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학교 일진 정남이 이야기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아이가 있다. 한 해에도 몇백 명의 아이들을 만나지만 어느 순간은 사진처럼 마음에 남아있다. 정남이는 두 번째 학교에 가서 만난 통합학급 비장애 아이였다. 이른바 우리 학교 일진이었다. 중학교 3학년의 정남이는 마치 말년 병장 포스가 느껴졌다. 순진한 중학생처럼 치고받고 싸우지도 않으면서 모든 사건사고와 연관되어 있었다. 나이와 어울리지 않게 지능범이라는 것을 선생님들은 모두 알고 있었다.
다양한 갈등이 생길 때 정남이의 이름이 계속 거론되고 있었고, 이번 싸움에는 정확히 정남이의 지시로 때린 거라는 말이 나와서 면담을 안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런 일이 선생님들에게 얼마나 스트레스를 주는지 아마 정남이는 모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정남이가 교사가 되어 딱 너 같은 학생을 꼭 만나면 좋겠다. 사고 치던 그 마음을 충분히 이해할 테니까.
나는 특수학급 담임으로 우리 반 아이가 피해 학생이라는 말을 듣고 3학년 교무실에서 정남이를 마주하게 되었다. 교무실에 들어올 때부터 심상치 않은 태도로 들어온다. 그 모습을 보는 담임선생님은 이미 말하기도 전에 뚜껑이 열린 듯 보였다.
담임 : ‘원석이 하고 준이하고 싸운 거 알고 있지?’
정남이 : ‘네’
담임 : 원석이가 네가 시킨 거라고 하던데 맞아?
정남이 : 아니요.
이쯤 되면 이건 1시간 상담으로 끝날 일이 아니다. 삼자대면해야 하고, 대면한 상태에서 말을 하기 어려워하는 피해학생들을 위해 짧으면 두세 번 나누어 상담을 해야 한다. 담임선생님의 목소리가 심상치 않다.
‘너 이게 한두 번도 아니고 나도 이번에 그냥 안 넘어가!’
‘아~ 씨. 저 아니라고요!’
나는 보는 것만으로 기가 쪽쪽 빨리는 기분이 들었다. 우리 반 아이가 맞았기 때문에 모른 척할 수가 없었다.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고 하던가.
솔직히 나는 이런 막무가내 아이들이 무서워서 특수교사가 되었다. 첫 시작은 분명히 이런 이유였다. 나중에 보니 나도 모르는 이유가 더 깊게 있었지만, 그때는 몰랐다. 외향적 문제행동을 보이는 아이들은 내가 이해하기 어렵고 부담스럽다. 왜냐하면, 나는 속이 문드러져도 참는 내향형이기 때문이다. 교생실습을 나가서 내가 이 아이들을 가르칠 수 있을까?라는 물음이 들었고 나는 자신이 없었다. 그렇게 길을 잃고 있다가 대학원에 갔었다. 대학원 1학기를 마친 6월 초에 우연한 기회에 특수학교에서 일하게 되었다. 갑자기 선생님이 병가를 내셔서 2달을 일하게 되었다. 시각장애 학교에서의 특수교사로서의 첫발을 떼게 되었다. 사범대생임에도 불구하고 특수학교와 특수교육대상 학생을 처음 접하게 되었으니 참 무지한 상태였다.
‘사랑의 온도’라는 드라마에서 주인공인 현수(양세창)가 요리사가 되기로 마음먹는데 ‘3초’가 걸렸다고 했다. 나도 그런 순간처럼 내 인생의 진로를 결정하는 순간이 찰나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이들의 자립과 온전함을 지지하는 교사가 되고자 했다. 그게 특수교사였다. 하지만 많은 특수교사는 특수학급에서 일하게 된다. 특수학급 교사가 되어 내가 자주 마주했던 일도 통합학급에서 일어난 갈등을 중재하는 일이었다. 외현화된 문제행동은 보통은 욕설과 폭력으로 나타난다. 교생 때 이런 아이들이 무서워서 일반교사에서 특수교사가 되었건만 더 자주 만나야 하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이럴 때 원수는 외나무다리 위에서 만난다고 하는 건가. 내가 아이를 다리에서 밀어버릴 수는 없는 노릇이니 협력해서 둘 다 떨어지지 않는 방법을 배워야 했다. 그게 소통과 공감이었다.
다행히 상담공부를 한 지 5년 정도가 되었을 때 정남이를 만났다. 나와 상대의 마음을 구분이 되고 행동 이면의 감정을 바라볼 수 있는 정도는 되었다. 담임선생님과 한바탕 하고 난 후 나와 대면할 시간이 되어 정남이가 교실로 들어왔다. 나는 정서·행동의 어려움을 겪는 상준이를 때린 이유가 뭐 특별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다. 대부분 학교에서 일어나는 갈등이라는 게 사소하고 특별하지 않은 이유가 많다. 하지만 이유는 작을 수 있어도 그런 행동을 유발하는 감정은 작은 것이 없다. 모두 중요하다. 감정은 행동의 원동력이기 때문이다.
정남이를 마주하기 전에 가벼이 심호흡하며 나의 긴장을 이완하였다. 선입견이나 판단을 먼저 하지 않고 면담하기 위해서는 마음의 공간이 필요하다. 가볍게 심호흡을 몇 번 하고 나니 훨씬 가벼워진 게 느껴졌다. 정남이가 교실문을 열고 얼굴을 빼꼼히 내민다. 영락없는 어린아이의 모습이다. 자주 나의 어린 시절과 오버랩이 된다. 나도 이럴 때 ‘네가 그랬다면 그럴만한 이유가 있겠지. 나는 너를 믿어’라는 말을 듣고 싶었다. 다 말할 수는 없지만 내 마음을 이해받고 싶었다.
‘정남아, 와줘서 고마워. 이 교실로 들어올 때 마음이 좀 안 좋았을 것 같아. 좀 문제가 있었고 상황상 뭔가 혼날 것도 같고 긴장도 되었을 것 같은데, 어땠어?’
교실로 들어올 때 보였던 깍두기 형님 같은 포스가 눈 녹듯 사라지는 게 보인다. 표정은 말을 한다. 너도 긴장이 많이 되었었구나. 무서웠구나. 안쓰러웠다. 정남이의 표정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다. 행동 이면의 아이의 마음을 보는 것이 중요하다. 누구나 이해받고 싶은 마음이 있다. 정남이와의 상담은 채 10분을 넘지 않았다. 기싸움도 필요하지 않았다.
내가 마음을 잘 전달하고 있는지 아닌지는 상대를 보면 알 수 있다. 내 말에 편안하거나 웃는 모습을 보인다면 잘하고 있다. 내 말에 딴청을 하거나 점점 얼굴이 굳어진다면 전달이 안 되는 것이다. 정남이의 살짝 웃는 얼굴을 보며 내 마음이 잘 전달되고 있다는 것에 안심이 되었다. 대화는 쌍방이 주고받는 것이니 내 마음을 받아준 정남이에게 고마웠다. 그 후로 정남이는 우리 반 상준이를 도와주는 보디가드가 되어 주었다. 그렇게 한 반에 한 명씩 장애아이들을 도와줄 내 편을 야금야금 만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