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주 Nov 05. 2023

내가 암환자라는 사실(內)

그저 나로서 살아가는 것

시간이 흐를수록 내가 암환자라는 사실을 잊고 산다. 의식의 저편에서 항상 머물러 있는 사실이지만, 그저 그곳에 그렇게 조용히 내버려 둔다. 회복을 하고 나서는 일부러 더 멀리 밀어두려고 하기도 했지만, 그래야 정말 암에 한 번도 걸리지 않은 것처럼 살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지만, 굳이 내가 그렇게 하지 않아도 시간의 흐름은 그를 점점 희미하게 만들었다.


그러다가 문득 한 번씩 그 희미한 흔적이 뚜렷한 색을 입고 나와 내 의식의 최전방을 두드린다. 날 잊지 말라는 듯이. 그리고 난 오랜만에 자신의 모습을 선명하게 드러낸 이 사실에 적대감이 없다. '그래, 알고 있어.' 굳이 다시 저 멀리로 돌아가라 말하지 않아도, 알아서 시간에 의해 밀려날 걸 알고 있다.


정기적으로 암환자라는 내 신분이 또렷해지는 때는 추적검사를 할 때이다. 치료를 받는 동안 알게 모르게 이상하고도 끈끈한 소속감이 생겨버린 병원을 오랜만에 방문할 때. 마치 명절에 친정집에 내려가는듯한 느낌이랄까. 난 병원에 얼마나 의지하고 있을까? 지극히 일방적인 유대감이란 감정으로 애써 덮어버린다.


추적검사는 혈액검사와 CT촬영으로 이루어져 있다. 익숙하게 키오스크에 내 환자번호를 입력하고 대기표를 받는다. 환자번호는 꼭 제2의 주민등록번호처럼 내 기억 속에 새겨져 있다. 혈관주사를 맞을 때마다 주삿바늘 끝이 피부를 비집고 들어가는 광경을 똑바로 바라보는 무감각한 용기는 몸이 회복되면서 되려 사라진 지 오래다. 그리고 내 혈관들은 항암의 충격에서 꽤 오랫동안 벗어나지 못하고 검사 때마다 자꾸 극구 반항하며 숨어들었다. 너덜너덜해진 혈관들도 경험으로 배우는 게 있나 보다.


병원은 언제나 북새통이다. 병원에 처음 다니기 시작할 때부터 그랬고 지금까지도, 갈 때마다 이 세상엔 환자가 얼마나 많은지 체감한다. 그중 내 눈을 항상 자석처럼 끌어당기는 건 소아암 투병 중인 아이들이다. 보기만 해도 가슴이 아려온다. 그 어린 나이에 내가 알고 있는 고통을 알 게 된다는 건 상상도 하기 힘들어 내 마음을 눈물로 적신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조심스럽게 나의 에너지를 너에게 전달해 꼭 잘 이겨내서 완쾌하기를 간절히 바라는 것뿐이다.


옆을 지나가는 모녀 혹은 자매의 대화를 우연히 듣는다. "그래서 의사가 그러잖아. '암은 아니다'라고."

그 말을 들은 난 속으로 혼잣말을 한다. '오~ 축하해요~ 운이 좋으시네!'  내심 부럽다. 그것만 해도 얼마나 다행인 건지 그들은 알까? 알겠지, 뭐.


CT를 찍을 때 옷을 갈아입는 건 귀찮기 때문에 이미 집에서 고무줄로 된 편한 바지와 노 와이어 스포츠브라를 티 안에 입고 간다. CT를 찍는 게 쉬운 거라는 걸 몸이 어느 정도 회복 되고 나서야 알았다. 항암치료 중엔 정말 애써서 숨을 참아야 했던 적이 있었는데, 지금은 반복적으로 기계를 들어갔다 나왔다 하며 숨을 참았다 뱉었다 하는 행위가 정말 쉽다. CT 촬영은 금방 끝난다. 내가 누워서 손들고 벌서는 모습으로 통 안을 들락날락할 때 유리 창문 뒤 의사는 컴퓨터 모니터에 무엇을 보고 있을까 궁금하다.


검사가 모두 끝나면 일주일 뒤 진료를 보러 간다. 검사 결과를 들으러 교수님을 만나는 날이다. 언제나처럼 '뭐, 이번에도 똑같겠지. 별 거 없겠지.' 하는 마음 뒤편에서 '혹시'하는 마음은 쬐끄만한게 어떻게든 고개를 들어 비집고 나오겠다고 꿈틀댄다. 난 그 자리를 쉽게 내주지 않는다.

예약시간이 있어도 대기시간은 항상 길기만 하고, 앉아있는 시간이 지루하지만 동시에 난 자각한다. 이 시간이 지루할 수 있음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지루함'을 느낄 수 있는 신체 상태가 얼마나 감사한 것인지. 그냥 가만히, 편하게 존재할 수 있는 것에 대한 고마움을 난 잘 알고 있다. 그리고 절대 잊지 않으려 한다.


암이, 암환자라는 사실이 나의 일부가 되어 함께 살아간 지도 3년이 넘었다. 나의 보통날들에 고요하게 숨죽이고 있는 나의 일부. 필요할 때만 가끔 나와서 내 현 의식의 일부분을 차지했다가, 또다시 멀어져 저 구석 한편에 잠잠히 자리하고 있는 일부. 인지는 하되, 무심한 상태. 통제 가능하기도, 가끔 통제 불가능하기도 한 미우나 고우나 어쨌든 나의 일부. 

환자로 살아간다는 것.


매서운 파도와 해일에 가차 없이 휩쓸렸지만 결국 살아남아 잠잠해진 바다에서 따사로운 태양 빛을 받으며 다시 나만의 항해를 하는 것.

사나운 맹수를 조련하여 때론 양 같은, 때론 여우 같은 그와 함께 어떻게든 앞으로 나아가는 것.

그저 나로서 살아가는 것.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