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제롬 Oct 26. 2024

두려움: 왜 자꾸 나를 따라오니?

상담주제: 두려움

공감교실을 주제로 새 학기 워크숍 강의를 마치고 집에 가는 길이었다. 나무언니는 첫째 아들이 군대에 가고 일 년간 인도 여행을 다녀온 후였다. 하고 있던 일들을 모두 멈추고 떠나는 용기가 있는 멋진 사람이다. 내가 아는 가장 자유로운 영혼이고 리더십 있는 사람이다. 나무 언니는 같이 참여하고 있는 글쓰기 모임에 올라온 내 글을 보고 전화를 했다. 글에서 무의식을 만나고 싶어 하는 게 느껴졌다고 뜬금없이 말했다. ‘우주야~ 이제 무의식을 만날 때가 되었나 봐~ 너무 반가데이~’

 

그러고도 1년 후 마그마 힐링 연수에 참석했다. 도안에 자유롭게 칠하면 된다. 이 간단하고 쉬운 방법으로 내면의 감정을 만나는 게 된다. 정신 차리고 살아도 될까 말 까인데 미술치료에서 말하는 ‘자유롭게 색칠하라’는 말은 나에게 가당치도 않았다. 그림을 통해 마음을 치유할 수 있다는 것은 나에게 사치 같았다. 마음공부의 시작도 인지치료였던 것도 나의 성향이 반영된 선택이었다. 비합리적 신념을 찾아 분석하고 알아차리는 것은 시원하고 분명하게 느껴졌다. 나에게 잘 맞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는데 나의 불안은 없어지지 않았다. 10년을 이렇게 열심히 했으면 나아질 줄 알았다.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이 되었다. 모든 공부를 멈추었다. 

 

엄밀히 말하면 멈추었다는 것은 지금까지 하던 방식을 멈추었다는 것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어렵다. 새로운 방법으로 글쓰기를 시작하였다. 뭔가를 하고 싶은 욕구가 있지만 강의나 모임을 중심으로 하는 것은 긴장이 계속되었다. 관계에서 오는 긴장과 부담, 상대의 판단에서 벗어나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착각이었다. 더 많은 자기 검열이 있었다. 글을 쓴다는 것이 이렇게 힘든 것인 줄은 몰랐다. 나를 온전히 만나는 것은 상담이나 글이나 매한가지였다. 칼 융은 만다라 미술치료를 자신에게 적용하고 그 효과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이후 자신을 찾아오는 내담자에게 적용하게 된다. 융은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이라고 한다. 이 시기 미술치료를 소개한 나무 언니 덕분에 나는 의식 너머의 세계를 알게 되었다. 이후 트라우마 치료, 내면가족체계치료, 감각운동심리치료, 몸동작치료 등을 접하게 되었다. 

 

만다라 수업을 하는 첫 시간이었다. 촉진자는 ‘이제 도안은 내 마음이에요. 일상생활에서는 마음대로 할 수 없을지 몰라도 여기 이 종이는 내 마음이니까 내가 마음대로 할 수 있어요. 자유롭게 색을 칠해보세요.’라고 했다. 나는 색을 칠하는데 도안의 선을 넘을까 조심스럽게 칠하고 있었다. 답답하고 마음에 안 들어 그냥 넘나들고 싶었지만 마음처럼 안되었다. 선을 넘으면 안 된다는 생각, 잘 칠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이 종이 위에 칠하는 것도 내 마음대로 못한다는 생각을 하니 눈물이 났다. 촉진자 나무 언니는 ‘그래, 눈물이 나재. 우주야 울어라~’ 그 말에 더 눈물이 났다. 한참을 울고 나니 좀 마음이 가벼워졌다. 선을 조금 넘어봤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조금 더 넘으려 했는데 한 바닥을 막 칠해버렸다. 좀 후련했다. 마치 세상을 내 맘대로 막 산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10권의 만다라 워크북을 과제로 받아왔다. 다음 연수 전까지 모두 칠하고 버리고 오는 것이다. 나는 검은색으로 칠하기 시작했다. 다른 색을 칠하려고 해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다시 검은색으로 칠하고 다음날도 검은색으로 칠해야 시원했다. 그렇게 10권을 모두 검은색으로 칠했다. 하면서 괜찮을까 싶고 걱정이 되었지만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게 제일 잘 작업하는 거라는 말을 믿으며 하고 싶은 데로 검정칠을 했다.

