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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롬 Oct 26. 2024

아주 보통이 삶

보통은 가장 쉬운 것이 아니라 어려운 것이었다.

‘슈퍼맨이 돌아왔다’를 자주 본다. 언젠가 사유리가 출연하는 것을 두고 KBS 홈페이지에는 출연을 반대하는 글들이 한바탕 쏟아졌다. 그 이유는 공영방송 프로그램에 정상가정이 아닌 비정상 가정의 모습이 나온다는 것에 반대한다는 것이었다. 씁쓸하면서도 나도 그런 기준을 가졌는지 돌아보게 되었다. 

 

내가 생각하는 정상, 보통의 삶도 엄마, 아빠가 있는 가정이었다. 엄마, 아빠가 있는 집에서 같이 밥을 먹고 같이 잠을 자고 같이 tv를 보는 삶이 보통의 삶이라는 생각을 했다. 나는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그런 보통의 삶을 살 수 없었다.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이유였기 때문에 살아간다 것이 그만큼 막막하고 두려웠다. 일상에 드리운 막연한 동경과 그리움, 두려움과 외로움이 함께 있었다. 이런 일상이 정상이라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의 삶을 아주 특별한 것이라고 여겼다. 이상하고 결핍된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의 꿈은 보통의 삶을 사는 것이었다. 이것을 꿈이라고 말할 수 있냐고 묻는 사람도 있을 것 같다. 건강을 잃은 사람은 건강함을 꿈꾸듯 나에게도 그런 의미였다. 어쩌면 이것 말고는 내 인식 안에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보통의 삶을 살기 위해서 부단히 노력했다. 경험한 적이 없으니 어디로 가야 이룰 수 있는지 얼마큼 노력해야 만들 수 있는 것인지 몰랐음에도 늘 애를 썼다. 열심히 하는 방법밖에 몰랐다. 일을 하면서 공부했고, 공부하면서 일을 했고, 일을 하고 또 다른 일을 더 했다.

 

나의 보통의 삶이라는 말에는 완벽하게 만들어진 인조장미와 같은 것이었다. 사회적으로는 성공해야 하는 것이었고 일을 잘하는 것이었고 관계가 따뜻해야 하는 것이었다. 세상 좋은 것은 다 담아 놓은 것였다. 이게 내가 생각하는 ‘보통의 삶’이었다. 내가 정한 보통의 삶이라는 기준에서는 늘 부족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부단히 노력하고 애써야 하는 내가 있었다. 해도 해도 끝도 없는 길이였다.

 

나는 인조장미처럼 항상 아이들에게 친절하고 웃는 따뜻한 선생님이 되고 싶었다. 그런 모습이 아주 보통의 선생님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것이 이렇게 힘들 줄 몰랐다. 자주 짜증이 났고 화나고 답답했다. 이런 내가 너무 부족한 것 같아 숨기느라 더 애가 쓰였다. 집에 가면 탈진한 듯 꼼짝도 하고 싶지 않았다. 아들이 말을 덜어도 문 닫고 나가라고 했다. 학교에서 화를 많이 참은 날에는 집에서 폭발하는 일도 자주 있었다. 이런 일들이 반복되면서 자괴감이 들었다. 학교라는 무대에서 선생님 역할을 하고 돌아온 느낌이었다. 

 

이제 보니 보통의 삶에는 좋은 것과 나쁜 것이 함께 있는 것이었다. 잘할 때도 있고 못할 때도 있는 게 너무 당연한 보통의 삶이었다. 잘하는 모습으로만 서 있으려던 부담감이 내려가니 가벼운 마음이 들었다. 아이들에게도 잘하지 않아도 되고 과정이 중요한 거야 라는 말을 진심으로 할 수 있어서 좋다. 모든 게 다 도움이 되고 지금 이 순간이 중요한 거야라는 말을 내가 나에게 먼저 해준다. 보통의 삶이라는 게 그렇게 나를 찾아가기 위한 시도이고 여행 같은 것이었다. 배낭을 메고 걸어야 하는 순례길에서 최소한의 것만 넣어야 하는 것처럼 삶을 살아가기 위해 최소한의 기준만 필요하다. 내 짐도 아닌 남이 준 짐까지 내 가방에 넣어 메고 다닐 필요 없다. 

 

나로 산다는 게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시도해 본다. 늘 좌충우돌한다. 내 마음을 먼저 표현해 보는 수업도 해보았다. 아무리 아이들이라도 해도 사람과 사람 간의 일이 기 때문에 서운할 때가 있다. 수업이 시작했는데도 계속 떠드는 아이에게 ‘네가 내 말을 무시하는 것 같아서 속상해’라는 말을 툭해버렸다. ‘그래서 나는 화가 나!’라고도 덧붙였다. 아이들은 어떻게 반응했을까? 선생님이 왜 그래요? 뭐 그렇게 속으로 말한 아이도 있고 순간 멍하니 무슨 상황인지 살피는 아이도 있었고 그랬다. 우리 모두 새로운 상황 속에서 어리둥절했던 것 같다. 심지어 나도 준비되어 있지 않았다. 몇 초의 침묵이 흐르고 ‘야 조용히 해! 선생님 속상하시다잖아!’라는 소리가 들렸다. 이제 숨이 조금 쉬어지는 것 같았다. 숨도 쉬지 않고 있었던걸 알았다. 조금 괜찮은 척했지만 이제 속내를 보였다. 나도 지금 말하고 놀랐다 야.. 너네도 참지 마.. 선생님처럼 사고 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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