해도 쉽게 고쳐지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너는 가정교육도 잘하는 훌륭한 아빠를 둔 것에 감사해야 한다.”

“특별한 거 하나 없네. 다 알고 있거든. 다만 걱정은 일하다 큰소리로 야단을 맞으면 바로 눈물 찍, 설사 팍. 그게 걱정이야. 생각만 해도 아찔해.”

“성인용 기저귀를 추천한다. 기저귀 차고 일해”

"내가 이렇게 된 것이 다 아빠 때문인 것은 알지?"

"미안하다. 내가 거듭 사과한다."


아들이 어릴 때였다. 아이가 실수를 하면 나는 어김없이 큰 소리로 '이놈'을 외쳤다. 아이를 때릴 수도 없고, 그렇다고 말도 잘 못하는 아이에게 일장연설을 할 수도 없었다. 그런데 죽비를 손에 들고 바닥을 내리치며 하는 '이놈'은 효과가 좋았다. 버스 안에서 잠이 든 아들을 깨울 때도, 쇼핑몰에서 칭얼대는 아이에게 주의를 줄 때도 '이놈'을 했다. 그럴 때마다 아들은 눈물을 떨구며 사과를 했다. 아들은 사람 많은 식당에서도, 거리에서도 조용하고 얌전한 아이가 되었다. 나는 이 모든 것이 가정교육이라고 생각했다. '이놈'은 사춘기 시절까지 계속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날도 어김없이 '이놈'을 했다. 아들은 갑자기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이야기를 했다.


"아빠의 '이놈'이 나를 어떻게 만들었는지 모르지? 나는 학교에서 선생님이나 친구들이 큰 소리를 지르면 깜짝 놀라며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 별일 아닌데도 나에게 큰 소리로 성질을 내면 심장이 벌렁거리고, 눈물이 나고, 심하면 설사까지 해."


몰랐다. 가정교육이라고 생각한 '이놈'이 아들을 병들게 만들 줄 정말 몰랐다. 나는 아들에게 사과를 하고 더 이상 '이놈'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아들은 지금까지도 큰소리에 소스라치게 반응을 했다. 아들은 예고 없이 찾아 올 눈물과 설사 걱정에 아침도 안 먹고 일하러 갔다. 퇴근 후, 허겁지겁 저녁을 먹는 모습에 안쓰럽기까지 했다.


“점심 안 먹었어? 천천히 먹어.”

“응, 안 먹었어.”

“왜? 아침도 안 먹고 갔는데 점심은 먹어야지.”

“괜히 설사할까 봐 걱정도 되고, 그리고 점심을 사 먹어야 하는데 점심값이 한 시간 시급이랑 같아. 도저히 돈이 아까워서 못 먹겠어.”

“아무리 그래도 밥은 먹어야 일을 하지.”

“정 배고프면 편의점에서 삼각김밥 사 먹으면 괜찮아.”

“정말 눈물 나게 아르바이트하네. 내가 점심값 줄 테니까 제대로 점심 사 먹어.”

“돈도 돈이지만 일하다 갑자기 설사할까 봐 굶는 거야. 배고픈 거 참을 만 해. 그리고 이제 한 달 남았는데.”

“사람들에게 욕은 안 먹고 다니는 거지?”

“담당 관리자가 언제든지 아르바이트하고 싶으면 오래. 무조건 써준다고, 그럼 됐지?”

“그럼 점심 먹어도 되겠네."

"그래서 간단하게 삼각김밥 먹는다고."

"사람 미안하게 성질은... 참, 주급 받았겠네?”

“받았지. 왜?”

“주급을 받았으면 너에게 첫 월급이잖아. 보통 부모님에게 빨간 내복이나 용돈 정도는 선물하고 그러는 거야.”

“내가 밥까지 굶어가며 힘들게 번 돈을, 아니 코 묻은 아들 돈을 그렇게 뺏고 싶어? 진짜 너무하네.”

“너무한 게 아니라, 보통 부모님에게 지금까지 키워줘서 감사하다 뭐 그런 뜻으로 선물하는 게 오래된 국룰이잖아. 코 묻은 돈 뺏으려는 게 아니라...”

“그 말이 그 말이지. 정 그러면 내가 야식으로 치킨 살게. 그걸로 퉁쳐.”

“사람 치사하게 만드는 제주가 있네. 내가 아들 코 묻은 돈 뺏는 아빠야? 섭섭하다. 섭섭해. 내가 솔직히 선물은 기대도 안 했지만 1인 1 닭만큼은 양보 못 하겠다. 아들, 1인 1 닭 인정?”

"인정. 내가 아빠를 위해 두 마리 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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