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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주 Sep 22. 2023

내 나이 만 28세, 난소암을 진단받다.

그날의 기록 #1

지난 2020년 6월, 나는 28세의 나이에 난소암을 진단받았다. 아래는 내가 난소암을 진단받고, 입원과 수술을 앞두고 있던 때에 쓴 글이다.





앞으로의 내 여정에 대해서 기록해놓고 싶고, 많은 사람들에게 관련 정보와 나의 경험담을 공유하며 부디 조금이나마 힘이 되어주고 싶어서 글을 쓰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만 28살 대한민국의 평범한 여자사람이다.

집에서 사랑하는 가족들과 함께 살고 있고, 직장에 다니고 있다. 나는 무탈한, 그러므로 나름 만족스러운 삶을 살고 있었고, 매일에 행복한 순간들이 깃들어 있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그냥 지금이 좋았고, 앞으로도 이렇게 행복하게 하나하나 목표를 이뤄나가며 살 계획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하루아침에 난 암 환자가 되어있었다.



응? 암? 우리가 알고 있는 그 암? 악명 높은 질병의 최고봉 그 암? cancer?

처음에 진단을 받은 사람들은 누구나 그럴 거다. 그냥 믿기지 않고 실감이 전혀 안 난다.

'에이 설마~ 말도 안 돼~'

처음에 진단이 100퍼센트 확실하지 않은 상황에서 안 좋게 보인다는 식으로 얘기를 들으면 오진일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종양이라는 것에 대해 조금 찾아보고, '아, 그럼 나는 양성종양이겠구나, 악성은 아닐 거야.' 난 이렇게 생각했다. 검진 때 이런저런 많은 검사들을 하기 때문에 검사 중간에 그런 기미가 보이면, '아직 이 검사가 남았으니까 이게 그렇게 심각한 게 아니라는 걸 증명해 줄 거야. 생각보다 별거 아닐 수도 있어.' 이렇게 생각했다. 의사가 틀렸을 거라고. 아직 확신하기 이르다고. 더 정확한 검사를 해보니 다른 거였다고.


음... 너보다 당연히 의사가 맞다. 그 많은 검사 중에 하나라도 낌새가 안 좋으면, 몸 안에 암세포가 있을 수 있다는 걸 말해주는 지표가 발견되면, 확률적으로 많이 불리해진다. 나는 평소에 감기도 잘 안 걸릴 정도로 지금까지 건강에 크게 이상이 있었던 적이 없다. 입원을 했던 건 초등학교 때 맹장수술을 한 번 했던 적 빼고는, 그냥 병원을 갈 일이 거의 없었다. 그러니 암이라는 진단은 그냥 황당무계했다. 처음에 사실 별 느낌이 없었다. 그냥 '??????'였다.



대학병원에서 처음에는 소화기내과로 들어가 이런저런 검사를 받고, 난 산부인과로 보내졌다. 이때는 혈액검사, 소변검사, 심전도 검사, X-Ray, 흉부 및 복부 CT까지 마친 후였다. (복부 초음파와 위장내시경은 그전에 동네 내과에서 했다.)


진료실에 들어가 교수님 앞에 앉았는데 교수님이 그러셨다. "젊은 친구네."

그리고 조금 뜸을 들이는 듯하더니 덤덤히 말씀하신다. "저는 암을 보는 사람입니다."

이 말이 힌트였다. 엄마와 같이 있었는데, 엄마는 이때 짐작하셨다고 한다. 반면 나는, '엥? 설마, 뭐 그럴 가능성이 조금 있는 건가?'라고 생각했다. 가능성은 별거 아니라고.


다시 복부초음파와 질초음파 검사를 했다.

심하게 부풀어 오른 왼쪽의 난소와 그 오른쪽에는 암으로 보이는 덩어리가 보였다. 검사 후 다시 진료실로 돌아와, 모니터를 보시던 교수님이 말씀하신다.

"수술 잘해봅시다."

더 정확한 진단과 진행상태 등을 보기 위해 그다음 날 PET(양전자 단층촬영)을 찍기로 했다. 주말이었기 때문에 영상판독이 오는 월요일에나 가능했다. 그리고 가족과 상의 끝에 병원을 옮기기로 하고 퇴원을 했다.



(이때까지 나는 내가 암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PET을 찍어보니 아니더라, 별 거 아니다, 걱정 안 해도 된다, 뭐 그런 말을 들을 거라 생각했다. 근데 나중에 알고 보니 나만 모르고 부모님과 동생은 이미 다 알고 있었다. 교수님이 분명 "저는 암을 보는 사람입니다"라고 첫마디를 뗐는데, 나는 그걸 "암입니다"가 아닌, "암일 가능성이 (조금) 있습니다"라고 받아들였다.

