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제롬 Oct 29. 2024

두려움은 꿈에서 형체를 만든다

매일 밤 쫒아오던 것은 절망이 아니라 희망이었다.


초등학교 6학년때 엄마를 대신해 키워주시던 할머니가 미국으로 이민을 가셨다. 미국에서 선교사로 살던 큰아버지가 할머니를 모시고 싶어했다. 큰아버지는 ‘이제 너희 가족은 너희들이 스스로 살때다’ 라는 말을 했다. 할머니가 언제까지 희생하며 너희 가족을 책임지냐. 이렇게 엄마가 집으로 돌아오지 않는건 할머니가 있기 때문이다. 할머니가 안계시면 엄마도 돌아올 거다..라고 말했다. 나는 그 말이 말도 안된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말을 하는 큰아버지는 내 말로 변할 것 같지 않았다. 엄마는 할머니가 떠난 후에도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할머니가 떠나고 집에 돌아온 날 세상이 멈춰져 있었다. 아빠와 오빠는 마루에 걸터 앉아 있었고 해가 뉘엿뉘엿 지어 갈색빛이 마루에 드리워져 있었다. 나는 아무 느낌이 들지 않아서 기뻤다. 할머니가 떠나고 남겨졌을 때 고통스러울 것 같았고 나는 그것을 감당하지 못할 것을 알았다. 그래서 매일 매일 준비했다. 아무것도 느끼지 않게 해야지. 아무것도 느끼지 않아야 해. 나의 다짐은 효과만점이었다. 정말 아무감정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것이 나를 살게 하였다. 문제는 그 뒤로부터 지금까지 그렇다는 것이다. 사별한 친한 동료의 사연을 들었을 때도 나는 멍해진다. 점점 주변에 이런 일들이 생기니 난처해진다. 내가 슬픔에 공감하고 있다는 리엑션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나는 정작 멍하고 아무 생각도 느낌도 들지 않는다. 


헐머니의 이민이 남긴 것은 또 하나가 있다. 그 뒤로 꿈에 검은 그림자가 나오는 것이다. 꼭 유령같기도 하고 귀신같기도 한데 나는 정면을 바라보지 못해서 정작 정확히는 뭔지 모르겠다. 나는 밤마다 두 개의 검은 형체가 빠른 속도로 따라오면 도망갔다. 죽을 힘을 다해 뛰어 가장 높은 곳으로 올라갔지만 이내 따라 잡히곤 했다. 늘 같은 꿈이다. 결국 뛰어내리고 바닥에 부딪혀 뼈마디가 부러지는 느낌을 느낀 뒤에야 꿈에서 깼다.


꿈에서 같은 생각을 했다. '차라리 죽는게 나은데 죽지도 않네. 죽었다면 이 고통이 없을텐데..' 이것이 현실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꿈은 중간에 깨는 법이 었었다. 온몸으로 이 고통을 느낀 다음에야 깼다. 바닥에 부딪혀 뼈마디가 부러진 느낌을 느끼고 난 후 차라리 죽지도 않고 고통을 느끼는 것에 무력감이 몰려왔다. 아무리 노력해도 바꿀 수 없다는 회의감과 무력감은 뼈속 깊이 아니 영혼 깊이 박혀버렸다. 지금까지 나의 발목을 잡는다.


 몇 년 전 만다라미술치료과정에서 나의 무의식에 있던 두 그림자를 만나게 되었다. 만다라미술치료 작업은 원하는 도안을 선택하고 그위에 마음껏 색을 칠하는 방법이다. 한달동안 검정색만 칠하며 작업이 되더니 연수날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낮에 한 만다라 작업에서 우연히 검은 두 그림자가 나왔다. 그날 밤 연결되는 꿈을 꾸었다. 꿈에 오랜만에 두 그림자가 따라왔다. 나는 이제 더 도망갈 힘도 없이 지쳤다. 그냥 멈춰서 뒤를 돌아섰다.



너 도대체 누구니?

왜 나를 따라오니?


꿈에 나온 유령같은 검은 그림자들과 35년만에  대화하다.


꿈에서도 내가 꿈을 꾸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뒤 돌아 검은 그림자를 보고 있는 나.


그것을 보고 있는 또 다른 내가




 ‘너 무슨 용기가 있어 멈추니?



이런 말들을 하며 보고 있는 내가 있었다. 멈춰선 나의 자리로 다리도 없이 귀신처럼 공중부양하여 따라오던 검은 그림자가 점차 다가왔다. 두손을 꽉쥐고 나는 그대로 서있었다. 더이상 도망가며 살순 없었다. 점점 가까워 오니 그 그림자는 황금색 망토를 하고 있었다. 가까이 오니 얼굴형체도 있었다. 얼굴도 쳐다보았다. 만다라 미술치료의 분야인 마그마힐링에서는 몽이라는 명칭을 쓴다. 몽이는 무의식이 의식으로 나와 꿈을 실현해 주는 상태를 나타낸다. 딱 몽이처럼 생겼다. 두명의 몽이는 나에게 말하였다.




왜 그렇게 빨리 도망을 가.

너는 혼자가 아니라고 말해주려고 하는데.

우리가 항상 니 곁에 있다고 외로워하지 말라고 말해주려고 하는데...






빛하나 없는 어둠속에서 느껴지는 고요함을 알게 되었다. 어둠을 이불삼아 눈을 감고 있으면 고요하고 편안했다. 불을 키고 잤던 내가 이제 불을 끄고 자게 되었다. 신기하고 새로웠다. 내가 미쳐 알지 못했을 뿐이지 나는 이미 온전했음을 알게 되었다. 이 온전함을 느낄 마음과 눈이 필요했을 뿐이었다. 이제야 알게 되었지만 이제라도 알게 되어 다행이다.



이전 06화 두려움: 왜 자꾸 나를 따라오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