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이가 3일째 머리가 아프다고 조퇴를 하고 싶다고 찾아왔다. 먹고 있던 ADHD 약이 바뀌면서 부작용으로 어지럽고 머리가 심하게 아프다고 한다. 학부모 상담에서 아빠를 만나고 창이가 더 대견해졌다. 창이의 장애와 별반 다르지 않아 보이는 아빠의 모습을 보고 이만큼 큰 게 다행이다 싶었다. 스스로 아프다고 말할 수 있으니 어디 가서 스스로는 보호할 수 있겠구나 싶어서 안심되고 기특하다.
처음 공감교실 이야기를 마음리더십의 저자 김창오선생님의 연수에서 듣게 되었다. 어느 초등학교 선생님이 자신의 반 아이에 관해 이야기를 하면서 눈시울이 붉어졌다. 영상에 담긴 그 아이 사진을 보는 그 선생님의 촉촉해진 눈가를 보고 나는 놀랐다. 그 모습은 참 진솔하고 애틋했고 뭔지 모를 뭉클함으로 지금까지 생생하게 나의 머릿속에 자리 잡고 있었다. 선생님으로서의 삶과 개인의 삶이 다르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존재 자체로 교사가 아이들을 만난다는 것을 어렴풋하게나마 느꼈던 날이다. 선생님의 마음과 아이의 마음이 연결되어 보였다.
여러 선생님의 사례발표를 들으며 나에게도 진솔하게 아이들을 만날 수 있는 용기를 주었던 것 같다. 공감 교실을 말하는 원리와 철학 중에서도 나는 특히, 아이들과 있는 그대로, 존재로 만난다는…. 그 말이 참 좋다. 대전에서 한 달에 한 번 열리던 공감교실워크숍에서 사례발표를 하게 되었다. 새 학기가 시작되면서 발표를 위한 일상을 기록하려고 하는데 글이 써지지 않았다. 한 달이 걸린 것 같다. 나의 마음을 솔직히 이야기하는 것은 너무 어려운 일이었다. 놀랍게도 나의 교실을 이야기하는데 지난 나의 삶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야기를 쓰려고 컴퓨터 앞에 앉으면 눈물이 났다. 그렇게 한 달을 울었던 것 같다. 나의 교사로서의 삶이 나의 삶과 똑같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내가 너무 애잔해서 눈물이 났다. 그간 너무 애쓰면서도 애쓰는지도 모르고 살았던 삶이 스쳐갔다. 지난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나는 여전히 그 틀 안에서 살고 있었다. 하나하나가 아프고 슬프고 버겁고 도망가고 싶은 순간들이 많았다. 나는 아이들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힘이 들었다는 것을 고백하는 것이 너무 두려웠다.
나는 아이들을 챙기기도 귀찮고 버겁고 싫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 자기 일을 스스로 못하는 애들도 싫고 그것을 나보고 챙기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더 싫고. 나에게 강요하는 사람들은 너무 싫다고. 내 안에서 그동안 말하지 못했던 것을 쏟아져 나왔다. 꽁꽁 감춰두었던 마음속 깊은 속살이 나왔다. 나의 이야기를 하는 것과 교사로서의 나의 삶이 이렇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은 받아들이게 되었을 때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나의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아빠는 경계선 지적장애가 있었다. 시골에서 도시로 학교로 가게 되면서 그림자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누구도 모르게 하고 싶었다. 주변 사람들은 나에게 아빠를 잘 챙기라는 말들을 습관처럼 해 왔다. 그 말들은 따뜻해 보이지만 나에게는 비수처럼 날아와 상처가 되었다. 초등학생인 내가 어떻게 하라고, 내가 뭘 어떻게 하라고…. 겉으로는 착한 아이처럼 알겠다고 잘 챙기겠다고 말했다. 그 말을 들을 때면 외롭다 못해 괴로웠다. 그들의 기대를 채울 수 없다는 자책과 무기력감으로 짓눌리는 것 같았고 매일 악몽을 꾸었다. 그렇게 도망치고 싶었는데 내가 특수교사가 되었다. 그리고 아빠의 영향이 있을 거라고는 그 후 몇 년간도 생각지 못했다. 너무 이상하지만 정말 몰랐다.
특수교사가 되어 어린 시절과 같은 막막함을 느낄 때가 있다. 혼자 할 수 없는 일인데 덩그러니 놓여있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잘 챙기라는 어린 시절의 어른들 말처럼 부당하고 부담되는 상황에 놓일 때가 있다. 그럼에도 그때와 지금은 차이가 있다. 나는 어른이 되었고 어려운 일은 어렵다고 말할 수 있다. 물론 그럼에도 대부분은 말이 떨어지지 않는다. 그래도 그래도 지금은 어른이다. 주변의 도움을 요청하거나 조정할 수 있다. 그런가? 나는 진짜 어른이 되었나? 갑자기 의문스러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