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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롬 Oct 26. 2024

정남이, 은지 그리고 나

우리는 서로 닮아 있다.

정남이와 은지가 유난히 기억에 남는 것은 나의 이야기이기도 해서이다. 엄마와 아빠는 내가 기억도 못 할 아주 어릴 적에 이혼과 별반 다르지 않은 별거를 하였다. 나는 할머니 손에 자랐다. 어떤 날 엄마처럼 키워주던 할머니께서 이민을 가신 것은 초등학교 6학년 때 일이다. 또 한 번 버려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지만 울거나 슬퍼하는 것이 부끄러웠다. 비참한 내 마음을 들키고 싶지 않아서 괜찮은 척 씩씩하게 굴었다. 버려진 기분이 너무도 비참해서 울 수가 없었다. 울면 친구들도 사람들도 내가 비참하다는 걸 다 알아 버릴 것 같았다. 

 

어떻게 이별을 마주하고 슬픔을 표현해야 할지 몰랐다. 그때 가족이나 친척들도 나처럼 몰랐던 것인지 아무도 괜찮냐고 너무 힘들지 않냐고 물어보지 않았다. 나는 하늘이 무너진 것 같지만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행동하려고 노력했다. 그렇게 태연한 듯 나를 대하는 모습에서 나도 그 일은 잊고 괜찮은 척하면서 살아야 한다고 생각한 것 같다. 그렇게 아무것도 느끼고 싶지 않았던 것은 큰 힘을 발휘했다. 지금까지도 이별에 무감각하다. 이것이 문제라고 인식한 것은 몇 년 전 친한 선생님이 남편과 사별했을 때이다. 나는 사별한 선생님을 떠올려도 아무 감정이 들지 않았다. 그때 할머니와의 이별이 남긴 문제를 인식하게 되었다. 

 

나는 관계에서 오는 갈등을 이해하기 위해 상담을 배우게 되었다. 처음에는 그랬다. 아이들과의 공감과 소통이라는 것이 기술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므로 전문적으로 배우고 싶었다. 아이들을 바꾸고 싶었던 것이지 내가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못했는데 실습과 체험으로 이루어진 상담 연수라는 게 내담자 상담자가 따로 있지 않았다. 그렇게 연수의 대부분 시간을 내담자로 상담을 받게 되었다. 

 

아이들 덕분에 진솔하게 나를 돌보는 과정이 시작되었다. 그 과정에는 정남이 같은 마음도, 은지 같은 상처도 나에게 깊게 자리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착한 사람이 되고 싶었던 이유도, 착한 사람이 되어야만 했던 이유도 하나씩 찾아가게 되었다. 상담은 자기 개방으로 시작하고 자기 수용으로 마무리가 되는 것 같다. 자기를 마주한다는 것은 이제 아물어 덮어진 상처를 헤집는 것과 같다. 어떤 상처는 그 긴 시간이 지났음에도 그대로 있었고 어떤 상처는 성글게 매워져 있기도 했다.

 

트라우마는 아주 특별한 경험을 한 사람들이 겪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평범한 듯 보이지만 내가 그런 특별한 사람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나의 여러 증상들이 트라우마 후유증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할머니와 이별하고 1년이 넘게 악몽을 꾸었던 일이나 어둠이 무서워 낮에도 불을 켜고 있는 것이나 어른들이 어렵고 무섭다는 등등 사는 게 피곤하다. 어려움이 많다. 

 

참 다행인 것은 상처가 크다고 크고 거창한 방법이 필요하지 않다는 거다. 큰 상처든 작은 상처든 깨끗하게 아물게 하는 방법은 참 공통적이고 쉽다는 것이다. 감정코칭 전문가 연수에서 최성애 박사님이 상처받은 아이들에게 해주면 좋은 공감의 말을 3가지로 소개해 주셨다. 나에게 위로가 된 것처럼 아이들에게도 위로가 될 것이다. 

 

‘그랬구나, 그럴 수 있어.’ 

 

부모님의 이혼을 경험한 아이가 환하게 웃고 있다면 그건 페이크일 가능성이 크다. 나는 이별에 슬퍼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고 다음 날 웃으며 다녔다. 그 웃음에 아무도 ‘너 슬프지 않아? 괜찮아?’라고 물어봐 주지 않았다. 그래서 헤어지면 빨리 잊고 그냥 웃으면 되는 줄 알았다. 이별을 애도하는 방법을 몰랐다. 그렇게 자라고 나니 이별을 견디지 못하거나 무감각해졌다. 슬퍼해야 할 때 눈물이 나지 않았다. 은지도 나도 헤어지는 게 너무 힘들다고, 다시 못 볼까 봐 너무 무섭다고 소리라도 질렀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어떤 큰 어려움도 지나고 나면 다 작아진다는 것을 알고 있다. 선생은 말 그대로 先生, 먼저 태어난 사람이다. 먼저 태어났으니 먼저 경험해 보았다는 의미도 된다. 긴 위로나 무거운 책임이 필요하지는 않다. 관심을 표현해 주면 된다.

 

두 번째 말은 ‘말해줘서 고마워’이다.

 

불안과 죄책감은 원초적인 감정이다. 아이들은 부모님이 함께 살지 않는 것도 할머니의 이민도 모두 자신의 잘못으로 받아들인다고 한다. 내가 잘못해서 이런 일이 생겼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어린아이가 타인의 잘못이라고 느끼게 된다면 세상은 안전하지 않기 때문이다. 차라리 자신의 잘못인 것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내가 더 사랑받을 만하지 못해서 이런 일이 생겼다고 생각한다. 나도 철석같이 내 잘못이라고 생각을 했다.

 

‘할머니가 이민하셨다고 들었어. 너에게는 엄마 같은 분이셨을 텐데.. 지금 심정이 어떨지 짐작하기가 어려워. 지금 어때?’ 그 어떤 대답에도…. ‘그렇구나, 말해줘서 고마워’라고..

 

그리고 마지막 말은 ‘이 일은 너의 잘못이 아니야.’라는 말이다.

 

영화 ‘굿윌 헌팅’에서 숀(로빈 윌리암스)은 윌(맷 데이먼)에게 말을 한다. 어린 시절의 상처로 인해 마음을 열지 않는 윌에게 말을 한다. ‘너의 잘못이 아니야!’ 처음에는 가볍게 넘기며 윌이 말한다. 숀은 윌의 눈을 보며 한 번 더 말한다. ‘너의 잘못이 아니야!’ 윌은 숀교수의 눈을 피하며 알았다고 말한다. 윌이 태도에서 수용하지 않고 넘기는 것이 느껴진다. 숀은 윌의 눈을 보고 또박또박 분명히 말해준다. ‘너의 잘못이 아니야’라고. 윌은 감정이 폭발한다. 숀교수를 부둥켜안고 소리를 지르며 운다. 의붓아버지의 성폭력도 자신의 탓으로 생각하듯 어린아이들은 자신의 잘못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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