 

두 번째 연수 날이 되었고 나는 약간의 설렘과 좋아하는 나무 언니를 만난다는 것에 신이 났다. 함께 연수에 참여하며 장소를 제공하기로 했던 선생님이 갑자기 아파서 예정된 장소에서 작업이 어려워졌다. 숲에 있는 조용한 모델을 장소로 정하고 골방에 틀어박혀 심오한 작업을 하듯 그렇게 집중하며 작업을 하게 되었다. 나는 검은색이 계속 칠해진다고 하며 작업을 했다. 나무 언니는 괜찮다고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했다. 다음 만다라 작업에서 검은색 그림자 같은 2개의 그림이 나왔다. 시간이 늦어서 잠을 자고 다음날 작업을 이어가기로 했다. 

 

그날 밤 꿈을 꾸었다. 자주 꾸던 꿈이었다. 검은 그림자가 나를 쫓아오는 꿈이다. 할머니가 떠나고 늘 꾸던 꿈이라 또 꾸는구나 싶었다. 꿈에서 나는 여전히 도망가고 높은 첨탑으로 도망가다 떨어지는 꿈이다. 떨어져도 죽지 않고 바닥에 부딪혀 뼈가 부러진 느낌을 느끼고 나면 더 이상 지쳐 아무것도 못하게 된다. 그러면 꿈에서 깨곤 했다. 

 

이번 꿈도 그렇게 검은 그림자가 다리도 없는 것이 공중에 떠서 전설의 고향의 귀신처럼 빠르게 쫓아온다. 가슴이 쪼아 들고 온몸에 소름이 돋고 발이 떨어지지 않지만 그대로 도망을 가려고 애를 쓴다. 그런데 꿈을 꾸고 있는 나도 도망가려고 애쓰는 나도 느끼고 있는 내가 있다. 보고 있다. 아까 잠들기 전에 만다라 작업을 할 때 그렸던 검은 형체 2개와 비슷하게 느껴진다. 더 도망가지 말고 그냥 뭔지 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매일 도망가니 너무 힘들고 죽지도 못하고 고통을 느끼는 것도 너무 힘들다. 귀신이면 그냥 나를 잡아먹고 끝냈으면 좋겠다. 이제 좀 끝 봄 내자. 뭐 그런 마음으로 확 돌아섰다. 왜 자꾸 쫓아와!라고 소리치고 싶었다. 나에게 그렇게 다가온 게 무엇인지 처음으로 돌아보았다. 

 

검은색이지만 가까이 보니 금색 망토를 하고 있었다. 더 가까이 보니 귀여운 모습의 어린 곰돌이 푸와 눈사람을 섞어 놓은 듯한 얼굴을 한 그런 요정 같은 뭐 그런 형태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에게 말을 걸었다. ‘왜 그렇게 도망을 가. 너 힘들지 말라고. 외로워하지 말고 무서워하지 말라고 우리가 온 거야’라고 말하였다. 그렇게 한 명은 외로워하지 마, 그렇게 한 명은 무서워하지 말라고 말하였다. 이게 뭐야! 왜 그랬어. 왜 검은색으로 왔어. 나는 너무 무서워서 도망갔잖아. 매일 도망만 다녔잖아. ‘나도 알아 네가 너무 빨리 가니까 우리 빨리 쫓아간 거지. 너무 도와주고 싶었단 말이야. 네가 혼자 있지 않게. 우리가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잖아!’ 새벽에 꿈에서 깼다. 

 

이 놀라운 경험을 나무 언니에게 말하고 싶어서 꾹 참고 언니가 빨리 일어나길 기다렸다. 언니가 일어났을 때 속사포처럼 꿈을 말하였다. 이럴 수가 전날 작업하며 그랬던 그냥 2개의 검은색 물체가 이렇게 꿈으로 연결되고 이제야 꿈의 의미를 알게 되었다. 나는 늘 혼자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어. 외로울까 봐 무서울까 봐 늘 나를 걱정하고 있었어! 내 마음 안에 있었던 아주 예쁜 애들을 30년이 넘어서 이제야 만났다. 이제까지 기다려 줘서 너무 고마워. 이제라도 만나서 너무 좋았다.

 

연수를 마치고 나는 낮에 혼자 있는 것도 자유롭다. 밤에 불을 끄고 자도 불안하지 않다. 불을 끄고 누운 까만 배경에서 오는 편안함을 처음 느꼈다. 이 어둠 속에서 차분하고 고요하게 온전한 휴직을 하는 느낌이 들었다.

이전 05화 분노:나한테 사과해! 미안하다고 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