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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기록. 구멍 난 영혼 5

구멍 난 채 살아갈 방법은 없나요?

by 제롬 Jan 13. 2025


자포자기한 마음으로 예정되었던 4회기 상담을 갔다.


나는 당일 변경한다는 문자를 보낸 상담사와의 마지막 상담이길 바라며 상담을 그만하고 싶다고 당당히 말하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할 것을 알았다. 지금 내가 아는 제일 좋은 상담자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냥 내담자로 충실하자는 맘도 먹었지만 상담사 앞에 앉으니 나의 화가 비집고 나왔다. 말을 빙빙 돌리고, 다른 말도 해보고 했지만 소용없었다. 결국 상담을 마치기 몇 분 전 말이 나왔다.




나: 저는 엄마를 기다렸듯이 그런 마음으로 상담을 기다렸어요. 엄마가 그랬듯 나에게 묻지도 않고 상담을 변경해야 한다는 문자를 보고 화가 났지만 눈물도 났어요. 쉬는 시간이었는데. 울 수도 없는 시간이었어요.

상담사: 그랬군요. 


나: 머리로는 다 알고 있죠. 이해 못 할 상황은 아니었어요. 그런데 조절하는 게 어려웠어요. 무너지는 것 같았어요. 

상담사: 그렇군요. 불편할 수 있겠다 싶었어요. 그런데 안정된 환경에서 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판단했어요.


나: 적어도 저에게는 틀렸어요. 저에게는 물어보는 게 중요했어요.

상담사: 맞아요. 그랬어요.


나: 너무 성의 없었어요. 제가 바라는 것은 제 마음의 100분의 1이에요.

상담사: 말해주어서 고마워요. 엄마를 만난다는 게 어떤 의미인가요. 선생님께는..


나: 완성되는 거예요. 엄마를 만나면 비로소 제 삶이 완성되는 거예요. 엄마를 만나면 제 삶이 완성되듯 그날을 위해 준비하듯 하루하루를 보냈어요. 그런데 그날 엄마가 안 왔어요. 감당할 수 없었는데.. 마치 상담이 취소되었다는 게 저에게 그랬어요. 이번엔 감당이 안되었어요.

상담사: 그때 성인자아는 어떻게 하고 있었나요?


나: 이해시켜주려 했어요.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 다 일어날 수 있는 일이야.'라고요. 쉬는 시간이었고 '이제 수업을 가야 하니까 진정해'라고 했어요.

상담사: 그랬군요.


나: 네. 이해도 하지 못하면 믿을 수도 없고 받아들일 수도 없고 그 상태로는 있을 수 없으니까요.

상담사: 이해가 중요한 거였네요. 선생님은 그 감정이 문제가 된다고 보시나 봐요.


나: 네. 일상생활을 하는데 문제가 되니까요. 어려워요. 이 아이가 올라왔을 때는 생활하기 어려워서 그래요. 






지금 보니 참 어리석은 질문이었다.  


나: 그 (내면) 아이를 안 보고 살아갈 순 없을까요?

상: 제가 다른 건 잘 몰라도 하나 분명히 알고 있는 것은 그럴 수 없다는 것이에요. 그 아이가 평생을 함께 할 거예요. 그렇지만 그 아이가 치유된 아이일 수 있어요. 선생님이 치유할 거고.


나만큼이나 한결같은 상담사를 붙잡고 나는 질문하고 있었다. 아니 간절한 바람을 말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나는 못할 것 같기 때문이다. 그 아이를 다시 보는 것도 힘든데 상처를 보듬는 것은.. 벌써 머리가 아프다.


그런데 그 상처가 아스팔트에 쓸린 열상 같은 것이라면 조심하며 살겠지만 이 글의 제목을 쓰며 다시 알았다. 구멍 난 영혼.. 이라니.. 구멍 난 채로는 살긴 어려운 것 아니겠나..


두려움이나 화가 가장 무서운 감정인 줄 알았다.  두려움은 평화로운 일상에서도 현재형의 공포를 만들어 내고 긴장을 놓을 수 없게 했다. 화는 나의 작은 노력들과 현실들을 한순간에 잿더미로 만들어 버려 감사함을 삶에서 잃게 만든다.. 곧 두려움과 환는 삶을 허무하게 만들었다. 


결과물이 더 나아질 것 같지 않아 느껴지는 무력감, 공허함이라서 그런지 이제 보니 더 무서운 것이었다. 내 몸이 걷고 있지만 몸이 없는 것 같은 느낌, 몸이 있지만 녹아 버리는 느낌, 더이상 할 수 있는게 없는 것 같은 느낌은 무너지는 느낌을 주었다.


구멍난 영혼의 상태라는 것이 안 갈 수도 없고 갈 수도 없는 길 갈림길 앞에 서게 한다.


나는 두렵다. 나의 내면아이를 보는 것은 수치심과 마주하는 것이다. 나는 가고 싶지 않다. 다른 방법이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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