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의 호텔 예약 대신해주기

by 윤희웅

1학기, 처음 기숙사 생활을 하는 아들은 매주 집에 왔었다. 여자 친구가 생긴 2학기 이후 아들은 가방 가득 빨래를 담고, 매달 집에 왔다. 한 달에 한 번 집에 온 아들은 정신없이 밥을 먹고, 정신없이 잠을 자고, 정신없이 친구를 만나러 나갔다. 그 바쁜 와중에도 어디까지 진실인지도 모를 데이트 이야기를 하고 용돈을 받아 갔다. 아들의 바쁜 모습을 나는 집사 잃은 강아지처럼 지켜보기만 했다. 일요일 저녁, 분주하게 움직이던 아들이 말을 걸었다.


“아빠, 호텔 예약 좀 해줘?”

“호텔은 왜?”

“금요일에 명동 가기로 했거든. 남산 케이블카도 타고, 돈가스도 먹고, 경복궁 야간 관람도 보고, 종일 놀기로 했어.”

“그런데 왜, 호텔을 가냐고?”

“경복궁 야간 관람이 끝나면 차편이 없어.”

“차 편이 왜 없어? 새벽까지 있어. 걱정하지 말고 집에 와서 자.”

“여자 친구 집이 인천이야. 인천 갔다가 안산까지 어떻게 와. 차라리 명동에서 하룻밤 자고, 다음 날 천천히 올게”

“그럼 여자 친구 집 근처 찜질방에서 자고 아침에 와.”

“지금까지 그랬는데 이번에는 시험도 끝났고 맘 편하게 밤새 놀기로 했어.”

“그럼 서로 이야기가 됐다는 거야? 그 친구 부모님도 알아?”

“외박하는 거니까 말씀드렸겠지.”

“그 말이 아니잖아, 너랑 단둘이서 외박한다는 사실을 아냐고?”

“손만 꼭 잡고 그냥 잘 거야. 걱정하지 마.”

“그런 소리 하지 마. 난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어. 적성 터미널 앞 송림 여관. 나 군대에 있을 때 엄마가 처음으로 면회를 왔지. 그런데 그날 막차 버스가 출발 전에 고장이 난 거야. 그때 어쩔 수 없이 송림 여관에서 엄마랑 손만 꼭 잡고 잤는데 네가 태어났어. 너 아빠처럼 살고 싶어?”

“아빠가 어때서?”

“아빠의 어릴 때 꿈이 22살의 아빠였겠니? 나도 너처럼 꿈이 있었다고, 지금처럼 라면 봉지 만드는 일을 20년 넘게 하는 게 내 꿈은 아니었다고. 그러니까 호텔은 안돼.”

“나도 아빠처럼 살고 싶지 않아. 걱정하지 마. 그리고 손만 잡고 잔다는데 왜 믿지를 못해.”

“너 아빠 무시하냐?”

“그 말이 아니잖아. 암튼 자격지심 절어.”

“알았어, 생각 좀 해보자.”


스무 살이 넘은 성인에게 아버지라는 이름으로 어디까지 간섭을 해야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아버지는 아들이 육십이 넘어도 매일 걱정하는 게 인지상정 아닌가? 그래도….


“아빠가 세상을 너보다 오래 살다 보니까 괜한 걱정만 늘었다. 너도 이제 성인이니까 너의 행동에 책임을 져야 하는 법도 알아야 하고….”

“안 해, 안 한다고. 손만 잡고 잔다는데 왜 믿지를 못해.”

“그럼, 그냥 아빠에게 말하지 말고 네가 알아서 해. 정신 사납게 만들지 말고.”

“나도 그러고 싶은데, 어떤 호텔이 좋은지 아무리 봐도 모르겠고, 예약은 카드만 된다고 하잖아. 아빠가 골라주고, 예약도 해줘. 내가 현금으로 줄게.”

“정말 안 할 거지?”

“에이, 확 해버릴까 보다.”


나는 명동 근처 나름 깨끗해 보이는 침대 두 개짜리 호텔을 예약해줬다.


“십오만이야. 십만 원만 줘.”

“왜? 오만 원은?”

“다녀와서 이야기해주는 조건으로 선지급으로 오만 원 빼준 거다.”

“걱정하지 마, 절대로 안 해. 안 한다니까.”


그렇게 나는 아들의 첫날밤이 될지 모를 호텔을 예약해주고 말았다. 아들은 절대 걱정하지 말라고 하지만 나에게 돌아오는 금요일 밤은 불면의 밤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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