내가 순진무지하게 내 앞에 닥친 위험에 예쁜 색을 칠해 그 심각성을 덧덮으려 할 때, 내 가족은 흘러 무너져내리는 멘털을 간신히 부여잡고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어디서 치료를 받아야 하는지, 날 살릴 방법을 상의하고 있었다.)



전 병원에서 했던 모든 검사 자료를 가지고 아침 일찍 전원 할 병원에 도착했다.

아직 PET 판독은 받지 못한 상태였기 때문에 이게 정말 마지막 희망이라고 생각했다. 이 PET이 오진을 씻어내줄 거라고. 악성이 아닌 양성종양일 수 있다고. 난 아직 어려서 그럴 리 없다고. 생각보다 심각하지 않을 거라고. 수술 한 번으로 말끔해질 수 있는 상태일 거라고. 전날 밤까지 난 아직 조그마한 희망을 놓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교수님은 내 PET 영상을 보 조금 놀라 눈치였다.  "어떻게 이렇게 될 때까지 몰랐지?" 혼잣말을 내뱉으신다.

내 몸은 겉으론 별 문제없어 보여도 안쪽 상황은 좋지 않았다. 몸 안에서 악성종양, 즉 암이 좀 많이 진행된 상태인 듯했다. 모든 자료들을 통합적으로 보기에, 특히 PET 영상을 보기에 난소암 3기에서 4기를 예상하시는 듯했다. 그제야 생각이 들었다. '아.. 꽤 심각한가 보구나...'


계속해서 아닐 거라는, 가벼운 정도일 거라는 희망을 가졌던 나에게 현타가 왔다. 진짜였다. 암이다. 

내가 진짜 암에 걸렸다.

어느 정도 예상은 하고 있었기에, 사실 그전까지의 모든 감정과 생각들이 받아들이는 과정이었던 듯하다. 난 받아들였다. '아, 그렇구나.'


어쩔 수 없는 거다. 이미 생겨버린 거 내가 어찌할 수가 없다. 내가 이 상황을 피하기 위해 할 수 있는 게 없다. 피할 수 없을뿐더러, 피하는 건 의미가 없다. 그렇다고 해서 희망을 저버린 게 절대 아니다. 나의 긍정적인 성격은 이럴 때 특히 빛을 발하는 듯하다. 치료받으면 되는 거고, 이겨내면 되는 거고, 맞서 싸우자. 난 할 수 있다. 난 강하다.


사실 아직도 완전히 실감이 나지는 않는다. 꿈같기도 하고, 이게 진짜 나에게 일어나고 있는 일인가 싶다. 그렇지만 수술이 잘 될 거고, 항암치료도 잘 준비할 거다. 빨리 이 나쁜 놈들을 몸 안에서 떼어내버리고 싶다.



지금까지의 모든 과정 중에, 내가 난소암에 대해 아무런 지식이 없어 검색해서 많이 찾아보고 조금 공부를 했다. 그 와중에 또 유튜브나 블로그에 난소암으로 진단받아 수술하고 항암치료 중이신 분들, 완치하신 분들, 나같이 아직 어린 나이에 그 힘든 여정을 이미 견뎌내고 인내하고 있는 분들을 보며 용기도 얻고, 존경하게 되었다.


아직 MRI 결과가 남아있다. MRI로 더 세밀한 진단이 가능하고, 이를 통해 무슨 종류의 암인지, 어떠한 방식으로 수술과 치료를 진행해야 하는지 결정될 것이다. 또, '진단성 수술'이라고 해서 사실 수술로 떼어낸 악성종양의 조직검사 및 세포검사를 해야지만 가장 정확한 상황을 알 수 있다.



난 항암치료가 가능한 21세기에 태어나서 감사하고, 의료기술이 뛰어난 한국에서 태어나 감사하고, 나를 보호해 주고 응원해 주는 사랑하는 가족이 곁에 있음에 감사하고, 치료받을 여건이 됨에 감사하다. 운이 좋았다.

(내가 이후 항암치료를 하면서 힘듦에 지쳐 무너질 때마다 되돌아와 마음속으로 되새겼던 부분)





무지와 순진함은 때로 사람에게 근거 없는 용기를 준다. 이 당시, 암에 대한 부족한 지식과 정보덕에 이렇게 긍정적인 생각이 가능했다. 물론 무서운 병이라는 건 알았지만, 앞으로 닥쳐올 상상 그 이상의 폭풍을 전혀, 절대로 가늠할 수 없었기에.


그 시간이 다 지나고 읽어봤을 땐, '너 참 순진했구나'라는 생각밖에 안 들었다. 하하. 그래, 그래도 자세가 꽤나 훌륭했다! 그땐 그게 최선이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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