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상담을 적용한 내담자 경험을 기록하였다. SP(감각운동심리치료)는 트라우마, 애착치료에 적용한다.
4회기 상담이다. '눈빛'이 상담 주제였던 3회기가 마무리되면서 나는 그 눈빛에서 편안해진 것이 느껴졌다.
처음 눈빛은 현실에서 마주한 교감선생님의 눈빛이었지만, 과거의 옆집 슈퍼 아줌마의 비난의 눈빛이기도 하고 그보다 어릴때의 당숙모의 눈빛이기도 했다.
비난의 눈빛에서 수치심과 묘멸감을 가슴에 새겼다.
처음에는 외부의 시선이었지만 점차 점차 내부의 눈빛이 되어 나를 감사하였다. 무엇을 못했는지, 실수는 하지 않았는지, 최선을 다했는지.. 이 눈빛에서 벗어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내부의 감시자인 셈이다.
기쁘다, 슬프다, 화난다, 두렵다 와 같은 1차 감정은 원초적인 감정이지만, 수치심이나 비참함은 관계 안에서 형성되는 사회적 감정이라서 2차 감정으로 분류할 수 있다. 상담을 통해 다루는 것은 2차 감정에서 시작되지만 결국 1차적인 원초적 감정을 다루게 된다. 뿌리를 다루는 것이다.
눈빛이 시작되었던 초등학교 6학년, 동네 당숙모의 눈빛에 대응하는 나의 기억을 재구성했다. 아무 말도 못 하고 몸의 감각을 느끼지 않으면서 얼어버린 내가 아니었다.
상담자: '너, 우리 애들도 그렇게 안 해!', ' 우리 애들도 그렇게 안 해"
*탐침: 과소각성된 내담자에게 상처가 촉발되는 질문을 통해 활성화하는 것. 상처가 활성화될 때 접촉이 일어날 수 있고 치유의 기회를 만들 수 있다.
얼러버린 내가 화가 났다. 화조차 내지 못하고 얼어버린 내가 그때 하지 못했던 말을 했다. 상담자와 지금의 내가 옆에서 나를 지지해 주었다.
'저는 해요. 저는 그렇게 살 것이고 잘 살아낼 거예요.'
유능감회복하기는 SP(감각운동심리치료)에서 트라우마를 회복하는 과정에서 발현이 된다.
이 말을 하는 것이 초6의 어린 나인지, 지금의 내가 하는 것인지 모를 정도로 확신이 있었다. 분명한 것은 지금의 내가 초등학교 6학년인 나에게, '너의 순간순간들이 모여서 지금의 내가 된 거야. 너는 이루어 낸 거야. 염려하지 마, 두려워하지 마, 네 선택은 모두 최선이었고 누구도 따라 할 수 없을 정도로 힘 있는 선택들이었어. 너를 믿어 걱정 마'라고 지금의 내 삶이 나에게 말해주었다. 너무나 강열하고 단호해서 말하는 나도 낯설고 당황이 되었지만 당황하는 순간에도 이것이 진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안의 part들이 일제히 각성이 높아지는 것 같았다. 각자의 역할에서 뭘 해야 할지 긴장하는 것 같았다. 특히나 조심성 많은 파트, 평가판단하는 파트, 단호한 파트, 경계하는 파트가 이래도 되는지 경계를 빠짝 세우고 나의 심리적 변화를 지켜보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내가 위험한 순간 나타나 제 소임을 다 하리라 말하는 것 같았다. 그 느낌이 참 신뢰로웠다.
테트리스가 완성되고 새로운 장면이 되듯이 나의 세상도 나의 몸도 나의 자세도 시선도 당당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기억의 재구성으로 변형이 일어나고 무의식과 의식이 통합되는 순간이다.
수치스러웠던 기억은 기억 속에 꽁꽁 감춰버렸지만 때때로 슬픔으로 분노로 좌절로 고개를 빼꼼히 내밀곤 했었다. 나의 감정은 상황에 비해 과했고 갑작스러워 감당할 수 없을 때도 있었다. 일상을 살면서도 과거의 기억은 현재와 오버랩되어 감정을 소용돌이치게 했다.
기억 재구성하기는 트라우마 치료의 중요한 과정이다. 기억 속에서 고통만이 아니라 자원을 찾아내어 그 힘으로 기억을 다루게 된다. 상담자는 안내만 하는 것이지 나의 힘-자원으로 과거의 기억을 치유하는 것이기에 특별하다. 의존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미 가지고 있는 나의 힘을 찾아 내가 치유하는 것이다.
