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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주 Nov 18. 2023

나의 유월

암환자 1주년을 기념?하며

<살아가기> 그 후 ,

(6월에 발행하고 싶었지만 그때까지 못 기다려 11월에 발행하는) 2021년 6월의 이야기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 나 오늘 1주년이야."

엄마가 말했다.

"네가 다시 태어난 날이지."



나에게 6월은 여러모로 의미가 있는 달이다.

6월은 나에게 참 복잡한 감정을 준다.



2020년 6월

난소암을 확진받고 내 인생은 180도 달라졌다.

이제 벌써 그 후 1년이라는 시간이 지났고, 공식적으로 암환자가 된 지 정확히 1주년이다.


6월 1일에 전 병원에서 찍은 PET 영상을 가지고 도착한 후, 정말 운 좋게 알게 된 교수님을 처음 뵈었는데, 내 영상들을 보며 "아니, 이렇게 될 때까지 어떻게 모를 수가 있지..." 하시던 교수님의 모습이 생생하다. 그때야 알았다. 생각보다 심각하다는 걸. 그리고 그날 저녁 난 첫 글을 썼다.

6월 4일에 급하게 수술을 받았다. 수술이 이렇게나 빨리 잡힌 건 정말 천운이었다. 아빠는 우리나라에서 부인암 일인자라는 교수님을 만난 것부터, 수술이 가능하고, 빨리 받을 수 있게 된 것 모두 천운이고, 운이 이렇게 계속 따라주는 건 다 내가 잘 나아서 다시 말끔히 건강해질 거라는 뜻이라고 했다.

장장 8시간 반이라는 긴 시간 동안 세 과에서 협진을 하여 수술을 받았다. 모두 나열하기도 힘든 수많은 절제술과 제거술을 통해, 엄마 말대로 정말 난 다시 태어났다.


그렇게 나에게 작년 6월은 내 인생에 너무나도 큰 변화를 가져온 달이었고, 수술과 항암치료 전에는 그저 '내 인생 제2의 전환점'이라고 순진하게 생각했지만, 막상 상상치도 못한 그 지옥 같은, 오직 괴로움으로만 얼룩진 그 시간들을 이겨내며, 나에게 6월은 최악의 달로 자리매김해 버렸다.



2019년 6월

그렇지만 그보다 1년 전, 2019년까지만 해도 6월은 나에게 행운의 달이었다.


석사를 마치고 구직활동을 하던 나에게, 내가 꿈꿔왔던 기관에서 인터뷰 요청이 왔다. 내 열정과 진심을 가장 잘 반영하는 목표를 가지고 관련 사업들을 진행하는 기구였다. 아마 대학교 때부터 이 기관에서 일하는 게 막연한 나의 꿈이었을 거다.

내 진심이 통했는지 운 좋게 그 자리에 선발됐다. 꿈만 같았다. 비록 인턴십이었지만, 그동안 정말 수많은 곳들에 기약 없이 지원서를 넣었었는데, 광대한 경쟁의 무대에서 내가 불가능에 희망을 거는 건가 했는데, 꾸준히, 포기하지 않고 노력하니 정말 되는구나 싶었다.

그 와중에 며칠 뒤 또 다른 곳에서도 연락이 왔다. 이곳은 내가 그렇게 크게 관심을 가졌던 기관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내 커리어에 많은 도움이 될만한 곳이었고, 또 무엇보다도 내가 사랑하는 유럽의 한 도시에 위치해 있었다.

행복한 고민이었다. 내가 가장 일하고 싶었던 기관과 내가 가장 살고 싶었던 도시. 매일 자소서만 두들기던 나에게 이런 두 가지 행운이 한 번에 찾아오다니.


6월이다. 6월은 내 최고 행운의 달이다.

내 커리어의 새로운 장을 열게 됐고, 개인적으로나 전문적으로도 정말 가치 있는 경험을 시작하게 됐고, 새로운 나라, 새로운 도시에서, 내가 꿈꾸던 기관에서 일하며, 배우며, 새로운 삶과 도전을 시작하게 됐다.



2021년 6월

6월은 나에게 뭘까?

