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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주 Oct 05. 2023

대머리 불사조의 서바이벌

그날의 기록 #4

그 힘든 여정을 이겨내고 있는 네가 정말 자랑스럽다.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버텨주는 당신이 정말 자랑스럽다.


"넌 불사조처럼 다시 일어설 거야."





7월을 생각하면... 끔찍하다.

난 7월 10일에 2차 항암을 위해 입원했고, 그다음 날 바로 퇴원했다. 난소암은 기본적으로 항암 약제를 탁솔(Taxol)과 카보플라틴(Carboplatin)을 쓰는데, 각각 3시간, 1시간씩 맞는다. 그래서 불행 중 다행으로 1박 2일이면 항암약물치료가 끝난다. (약제 투여 전 항암이 가능한 상태인지 검사를 해야 하기 때문에 하루 전 입원한다.) 어떤 암이냐에 따라 쓰는 약제가 달라지고, 쓰는 약제에 따라 항암치료가 2박 3일 또는 3박 4일이 될 수 있다.



삭발

입원을 해서 우선 머리를 밀러 병원 미용실에 갔다.

이때는 아직 제대로 걷지 못했고 오래 (7층 병동에서 지하 미용실까지 왕복이 이땐 굉장히 긴 거리였다) 걷기가 힘들었기 때문에 엄마가 휠체어를 밀어줬다.

내 생에 첫 대머리. 하하. 머리가 없는 내 모습이 어떨지 궁금했다. '괜찮아, 머리는 다시 자라니까 괜찮아!'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였다.


근데 막상 머리를 밀기 시작하니, 머리에 흰 살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하니 눈물이 났다. 뭔가 공식적으로 아픈 사람이 되는 것 같았다. 이마에 '암환자'라고 쓰이는 것 같았다.

울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설마 울겠냐고 생각했었는데, 눈물이 나더라. 참았다. 울기 싫었다. 괜찮다, 괜찮다, 나에게 주문을 걸었다. 이 정도로 울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다시 자라니까 괜찮다고. 이건 별거 아니라고.


밀고 나니 두상이 생각과 달리 괜찮아 보였다. 뒤통수가 납작할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고, 엄마아빠에게 두상이 예쁘다고 칭찬을 받았다. 하하. 그나마 다행이었다(?)

이렇게 공식적으로 환자가 되었다. 대머리가 처음 되면 더 어려 보이는, 아기같이 보이는, 동자승같이 보이는 효과가 있다.



난소암을 치료하는 위의 두 항암제들은 특히 다른 약제들보다 부작용이 심하다고 들었다. 항암 약제는 몸속에 (남아) 있는 암세포들을 최대한 죽이기 위해 정맥에 3-4주 간격으로 투여되는데, 문제는 이 약제가 나쁜 암세포만 공격하는 게 아니라, 몸속 정상세포들까지 공격한다. 그래서 항암을 하면 면역력이 많이 떨어져서 일반 사람들보다 더더욱 조심해야 한다. 가벼운 감기라도 한번 걸리면 훨씬 더 큰 타격을 받을 거다. 이 시국에 코로나 바이러스는 일반 사람들에게 보다 항암을 하는 환자들에게 더 엄청난 위협이다.

또, 정상세포들이 독한 약제들의 공격을 받아 각종 부작용이 발생한다. 그에 굴복하지 않도록, 맞서 싸울 수 있도록 몸을 만들어줘야 한다. 그래야지만 버티고 이겨낼 수 있다. 그래서 항암약물치료를 받으면 정말 중요한 두 가지가 있다. 무조건 잘 먹어야 하고, 운동을 열심히 해야 한다. 여기서 말하는 운동은 보통 사람들이 하는 헬스 같은 운동이 아니라, 단순 <걷기>다. 걷기 운동이 가장 좋다고 한다. 그리고 먹는 건 거의 제한하지 않는다. 무엇이든 좋으니 '열심히' 잘 먹으라고 한다.

