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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롬 Dec 29. 2024

상담기록. 구멍 난 영혼3

공허함은 평범한 슬픔이다.


상담장면 1.


처음 듣는 말인 것처럼...

상담사의 말은 평범한 말인데도 나는 또 어리둥절하다.

한결같고 신뢰로운 상담사는... 나를 위해 타협해 줄 생각이 없는 것 같다...


"그 환경 속에서 선생님이 스스로 만들어 낸거죠.. 다르게 만든 사람도 있죠. 내가 만들었다는 거. 그 걸 풀 수 있는 사람도 자기자신이라는 것 밖에 답이 없어요. 선생님 스스로 생존을 위해서 만들어 낸 것이기 때문에 선생님을 위해서 타당하죠. 정당하죠"


이 말이 상담장면에서도 이해가 안되었다. 

상담사는 트라우마 상황에서 대처한 행동은 그 상황에서 꼭 필요한 행동이였고 그것은 타당하고 정당한 것이라고 말했다. 나는 그저 잊고 싶은 일일 뿐 그 행동을 돌이켜 보고 싶지도 의미를 부여하고 싶지도 않았다. 


1.

내가 스스로 만들었다는 말

엄마와 떨어진 나는 쪼그려앉아 땅바닥에 그림을 그리며 있었다. 밥도 못먹고 말도 하기 어려웠다.

누구에게 말해도 아무 소용이 없을 거라는 것을 알았고

엄마와 헤어짐을 받아들이며 견디는 것 뿐이라고 생각했다.

바닥에 그림을 하염없이 그렸고 이내 체념이 되면 말을 할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나의 선택같지 않았다.

그저 불쌍하고 초라한 잊고 싶은 한 부분이었다.


2.

그 아이를 이해해 줄 수 있는 사람도 자기 자신 밖에 없다는 말

나는 그런 힘이 있는 사람이 아니다. 라는 생각...

누군가가 대신 해주길 바라는 마음이 여전히 있다.

그래서, 차라리 그냥 살까?

가끔 뭐 허전하고 외로워도.. 모른척 살면 되지 뭐...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 허전하고 공허함이 이제 나를 휘청이게 할 정도로 타격감이 커졌다...

방법은 모르지만 그대로 가보자..


3.

정당했다. 타당했다는 말

나는 엄마와 함께 살고 싶었다. 그럼에도 나의 애원도 통하지 않았다.

할머니에게 던져진듯, 버려진 듯 했다.

엄마에게도 버려졌다는 생각은 내 존재 자체가 수치스럽고 챙피했다.

눈빛에서 조차 외로움을 들키고 싶지 않았다.

내 삶이 거짓같았다. 믿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정당했다는 말, 타당하다는 말도 내 심장을 후벼판다...


실상 내 관심이 상담사의 이런 말에 있지도 않았다.

어떻게 하면 상담사가 나를 더 도와줄 수 있는지..

나를 더 보살펴 줄 수 있는 지에 있을 뿐이었다.



상담장면 2.


상담을 마칠 때 쯤 

상담사: 선생님은 좋은 사람이예요.

나: 네.

상담사: 선생님은 좋은 사람이예요.

나: 그런말 들어요.

상담사: 선생님이 자신을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나: 네.

상담사: 정말?

나: 네. 외롭고 쓸쓸하긴 사람이어도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상담사: 그렇다면 다행이예요.


상담을 마치고 집으로 오는 길에.. 내가 '나'라는 자아상에 '어린 그 아이는 빠져 있다'는 생각이 스쳤다. 나의 마음에  그아이는 없다. 상담사의 반문의 의미를 알았다... 왜 '정말?'이라고 물었는지... 다 알고 있었을 텐데 더 묻지 않고 더 말하지 않은 상담사가 고마웠다. 

나의 공허함의 크기와 내 마음에서 도려낸 그 아이의 크기가 같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이제 '이 아이'를 어쩔 수가 없게 되었다.

송년회를 마치고 눈오는 밤길을 걸었다. 마음처럼 정말 나도 길을 헤메듯 걸었다. 발길 닿는 대로 걷다보니 큰 길이 나왔다. 20대도 아니고 이제와 이게 뭐하는 짓인지 싶었지만 이정도 길을 헤매는 것은 갈피를 못잡는 내 마음보다는 낫다는 생각을 했다.



상담 후기

참 신기하게도 녹음한 상담을 다시 들으며....

그 행간의 의미들을 다시 곱씹어 보았다.


어린 아이가 그림을 마당에 그린 것, 그 순간도 내가 만든 것이라는 말

견딜 수 없어서.. 견디기 위해서.. 견디는 방법을.... 했다는 건가


나의 자아상은 

아무리 화려한 상을 받거나 대표를 하고 있어도

여전히 초라하고 외로운 '그 시간의 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일상생활을 하면서도 머리엔 말풍선이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

'그 때 나에게 필요한 것을 했다?'

'선택했다?'

'생존을 위해서?'

'그래서 타당하고 정당하고.'


지금껏 그 순간을 외롭고 절망스럽고 수치스럽고 고통스러운 순간으로 생각했는데...

선택한 순간으로 바라 볼 수 있다는 것인가..

이 생각을 하는 순간 왼쪽 머리가 갑자기 아팠다. 큰 징이 울려 퍼지는 것처럼 진동이 일었다.


지난 상담에서 들려주었던 조용필의 '그래도 돼'를 다시 듣고 있다.

상담시간에는 접촉이 없었던 노래였는데..

뮤직비디오까지 보고 나니... 

이 모든 걸 미리 계획했다면 상담사는 천재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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