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직 상담자의 의도를 파악하지 못하고 여전히 당위적 생각들로 꽉 차 있었다. 막상 상담을 마치고 며칠 동안 이 노래를 다시 들으며... '나 자신을 수용하길 바라는 마음이었겠다'는 걸 알게 되었지만 상담시간에는 노랫말도 잘 들어오지 않았다.
나는 이 공허함이 주는 생각들 "왜 인간은 태어나는 걸까요? 왜 인간이 태어나서 고통을 겪게 되는 걸까요?"라는 오래된 질문을 하게 되었다. 이런 고루하고 뜬구름 잡는 말은 상담실 아니면 어디서 하겠나 싶다. 그러나 나는 계속 이게 궁금했다.
상담사는
자기 안에 답이 있어요.
이 세상에 왔으니 이유를 알고 있겠죠...
다른 곳에서 찾으려 하지 마세요..
'다른 곳에서 찾으려 하지 마세요'라는 상담사의 말은 무질서하게 움직이는 내면의 역동을 잠시나마 '얼음'상태로 만들어 주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상담실에서 듣는 말들은 마치 처음 듣는 것 같을 때가 많다. 그간 누군가에게 답이 있을 것 같고, 어딘가에서는 들려줄 것 같아서 찾아다녔던 시간들이 영사기에서 틀어지는 듯했다.
호흡을 하며 내 마음의 공간을 다시 느낄 수 있도록 안정화 훈련을 했다. 나의 질문 때문인지 추상적이고 영성상담의 방향으로 진행되었다. 모호한 질문들이 남겨져 두 번째 상담을 마치며 온몸에 힘이 빠지기도 하고 몸 안의 압력이 빠져나가지 않아 터질 것 같기도 했다.
그리고 이내 허전하고 슬프고 괴로워졌다.
내게 남은 숙제 같은 질문.
'외로움을 견딜 힘이 나에게 있는가?'
원래 인간은 혼자이고 외로운 것이라면 그게 결론이라면나는 왜 힘이 든 걸까?
절망감, 두려움, 슬픔. 막막함에 화가 났지만 제풀에 금방 화는 내려갔다. 힘이 빠졌다. 나는 이제 어떻게 하나.
너무나 정답 같은 말이면서 나를 고통스럽게 하기 충분한 말이었다.
나는 혼자 설 생각을 못하기 때문이다.
언제나 등장하는 것은 엄마이다.
엄마와 헤어지는 것이 싫었다.
방학이면 나를 데리고 갔다가 개학이면 할머니집에 데려다주었다.
강제로 헤어지는 반복적인 경험은혼자서는 안된다는 마음을 깊이 새겨 넣었다.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싶은 마음이 언제나 있었다.
그럼에도 이해받을 수 없었던 것은 겉으로는 표시가 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는 이런 외로움을 누가 알까봐 언제나 두려웠다. 초라하지 않고 외롭지 않게 보이고 싶었다.
결과적으로 그게 나를 더 깊은 우울로 넣어 버렸다.
슬퍼도 좋은 척, 힘들어도 아닌 척...
사회적으로 더 안전한 감정을 선택하고 표현하는 게 이제 너무 당연해서 정말 내가 무슨 감정을 느끼는지 모를 때가 많아졌다. 나도 이제 헷갈리게 되었다.
나의 상태를 누구보다 알고 있을 것 같은 상담자가 이대로 상담을 마치는 것이 더 놀라웠다.
상담사는 어떤 마음과 어떤 믿음을 가지고 있어서
이런 혼란을 겪고 있는 내담자를 그냥 보낼 수 있는지가 궁금하고 놀라웠다.
내가 신뢰하고 있는 만큼...
상담자의 의도가 궁금하기도 하고 놀랍기도 했다.
나의 흔들리는 눈빛에 상담자는 굳이 답을 찾으려 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그냥 내 마음에 질문을 던져 놓는 것, 말을 걸어보는 것만으로 어느새, 언제가 그 답을 알게 될 것이라고 했다.
그 믿음이 놀라웠고, 진짜 믿고 싶었다.
상담사가 좋아하는 말이 있다고 들려주었다.
"치료사가 내담자를 치유하는 것이 아니다.
단지, 치료사는 모든 사람 안에 있는 '치유의 힘",
즉 내적 지혜를 이끌어내 수 있도록 내담자를 도와줄 뿐이다.
치료사가 갖추어야 할 중요한 덕목 중 하나는 '내담자에게 치유의 힘과 내적 지혜가 있다'는 확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