(*날 것, 한약재, 홍삼, 산삼, 각종 다린 즙, 고농축액 제외)



지옥의 시작


항암치료를 받고 퇴원 후 일주일이 지났다.

외래가 예약돼 있어 병원에 갔는데, 나를 본 교수님은 곧바로 날 입원시켰다. 나는 휠체어에 겨우겨우 앉아있는 상태였다. 휠체어에 앉아있는 것도 힘들었다. 난 마치 거의 죽어가는 애처럼 보였다.

항암치료 후 일주일간 집에 있으면서 하루 종일 구토를 했다. 입으로 들어가는 것들은 거의 다 토해냈다. 헛구역질도 지겹도록 했다. 당연히 아무 기운도 없고 힘도 없어 일어나지도 못한다. 뭘 먹든, 뭘 마시든 몸속으로 흡수되는 게 없다. 여러 번 구토하느라 안 그래도 없는 힘을 다 쓴다. 힘들어서 일어나 앉을 수도 없다. 앉아서 상체를 지탱할 힘이 없다. 속이 계속 비어서 위가 쓰리다. 가슴이 조여 온다. 기운이 없으면 말할 힘조차 없다. 말을 아낀다. '속삭임'으로 밖에 목소리가 안 나온다.


하루는 가정간호사를 불러 영양제 주사를 맞았다. 자꾸 구토를 해서 아무것도 먹고 싶지 않았고, 음식, 음료 섭취 없이 그냥 주사만 맞고 싶었다. 하지만 주사로 연명하는 건 불가능이다. 게다가 뭐라도 먹어야 영양제 주사도 효과가 있단다.



다시 입원을 했고, 엑스레이를 포함한 이런저런 검사들을 했다.

딱히 문제가 없었다. 이렇게까지 심하게 구토를 일으킬만한 병적 원인이 없었다. 물론 몸속에 큰 문제가 없는 건 정말 다행이지만, 부모님은 그래도 안심했지만, 원인이 없다니 난 너무 답답했다. 그저 부작용인 거라니...

근데 아무리 그래도 그 정도가 너무 심했다. 입원을 해서도, 항구토제와 울렁거림 약을 계속해서 맞아도, 똑같았다. 음식 거부반응이 너무 심해져 병실 TV에서 음식이 나오면 그게 어떤 음식이든 꼴도 보기 싫었고, 병원 급식차가 복도를 지나가는 소리, "식사 나왔습니다~" 하는 소리만 들어도 구역질이 났다. 음식 냄새만 맡아도 토했다.

이미 내 급식은 취소해 뒀다. 먹질 못했기 때문에 마실 것들 위주로 마셨는데, 마시는 대로 거의 다 토했다. 요구르트, 두유, 주스... 심지어 목이 너무 말라 물을 좀 마시면 그 물도 토했다. 와, 정말이지 죽을 맛이었다. 항암치료를 하면 복용해야 하는 약도 수 가지가 되는데, 그중 반드시 먹어야 하는 더 중요한 약 몇 개만 먹으려 해도 그것도 토했다. 결국 약 먹는 걸 중단했다. 시도 때도 없이 울렁거리고 속이 안 좋았다.

하루 종일 하는 일이 '마시고 토하고 지쳐 쓰러지고'였다.



6월 초 수술 전보다 15kg이 빠졌다. 불과 한 달 반만의 일이다.

난생처음으로 말라졌다. 급격히 변한 나의 모습이 낯설었고, 두려웠고, 보기 싫었다.

내 증상의 뚜렷한 원인을 찾지 못한 교수님은 정맥주사약 종류를 바꿔가며 써보자고 하셨고, 효과가 있는 걸 찾아야 했다. 이렇게까지 부작용이 심하게 나타나는 원인이 지금까지 살면서 이런저런 약에 노출이 거의 안 돼서, 항암제 같은 독한 약에 몸이 더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단다. (살면서 아픈 적이 별로 없어서 약을 먹을 일도 없었다.)