나에게 엄청난 선물을 주기도 했고, 또 겪어보지 않으면 그 누구도 가늠할 수 없는 시련을 주었다.


어쩌면 둘 다 선물일지 모른다. 아직 그렇게 생각되진 않지만 (더 먼 훗날엔 그렇게 느껴질까?), 확실히 사람은 고난과 시련 속에서 얻는 게 있긴 있다.

아플 때, 내가 이 경험을 통해 그 무엇을 얻든, 그게 얼마나 귀중하고 대단하고 위대하든, 다 필요 없으니 이 시간 속에 날 두지 말라고 애원했었다. 그게 뭐든, 이런 시간을 감내해야 한다면, 아니, 이 정도의 고난과 시련은 그 뒤에 무엇을 얻든 그 가치가 절대 비례할 수 없다고. 그건 불가능하다고.


그리고 지금도 그 무슨 일이 있어도, 그 무엇을 얻는다 해도, 다시는, 절대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 지금 알고 있는 것들을 알게 되고, 배우게 되고, 그래서 지금의 내가 된다고 해도 돌아가고 싶지 않다.

난 지금의 나를 사랑하지만, 그전에도 사랑했다. 내가 어째서 그런 시간을 견뎠어야 했을까. 뭘 위해서.

그만큼의 가치가 있었다고 느끼는 게 미래엔 가능할까?... 더 살아봐야 알 것 같다.


오늘의 나는, 말 그대로 매 순간이, 1분 1초가 감사의 연속이다.

돌이켜보면 난 정말 많은 점에서 운이 좋았다. 수술이 가능했고, 치료를 시도할 수 있었고, 오늘내일할 생사의 갈림길에 서지 않았고, 그 아무리 험난했어도 계획된 항암치료를 다 마쳤고, 그 뒤에 회복을 정말 잘했고, 모든 과정에 부모님의 엄청난 지원과 사랑이 있었다.


끝이 없을 것 같았던 칠흑 같은 어둠의 터널을 뚫고 다시 세상에 나와, 아무도 보고 환자라고 생각할 수 없는 내가 된 지금, 다시 6월을 기쁘게 맞이한다. 지금처럼만, 이렇게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다면 난 더 바라는 게 없다. 어제가 있었어서 감사하고, 오늘이 있어 감사하고, 내일이 있어 감사하다.


그리고 내가 이렇게 잘 회복하고 잘 지내고 있는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내가 입원했었던 병동에서, 그 병실들에서 병마와 싸우며 힘겹게 하루하루, 일분일초를 견뎌내고 있다는 걸 안다. 그들을 생각하고, 온 마음으로 응원한다. 그 끝나지 않을 것 같은 터널엔 끝이 있다고 감히 말해주고 싶다. 그리고 그 끝에는 어떻게든 화창한 봄날이 기다리고 있다고.


......



6월의 첫 주는 '암 생존자 주간'이다. 아침에 집에 신문이 잘못 와 우연히 새로운 신문을 보게 됐는데, 국립암센터 서홍관 원장님의 짧은 칼럼이 있었다. 전 같으면 그냥 넘겼을 건강 기사나 칼럼들, 특히 암 관련된 것들은 이제 내 얘기가 되어버려 무조건 관심 있게 보게 된다.

"... 암은 아직도 편견과 낙인을 부르는 질병이다. 암 생존자 200만 명 시대에 더 이상 생존자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암 생존자가 건강하게 사회에 복귀하도록 그들이 겪는 신체적, 정신적, 사회경제적 어려움에 귀 기울여야 한다. 정책적 지원뿐만 아니라 암 생존자에 대한 범사회적 관심과 공감대가 형성돼야 한다. 6월 첫 주는 암 생존자의 위상 강화와 인식 개선을 위한 ‘암 생존자 주간’이다. 이제 암 너머 새로운 일상으로 한 발을 내딛는 암 생존자에게 지지와 응원을 보낼 때다."



오늘 글의 결론:

(암환자, 암생존자여도) 용감하게, 자신 있게, 당당하게, 씩씩하게!

신명 나게 살아가자! 파이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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