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사람이 빠지는 함정이 있다.
착한 사람이 빠지는 함정
예상치 못한 난관이 기다리고 있었다. 착하게 사는 사람들이 제일 열받을 때가 착하지 않은 사람들이 잘 사는 모습을 보는 것이다. 자기중심적이고 심지어 열심히 하지 않으면서도 잘 사는 사람을 만난 것이다. 내 마음속에서는 부러움을 넘어 그렇게 살면 안 된다고 걱정이 되기도 했다가 내가 너보다 낫다고 속으로 우월감을 느끼기도 했다. 그런 사람들 때문에 내가 피해를 보는 것 같을 때가 생겼다. 내가 열심히 준비한 일에 숟가락을 얻으려 할 때도 있었다. 야멸찬 비난을 속으로 퍼부었다. 다 표시가 났겠지만 나는 속으로 하려고 노력했다.
대부분은 내 마음속의 작동들이어서 문제가 발생하진 않았지만, 아주 천진난만한 20대 초의 선생님을 만나면서 문제가 생겼다. 나의 삶의 기준들이 그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배려하지 않고 열심히 하지도 않는 것 같았다. 비난의 마음을 감추고 설명하고 안내했지만 변화되는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처음에 부드럽게 말했지만 점점 가르치는 태도로 대하게 되고 심지어는 무시했다. 그렇게 행동할 수 있었던 것은 내가 열심히 하는 사람이라는 우월감 때문이었다. 더 나은 가치를 실천하는 사람이라는 자부심도 한몫했다.
그의 반격은 교감선생님에게 나를 고자질하는 것이었다. 그는 나에게 언어적 폭력과 정신적 폭력을 받았다고 했다. 모든 것에서 자유로운 20대였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 같다. 사회적 인정과 평판, 나의 가치. 잃을 것이 두려웠던 나에 비해 그는 가벼웠고 자유로웠다. 그가 말하는 모습이 나라는 것을 인정하는 데는 한참의 시간이 필요했다. 그의 무지함을 십분 감안하더라도 나의 이름이 공론화되어 나온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무너졌다.
회복탄력성이 낮은 나는 이겨낼 힘이 없었던 것 같다. 그것이 사실인지 묻는 교감선생님은 나에게 소리를 지르며 사실인지 물었다. 교수인 그의 부모가 민원을 제기하고 신문사에 연락하면 어떻게 할 거냐고 다그쳤다. 말문이 막혔다. 전화를 끊고 교실의 벽이 나에게 좁혀 들어오는 것을 느꼈다.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아 건물밖으로 뛰쳐나왔다.
분노와 두려움에 주체하기가 어려웠다. 개인상담을 받았다. 나의 오기 어린 말들을 다 듣고 난 상담가는 이렇게 말했다. “자기만의 기준이 있는 사람은 자유로운 사람을 이길 수 없어요. 이제 너의 기준에서 내려와라”. 상담사의 말에 나의 한계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게 보통의 삶을 살기 위한 나의 여정은 다시 시작되었다.
자유로워 보이는 사람을 조금씩 따라 해 보았다. 어떤 개그맨이 헤비메탈의 광팬이라고 했다. 보기에 너무 모범생 같은 스타일이었기 때문에 의외다라는 생각을 했는데 이제 이유를 알 것 같다. 나는 B급 코미디나 팝케스트를 듣게 되었다. 너무 새로운 세상이었다. 예전에는 뭐 저런 쓸데없는 말을 하지, 뭐 저렇게 시시덕거리지..라고 생각했다. 나의 기준은 유용한 것에 있었다. 미스터선샤인의 김희성이 좋은 이유도 그가 ‘나는 무용한 것을 좋아하오’라며 말해선 인지도 모른다.
쉬운 것부터 기준들을 내려놓는 것도 해보았다. 좋은 연수가 있어도 신청하지 않는 것이다. 무리하지 않고 에너지를 아끼는 연습도 했다. 삶의 균형을 위해 조금씩 참아가는 연습을 한다. 에너지를 바닥까지 쓰지 않으니 퇴근 후에도 아이들과 지낼 수 있는 에너지를 남겨 두었다. 저녁이 있는 삶이 가능해졌다. 아이들과 저녁을 먹으며 일상을 얘기하는 것도 가능해졌다.
나는 걸림 없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수용적이고 따뜻한 사람이다. 기준들을 하나씩 놓으면서 자유로움을 느끼면서 상대에게 들이대던 기준들에서도 벗어나는 걸 알게 되었다. 나의 그물망이 점점 넓어지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