상담을 공부하면서 의존적인 상담이 있고 주체적인 상담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감각운동심리치료의 가장 큰 장점은 나의 자원으로 치유한다는 것이다. 소매틱 자원을 활용한 상담은 끝났다고 해서 휘발되지 않고 몸에 고스란히 간직된다.
이로서 4회기 단위로 신청했던 상담을 마쳤다. 나는 언제나 내담자의 위치에 있었지만 또한 상담자이기도 했다. 나 자신에 대한 상담자였다. 내면의 나의 파트들은 중심 되는 몇몇의 파트가 있다. 유미의 세포들처럼 다른 사람들과 비슷한 불안해하는 파트, 사랑받고 싶어 하는 파트, 조심하는 파트 등등이 있지만 다른 사람과 크기가 다를 파트가 있다.
호기심파트와 탐구하는 파트이다. 호기심과 탐구의 대상은 언제나 나였다. 기억도 못하는 그 어린 시절부터 내 몸에 함께 있는 불안과 두려움, 고통과 절망의 감정들을 누구도 알지 못했고 해소해 주지 못했고 오히려 가중시키고 있었다. 그 어린 나이에도 언어로 표현하지 못하지만 '이 고통은 어디서 온 것일까?'가 궁금했다. 그리고 다행히도 어느 생명도 고통받기 위해 태어나지 않는다는 믿음이 있었다. 그 믿음이 있었으니 나는 더 탐구하고 공부할 수 있었다. 그 비법을 밝히리라.. 는 마음으로..
47살.
나는 아직 밝히지 못했다. 오히려 더 아플 것도 없을 것 같던 인생에서 제대로 넘어졌다. 그럼에도 나는 이 순간들이 만나게 하는 것은 나 자신이라는 것을 뼈아프게 발견하게 되었다. 내가 걸려 넘어진 것이 나를 공격하는 사람이 아니었다는 것을, 내가 집착했던 교실 속 아이도, 나를 둘러싼 요구도 아니라는 것을... 그것은 내가 해결하지 못한 과거의 나의 감정들의 곪아서 피가 나고 다시 딱지가 얻어져 제대로 치료되지 못한 상처들이 다시 헤집어지는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호기심파트와 탐구파트는 다시 활성화되어 이번 상담의 핵심 문제와 나아갈 방향을 잡아준다.
그 눈빛은 과거의 상처받았던 상황에서 박제된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과거의 어리고 엄마도 없던 아이가 아니다. 나는 사랑하는 가족과 아이들을 가진 엄마가 되었고 나는 과거에 가지지 못했던 사랑이 있고 평안한 경제적으로도 안정된 가정을 가졌다. 그것을 만들어 온 것은 나 자신이다. 그러니 그런 타인의 눈빛과 판단에 흔들릴 필요 없다. 기죽을 필요는 더욱이 없다. 나는 온전하다. 는 방향 말이다.
나는 동의가 되어 어깨가 펴졌다.
상담자에게 필요한 덕목은 사랑이다. 생명에 대한 사랑. 나는 호기심, 탐구 파트 덕분에 공부를 오래 하다 보니 내담자이지만 누구보다 상담에 대해 많이 공부해 왔다. 언제나 나를 치유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좋은 상담자를 만나 치유의 많은 순간들을 맞을 수 있었다. 정리하길 좋아하는 파트는 그 치유 순간들이 흐텨지지 않게 잘 내 안으로 정리해 주었고 맡은 바 역할을 늘 하고 있었다. 내가 그것을 알아차리든 차리지 못하듯.
그리고 이제 나의 공유파트는 글쓰기를 시작했다.
'삶이 당신보다 더 잘 안다'는 마이클 A. 싱어
이 책 제목은 3회기 상담에서 빛을 발휘했다. 독서모임을 통해서 그 책을 읽을 때도 이 제목이 주는 의미가 피상적이었다. 3회기 상담에서 당숙모와 마주한, 대치한 그 순간으로 갔을 때 얼어버린 나를 바라보는 지금의 내가 "중요한 것은 내 삶이었다는 것이다. 여전히 얼어버린 몸이 풀리지 않았지만 내 삶이 증거다. 그게 과했을지라도 나는 그런 선택들이 모여 지금을 만든 것이고 이것은 옳았다. 나는 나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삶이 내 순간의 생각보다 정직하다. 그것은 심지가 굵어지는 느낌을 주었다.
이 순간을 신경과학에서는 '신경가소성' 이라고 한다. 우리 몸과 마음은 유기체로서 새로룬 경험으로 새롭게 만들어진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