쏜애플 – 낯선 열대
여러분은 매년, 앓는 계절이 있나요?
저에게 여름은 늘 버거운 계절입니다.
단순히 덥고 습해서가 아니라,
선풍기 하나에 의지해 보내는 하루하루가
참 기운 빠지고, 외로워서요.
에어컨이 있지만, 전기세가 걱정돼
리모컨을 쥔 손만 망설이다
결국 선풍기 앞에서 입을 벌리고 짜증만 내죠.
조금만 방심하면 상해버리는 음식처럼,
여름은 모든 것을 버거워지게 만듭니다.
그래서 이 계절을 좋아하기란,
저에겐 늘 쉽지 않았어요.
심지어, 이상할 만큼
저는 항상 여름에 이별을 겪습니다.
급하게 이직을 하거나,
갑작스레 다른 곳으로 전배를 가거나
그리고는,
지역을 옮겨서
아는 척조차 미안해진 남이 되어버리는 사람들.
우리는 그렇게 조금씩, 말없이 흩어졌습니다.
그래서 여름은
무덥기만 한 계절이 아니라,
언제나 나를 앓게 만드는 계절이 되었습니다.
나를 두고 떠난 사람들,
내가 놓친 말들, 그리고 남겨진 나.
그 모든 걸 떠올리게 만든 노래가 있습니다.
쏜애플의 낯선 열대.
네, 오늘의 곡입니다.
“어질어질 길 따라 아른아른 달 따라”
여름은 해가 늦게 집니다.
그래서일까요.
해가 지는 걸 놓치고 나면,
마치 순식간에 어둠이 들이닥친 것처럼 느껴져요.
그래요.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어두컴컴한 길 위를
아른아른한 달빛 따라 걷고 있습니다.
길을 따라가고 있지만,
어째선지 길을 잃은 기분이에요.
그리고 그 막막한 감정이
여름밤의 열기처럼
쿡쿡, 마음을 찔러옵니다.
참 더운 밤이에요. 밖도, 마음도.
“쓸데없이 건강한 쓸모없는 사람들
거리에서 끼리끼리 입을 맞추네”
지친 마음을 억지로 끌고 나간 어느 여름밤,
거리엔 손을 꼭 맞잡은 연인들이 넘쳐납니다.
한여름의 열기 속에서도,
그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웃고,
땀도 감정도 아무렇지 않다는 듯 걸어가죠.
그 모습을 보며 이유 있는 질투를 남발합니다.
심지어 공원 쪽으로 발길이 닿는 날이면,
이 더운 날에 러닝까지 하시는 분들이 눈에 띄어요.
정말, 쓸데없이 건강하네요.
정말요.
... 나는 이렇게 아픈데.
“네가 대신 아파줘
그럼 나는 살 거야”
... 일단, 살아야 해요.
그래야 다음이 있으니까요.
이렇게 죽고 싶진 않으니까요.
불편함을 느낀다는 건
어쩌면 변화가 시작된다는 신호일지도 모르지만,
문제는, 지금 이 상황에서
무엇을 해야 할지 전혀 모르겠다는 점이죠.
그래서 결국
제게 이 감정을 느끼게 한 사람을
미워하는 쪽으로 기울어집니다.
아주 단순하고, 아주 무식하고
... 그리고,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는 방식으로요.
“그래도 어떤 이는 약을 건네주었네
삼키는 척하다 이내 뱉어 버렸어”
이유 없는 동정이 싫어서,
괜히 자존심을 부려봅니다.
아니, 사실 그건 동정이 아니었어요.
하지만, 배려조차 받아들일 수 없을 만큼
날카로워진 마음으로 결국 또,
같은 실수를 반복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겠다고
분명 다짐했었는데 말이죠.
그런데 늘 그렇잖아요.
언제나, 한 번이 어려울 뿐
두 번은 점점 쉬워지니까요.
“이를 우짤꼬? 이를 우짤꼬? 이를 우짤꼬?”
사실, 알고 있습니다.
정답을요.
... 알죠.
이 정도 나이 먹었으면, 알아야죠.
그런데도
편한 쪽으로 자꾸 기울어요.
늘 해오던 방식이니까요.
그러고는 또 스스로를 탓합니다.
“왜 또 그랬을까.”
그렇게
변화를 미루는 동안,
마음은,
조금씩 더 무뎌져갑니다.
"오늘은 누구의 목숨도 내겐 의미 없는
힘겨운 열대의 하루"
사람들은 살아가고,
나는 그 자리에서 여전히,
그 속에서 여전히
점점 감정이 말라갑니다.
"내가 앓았던 낯선 열대
그대가 나를 두고 간 열대"
다시 되뇝니다.
마치 나를 기억해 내듯,
마치 당신을 잊지 않겠다는 듯.
잊고 싶어 하면서도,
결국 찾아내서 또 기억하듯.
"내가 앓았던 낯선 열대
그대가 나를 두고 간 열대"
그 계절은 다시 돌아오고,
그 여름도 언젠가는 잊히겠죠.
... 그렇게 믿으며,
오늘도
선풍기 앞에 앉아
당신을 조금씩, 잊어보려 합니다.
낯선 날씨에
매년 그 체감 온도를 갱신하는 여름.
온도 때문인지,
마음 때문인지 모를
짜증과 열이 동시에 올라오던 계절이죠.
그때 또 당신이 문득 떠오릅니다.
참 밉습니다.
바람 한 점 없는 그 여름날처럼,
묘하게 나를 숨 막히게 만들던 사람.
오늘따라, 너무 그립네요.
이게... 당신을 기억하고,
미워하는 방법이었나 봐요.
그래요. 그만 미워하기로 하죠. 우리.
... 아니, 보월.
앞으로 나아가야지. 이제, 꿈에서 깨어나야죠.
“모두가 꿈을 꾸는
나만 깨는 열대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