나만 이런 건지, 어떤 사람들은 멀쩡하게 항암하고 다니던데, 난 왜 그러는 건지, 난 왜 이렇게까지 힘든 건지, 고생하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고 슬펐다. 뭔가 나한테 문제가 있는 것 같았고, 뭔가 잘못된 것 같았다.



그렇게 2차 항암을 하고 나서 한 2주 반 동안 매일 몇 번씩 구토를 하며, 거의 먹지 못하고 살았다. 끔찍했다.

입원한 지 일주일이 좀 넘으면서 구토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바꾼 약이 듣기 시작했다. 밤에 스테로이드제를 맞으면 바로 잠이 와서 전보다 훨씬 빨리, 편하게 잠들 수 있었다. 그래서 난 이 약 맞는 걸 좋아했다. 잠든 지 두세 시간 뒤에 깨더라도...

하루에도 몇 번씩 하던 구토가 하루에 세 번, 두 번, 한 번으로 줄었다. 이제 먹는 대로, 마시는 대로 토하지 않았다. 병원에서 파는 유기농 우유 아이스크림도 먹었고 (부드럽고 입에서 녹아버려서 먹기가 아주 편함), 죽도 한두 숟가락 먹기 시작했다.

'아, 이제 좀 살 것 같다' 하니 3차 항암을 할 시간이 다가왔다.

정말 정말 하기 싫었다. 최대한 미루고 싶었다. 약제를 맞으면 어떤 고통과 고생이 기다릴 줄 잘 알면서, 또 똑같은 상황이 반복될까 너무나 두려운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맞아야 한다. 항암을 하기가 정말 싫었다. 그냥 안 하고 살면 안 되나, 그게 언제 까지이든.



동기부여


한 번은 옆자리에 엄마와 어린 딸이 들어왔다.

당연히 엄마가 환자고, 딸을 돌봐줄 사람이 없어 어쩔 수 없이 데려왔나 보다 생각했는데, 어린 딸이 환자복으로 갈아입는 거다. 고작 10살 된 어린 여자아이였다.

'소아암 병동에 자리가 없어서 여기로 왔나...'

알고 보니 그 아이도 난소에 종양이 크게 자라 있었고, 수술을 하기 위해 입원한 거였다. 이렇게나 어린아이가 난소에 종양이 생겼다니... 아직 난소가 다 자라지도 않은 상태였다.

너무 안타깝고 슬펐다. 아직 양성인지 악성인지 모르는 상황이었고, 수술을 통해 진단이 될 예정이었다.

아이 수술 전에, 무슨 말이라도 해주고 싶어서 "그냥 자고 일어나면 돼~ 잘하고 와~"라고 말해줬는데, 아이는 어린 나이에 비해 씩씩했다.


수술을 끝내고 다시 병실로 돌아온 아이는 울지도 않았고, 엄마를 보채지도 않았고, 떼를 쓰지도 않았다.

아플 텐데... 정말 씩씩하고 착한 아이였다. 조금씩 열심히 운동하라는 의사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아이는 엄마와 함께 병동 복도를 열심히 걸었다. 하기 싫어도 엄마 말을 참 잘 들었다. 처음에는 보조대를 잡고 겨우 한 걸음 한 걸음 뗐는데, 점차 걸음도 빨라지고, 자세도 좋아지고, 스스로 걸을 수 있게 되었다.


그 아이를 보며, 저렇게 어린아이도 아픔을 딛고 일어서는데, 씩씩하게 이겨내는데, 거의 스무 살이나 많은 내가 못하면 부끄러운 일이었다.

옆에 그 아이가 있음으로 해서 나에게 큰 동기부여가 되었다.

있는 힘, 없는 힘 쥐어짜 한 번이라도 더 운동(병동 돌기) 하려 했고, 한 바퀴라도 더 돌려고 했다. 내가 모범이 돼서 이겨내는 모습을, 씩씩한 모습을 보여줘야 했다. 그나마 병원에 있으면서 계속해서 영양제를 포함한 각종 주사를 맞아 조금이라도 걸을 힘이 있었던 것 같다.


