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칠 댄스 – 청색동경 (青色東京)
요즘 자주 방에 혼자 있어요.
꼭 무기력한 건 아닌데, 몸을 일으키기엔
조금 더 이유가 필요한 그런 날들.
창밖은 점점 더 뜨거워지고 있는데,
내 마음은 마치 바닷속처럼 고요하고 차가워져요.
괜찮은 척, 잘 지내는
척을 자꾸 하게 되는 하루 끝에서 이 노래가 들려왔습니다.
팔칠 댄스의 〈청색동경〉.
처음엔 J팝스러운 느낌에 그냥 평소에 듣던 노래인 줄 알고
눈감고 노래를 듣다가 중간쯤 벌떡 일어나서 브런치를 켰습니다.
지금 이감정 그대로 쓰지 않으면, 인생의 절반을 후회할 것 같아서요!
기타 루프에 몸을 맡겨서 글을 써 내려가보려고
해요 오늘도 같이 해주시겠어요?
'여전히' 잘 부탁드려요 이번글도!
약속이 없으면 좀처럼 밖을 나가지 않는 저를,
마치 누군가가 끌고 나가주길 바라는 마음 같았어요.
어디든 가고 싶은데, 정작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는 이 방 안에서
아침의 무력함은 저를 조용히 잠식해 옵니다.
이불속은 참 따뜻하고 편안한데,
그 안에서 피어오르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은
그 따뜻함과 너무도 대비되어
더 아프고, 더 선명하게 저를 갉아먹습니다.
가사 속 이 한 줄이 참 좋았어요.
지금 내 방은 침대 하나, 책상 하나, 늘어진 커튼 하나뿐인데
이 노래가 흐르는 순간, 파도 소리가 나는 것 같았거든요.
차가운 바람이 발끝을 스치고
아무 말 없이도 편안한 눈빛들이 이 방 가득 퍼지는 기분.
“작은 방을 나만의 해변으로 개조해”라는 말,
그건 어쩌면 현실 도피가 아니라
현실을 견디는 나만의 방식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요즘은 자기 자신을 드러내기가 참 어려워요.
부끄러워서라기보단, 그와는 조금 다른 감각이에요.
눈치를 보게 되는 걸까요?
아니요, 어쩌면 우리가 사는 문화가
'눈치'를 너무 쉽게 강요하는 것 같아요.
이 정도는 해야지.
그 나이면 이 정도는.
그 위치면 그 정도는.
수많은 '정도' 앞에서 점점 숨이 막혀와요.
사람들이 짜놓은 궤적 위를
벗어나지도 못하고 그대로 달리고 있을 때—
한 걸음,
딱 한 걸음만 그 궤적에서 벗어나도
숨이 조금 편해지는데 말이죠.
우린 사람이니까,
자꾸만 이렇게 생각하게 돼요.
‘너도 나와 같은 마음이겠지.’
그런데, 또 우리는 사람이니까
굳이 그렇게 하지 않으려 애쓰기도 하죠.
마음은 여전한데,
어제와 오늘도 다르지 않은데,
이상하게도
참 많이 이해받지 못하고
그만큼 또, 이해받고 싶어 하네요.
결국 이 불편한 상황 속에서
나는 웃음으로 불길한 기운을 지워보려 해요.
마치 어린양의 울음소리를 흉내 내듯,
메에에— 하고 어설프게라도.
그렇게라도 버텨보려는 거죠.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 침대 속에 혼자 누워 있는 지금,
그리고 아무도 없는 이 방 안에서 느껴지는 감정이
마치 고요한 바닷속에 가라앉아 있는 느낌과 닮아 있어요.
중력이 나를 짓누르는 게 아니라,
오히려 천천히 나를 감싸 안아주는 것 같은 기분.
차갑고도 두려운 바다인데도,
지금은 그 차가움조차
조용히 나를 안아주는 위로처럼 느껴집니다.
결국 이 노래가 말하고 싶은 건,
‘지금 이 방을 떠나라’는 걸까요?
아니면 충분히 쉬었으니
이제 다시, 그 고요했던 궤적을 벗어나
불편하지만 현실인 일상 속으로 나아가보자는 말일까요?
정확히 어디로 가라는 말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분명한 건 지금 이 상태로 계속 머무르진 말라는 거겠죠.
머물렀던 방에서,
움츠렸던 마음에서,
잠시 멈춰있던 궤적에서
이제는 한 걸음 나아가야 할 때 인지도요.
오늘 퇴근길, 이 노래와 함께하고 싶어요.
고생한 저에게 위로가 될까요?
아니면 내일을 조금 더 기대하게 해주는, 그런 멋진 곡이 될까요?
사실 저도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네요.
일단 어지러운 제 '해변'부터 치워야겠어요.
어제로부터 도망쳐 나왔던 잔해들이
침대 위부터 바닥까지, 아주 난장판이거든요.
오늘도, 저와 함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에도 같이 듣고 싶은 곡이 생기면
조심스럽게 또 들고 올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