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은 무엇이 되었다고 주어지는 선물이 아니었다.
중학교 2학년 때쯤인가 친구들과 꿈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했다. 요즘과 다르게 원하면 뭐든 될 수 있다고 생각한 좋은 시절이었다. 긍정적이고 순진하여 현실 감각이 없었기에 나는 선생님이라고 말했다. 친구들은 뭐라고 말했는지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데 나처럼 현실에 근거한 꿈은 아니었던 것 같다. 왜냐하면, 나는 30명 중에 반에서 25등 또는 27등 정도를 꾸준히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나는 선생님이 된 모습을 자주 상상하며 웃었다.
선생님이 편하게 책 하나 들고 왔다 갔다 한다고 생각했으니까…. 잡무보다 더 무서운 심리적 압박감에 시달리는 걸 그때 알았다면 선생님이 되었을지 모르겠다. 지금은 선생님을 하면서 행복한 직업인이 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많은 이들이 알게 된 것 같다. 선호하는 직업순위도 곧 내려갈 것 같다. 15년 전에 첫 발령을 받은 나는 선생님이 되었으니 이제 행복 시작이라고 믿었다.
순진한 내 생각이 깨지는 데는 한 학기가 채 걸리지 않았다. 의자에 앉아 있는 학생을 찾는 게 어려웠을 때다. 자거나 누워있거나 돌아다녔다. 나중에 그 시간을 지나고 ‘2010년 학교붕괴’를 분석한 자료들을 보게 되었다. 1997년 IMF로 경제 파탄이 가정에 영향을 주었고 이혼율이 증가하고 가족이 해체되는 사회적 환경 속에서 자란 아이들이 이제 사춘기가 되었던 시기라고 했다.
매스컴에 보도된 수많은 사례들을 직접 경험하면서도 믿지기 않는 현실이었다. 수업시간에 아이들이 엎드려 자는 모습, 수업시간에 교탁 옆에서 핸드폰을 충전하며 누워있는 모습은 어느 한 학교의 모습이 아니었다. 도저히 말을 듣지 않아 차라리 자라고 말하며 느낀 자괴감이 아직도 가슴에 남아있다. 아이들도 자신을 이해하기 어려웠겠지만 가장 힘들고 괴로웠던 것은 무능감을 느껴야 했던 선생님들일 것이다. 첫해 만난 아이들이었기에 나의 충격은 더 클 수밖에 없었다.
선생님만 되면 행복할 줄 알았는데…. 이제 돌고 돌아 선생님이 되었는데 한동안 충격과 막막함에서 벗어나기 어려웠다. 꿈에 부풀었던 교직 생활은 무기력하고 좌절감을 맛보는 하루하루였다. 임용고시를 준비할 때 현직 선생님들이 공부할 때가 제일 좋을 때라고 말했던 것을 실감하게 되었다. 앞이 깜깜했다. 가장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은 내가 행복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그 이유 중에 가장 큰 것은 아이들이 내 말을 듣지 않는다는 것이다. 더 정확하게는 앞에서 듣는 척하고 행동으로는 옮기지 않는 것이다. 교사로서 리더십이 없다는 것은 영향력이 없다는 말과 같다. 내용 없는 찐빵처럼 허깨비 같았다. 발령을 받고 이제 고생 끝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제 고생할 자격을 받은 것 같았다.
엄마가 되어 육아 책을 섭렵하며 진짜 엄마가 되어 가는 것처럼 비로소 선생님 되어 삶에서 필요한 진짜 공부를 시작하게 되었다. 만남과 배움, 치유와 성장에 대한 공부가 시작되었다. 사범대 4년을 무엇을 배웠는지 의구심이 생길 만큼 나는 아는 것이 없었다. 사람을 만나는 일도, 성장을 돕는 일도, 상처를 위로하는 것도 너무 서툴렀다. 아이들과 만나고 살아가는데 필요한 공감과 소통이 무엇인지 배우기 위해 진짜 공부를 시작하게 된 것이다. 이것이 교사라는 직업이 주는 선물이 아닌 가 싶다.
선생님이 아니었다면 지금도 누가 만들었는지도 모를 기준에 맞춰 살아가기 위해 전전긍긍했을 것이다. 그렇게 누가 입혀 놓은 것인지 모를 타인의 가치와 기준을 내 것인 양 알고 있었을 것이다. 아이들이 스승이고 거울이라는 말이 맞는다. 솔직하고 자유로운 아이들은 나에게 선생님이었다. 내 마음의 걸림을 있는 그대로 보게 만든다. 아이들의 모습에 화가 나고 위축되고 좌절하는 내가 있다. 아이들 탓을 하며 욕하는 것으로 교사 생활을 할 수 없었다.
선생님이라는 갑옷, 권위가 사라진 지금은 아이들과 나란히 서 있다. 아이들에게 배우고 성장하는 교사가 되기 위해서 나도 마음의 준비가 필요했다. 가르치는 대로 내가 살아갈 마음의 준비 말이다.
(사례)
국어선생님이 ‘공감하는 말하기’ 주제를 수업하면서 화장실을 간다는 학생에게 ‘쉬는 시간에 뭐 했어!’라고 했다고 치자. 지식의 접근성은 아이들이 더 높아졌다. 교사에게 요구되는 것은 지식을 어떻게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가는지, 어떻게 함께 협력해 가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 나에게 먼저 적용해 보아야 한다. 나의 삶의 태도를 돌아보아야 한다. ‘네가 원하는 게 뭐야?’라고 물어보며 아이들의 성장을 돕듯 나에게도 ‘내가 원하는 게 뭐지?’라고 질문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가르치는 대로 내 삶에도 주인이 되어 가는 삶을 살아갈 진솔함이 필요하다. 그렇게 어쩔 수 없이 작고 부족한 나도 아이들에게 보여주며 살아가게 되었다. 이 모든 건 교사이기 때문에 시작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