아이가 퇴원할 때가 되어서 뭐라도 주고 싶어 자판기에서 과자를 뽑아 주었다. 집에 가면서 먹으라고, 너무 착하고 예쁘다고, 잘 회복할 거라고.

엄마와 잠깐 운동을 나간 사이에 아이가 퇴원을 했다. 내 침대엔 쪽지 하나가 남겨져 있었다.

[ oo언니 과자 고맙습니다. 잘 먹겠습니다♡ 언니 건강해지세요. ] (언니라고 해줘서 고마워)

이 아이는 절대 나만큼 아프지 않기를, 어린 나이에 큰 고통을 알 일이 없기를, 너의 쾌유와 건강을 진심으로 바란다.

(잘 지내고 있겠지?)



처음 입원했을 때에 비해 많이 나아진 나는 3차 항암을 받고 퇴원했다.

'이제 좀 살 것 같다' 싶을 때, 교수님이 회진을 돌면서 내가 외래 왔을 때 다 죽어가는 애처럼 와서 깜짝 놀랐다고 했다. 지금은 좋아 보인다고, 앞으론 괜찮을 거라고.

이 말을 믿고 싶었고, 믿어야만 했다. 제발 그러길 바랐다. 다시는 이런 경험을 하고 싶지 않았다. 절대로.



이렇게 내가 많이 아프면 나뿐만 아니라 엄마도 많이 고생을 한다. 입원을 하면 보호자로 계속 엄마가 함께 있는데, 좁디좁은 간이침대에서 불편하게 매일 밤을 자야 하고, 새벽에 내가 깨서 화장실을 가면 같이 가줘야 하고 (잘 못 먹으면 소변량을 기록해야 한다), 구토를 할 때마다 비닐봉지를 받쳐줘야 하고, 또 어디라도 묻거나 흘리면 닦아야 하고, 묻은 환자복도 갈아입혀야 하고, 그런 와중에 또 뭐라도 먹을 걸, 마실 걸 챙겨줘야 하고, 그 외에도 해야 할 일이 수없이 많다. 그리고 그런 엄마 없이 난 살 수가 없다. 갓난아기처럼 모든 걸 다 해줘야 한다. 혼자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어서 정말 다시 아기가 된 기분이고 무력해진 기분이다.

엄마가 고생하는 게 너무 속상하다. 그렇지만 엄마는 하나도 안 힘들다고 말한다. 너만 나으면 된다고. 너만 괜찮으면 된다고. 그럼 엄마는 아무렇지도 않다고.




나의 7월은 그렇게 지나갔다.

그냥 죽도록 토한 기억밖에 없다. 어쩔 땐 몸속 장기가 다 나올 것 같았다. 토하는 게 이렇게 힘든 건지, 진이 다 빠지는 건지 처음 알았다. 그리고 살면서 이렇게나 기운이 없던 적도 처음이었다. 못 먹으면 죽는구나 깨달았다.


7월은, 2차는, 항암제에 '완패'였다.

약은 미친 듯이 날 공격했고 난 준비가 안 돼있었다. 맞설 여력이 전혀 없었고 그대로 빠르게 무너졌다. 감당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다음 항암치료를 받고 같은 일이 반복될까 봐 너무도 두려웠다.

'항암을 꼭 해야 될까. 안 하고 그냥 자연의 섭리에 맡기면 안 될까...'라는 생각에서 벗어나게 해 준 건, 난 자식이 저지를 수 있는 가장 큰 불효를 저지르고 싶지 않다. 무슨 일이 있어도 엄마 아빠보다 하루라도 더 살아야 한다. 완치돼야 한다. 완치될 것이다.





사실 지난날의 기록으로 되돌아가 그때를 회상하며 가필하는 것은 나에게 어려운 일이다.

다시는 경험하고 싶지 않은 그날들을, 다시는 느끼고 싶지 않은 그날의 감정들을, 자발적으로 되새기는 것. 꽤나 잘 아문 상처를 다시 뒤집어 헤집는 것. (면역아 생겨라!)


이때의 글이 특히나 나에게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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