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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롬 Oct 26. 2024

발달트라우마를 가진 선생님

이번 생은 난이도가 높다

아동기 부정적 경험(ACE)은 미국 심리학회의 중요 학회로 부각되고 있다. 미국사회에서 아동기의 애착 손상으로 인한 사회적 비용은 연간 암 치료 비용을 넘어서고 있기 때문이다(근거). 애착 손상이 국가적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이지만 그 위험성을 잘 이해하고 있지는 않은 것 같다. 애착손상이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더라도 금쪽이들의 문제는 엄마의 사랑과 애착이었다. 손톱이 물거나 소리를 지르거나 학교가 기를 거부하는 여러 사례의 아이들은 엄마와의 애착이 문제였다. 코로나 이후 경기침체로 자영업자의 폐업률이 최고치를 찍고 있다. 불안한 사회에 불안한 가정이 있고 불안한 아이들이 있다.

 

선생님이 이라고 해서 애착 손상이 없을 리 없고 아동기 부정적 경험을 가진 사람이 없을 리 없다. 조 벽, 최성애 박사의 ‘정서적 흙수저, 정서적 금수저’에는 발달 트라우마가 얼마나 오래 한 사람의 미래에 영향을 미치는지 잘 알려주고 있다. 사건 트라우마와 다르게 발달 과정에서 갖은 애착 손상으로 인한 트라우마는 평생을 두고 영향을 미친다. 

 

발달 트라우는 사건 트라우마와 다르다. 사건이 분명하게 있는 것이 사건 트라우마가 가진 특성이라면 발달 트라우마는 발달 과정에서 작고 사소한 경험들이 원인이 되는 경우가 많다. 소나기가 사건 트라우마라면 가랑비는 발달 트라우마라고 생각할 수 있다. 가랑비에 젖은 옷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 본인도 작은 일이라고 치부해서 트라우마라고 여기지 못한다. 어른 여자의 모습만으로 몸이 긴장되었지만 내가 트라우마 후유증이라는 생각을 못했다.

 

상담연수에 참여했을 때이다. ‘아이들 마음을 움직이는 교사 리더십연수’ 1년 과정이었다. 연수 비용이 그 당시 나의 한 달 치 월급이었다. 서울 연수장에 도착하니 80명의 선생님이 모여 있었다. 나는 그때까지 내가 가장 불행하고 다른 사람들은 모두 행복하다고 생각할 정도의 세상 이치를 몰랐을 때라서 이 비싼 연수비를 자비로 내고 이 많은 사람들이 왜 왔는지가 너무 궁금했다. 

 

나처럼 많은 선생님이 자신의 관계의 어려움과 갈등들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알고 혼란스러웠다. 자신의 역량을 키워 아이들과 소통하고 공감, 학부모와 잘 만나고 싶어 하는 선생님들이었다. 전문가 과정으로 만들어진 교사의 마음 리더십 연수는 초급, 중급, 고급 1, 고급 2 과정 4년간 참여했다. 상담연수는 세부적으로는 다양해 보이지만 결국 나의 마음을 수용하고, 너의 마음을 이해하는 것이다. 그 방법은 세계공통, 지금 내 마음에 집중하여 표현하는 것이다. 사회에서는 두려워 말하지 못했던 것을 집단상담시간에 서로의 마음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것이다. 솔직하게 표현한 마음은 서로에게 좋은 교재가 되어 준다. 그렇게 내가 미치는 영향과 나를 보는 마음을 솔직하게 주고받을 수 있다.

 

상담연수를 마쳤을 때까지도 내가 발달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지 못했다. 그 이후 감정코칭과 내면 가족체계치료를 공부하게 되었다. 나의 반복된 마음 패턴이 트라우마로 인한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엄마가 없고 할머니가 초등학교 6학년 때 이민을 갔다고 해도 말이다. 그로 인해 보호자가 없었던 나는 동네 사람들의 말에 늘 예민하고 눈치를 살폈다. 특히 어른 여자의 눈치를 살폈다. 웃긴 건 내가 그 나이 중년여성이 되었음에도 지금도 눈치를 본다는 것이다. 착하다는 말을 들어야 할 것 같은 어린아이가 되어버린다. 발달트라우마가 미치는 영향은 길고 깊다. 

 

이성적으로는 이해했을지라도 내 몸이 기억하고 있는 두려움과 불안은 비슷한 상황이면 어김없이 나타난다. 내 안에 8살 아이가 함께 살고 있었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처럼, 이제 알고 나니 퍼즐이 맞춰지는 듯하다. 내가 보는 세상을 이해하게 되었다. 애착 손상과 트라우마를 통해 바라보니 내 마음을 이해하게 되었다. 나를 이해하고 나니 상대의 행동을 수용할 수 있게 되었다. 나처럼 상대도 그럴만한 경험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선생님이 되었다고 해서 어느 순간 어른스러움이 장착되진 않는다. 어른스러운 척은 할 수 있다. 얼마 못 가 뾰롱 난다. 진짜 어른이 되기 위해서 나를 아끼고 돌보아야 한다. 나를 이해할 때 상대도 이해할 수 있다. 성찰들이 모여 성장이다. 그렇지 않았을 때 나는 어른의 모습을 하고 아이 같은 행동을 할 수 있다. 교무실에서 애들이랑 같이 싸우는 선생님이 된다. 방어적이고 공격적인 모습으로 서 있을 수 있다. 힘들고 어려운 방법 말고 돈도 시간도 들이지 않는 방법이 있다. 조용히 눈을 감고 ‘나는 알아, 왜 그러는지 힘들었지, 수고했어’라는 말 한마디를 해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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