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에서의 생활이 안정기에 접어들고, 마음속 아픔도 조금씩 옅어져 갔다. 무엇보다자연 속에서의 삶에 만족과 감사를 느낄 즈음이었다.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앞날에 도둑처럼 찾아온 손님이 하나 있었다.
갑작스런 발병이었다.
내겐 생전 처음 들어보는 병명이었다.
미만성 거대 B세포 림프종이라는...
악성 림프종의 일종이며 혈액암으로 분류되었다.
감기로도 병원에 가본 적이 없었다. 의료 보험료는 남을 위해 낸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남들에게만 해당되던 일이 내게도 해당되는 일이 되었다.
대외적으로 코로나 상황이 어려워지기 시작한 시기에 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 졸지에 겪는 일이었다.
발병하기 몇 달 전의 일이었다.
아버지께서 갑작스레 돌아가신 충격과 함께
알 수 없는 피로와 무력감이 느껴졌다. 집중력도 흐려졌다. 목에 이물감이 느껴지면서 음식 삼키는 것이 힘들었다. 편도 쪽에 엄지 손가락 마디만한 종기 같은 것이 생겼다.
편도염으로 알고 이비인후과를 한 달 이상 전전했으나 차도가 없었다.
아무래도 이상해서 대학병원에 가보았다. 조직검사 결과 진단명이 내려졌다.
내게는 너무도 생소한 질병으로...
망치로 한 대 맞은 기분이었다. 의사한테 조언을 구했다. 빨리 서둘러 서울 큰 병원으로 가라 했다. 서울에 있는 언니 형부께 알렸다. 통상 두세 달 밀리는 것은 기본인 것이 대학병원 예약이었다. 형부께서 직접 대학병원에 달려가셨다.
거의 기적적으로 3일 후로 예약을 잡았다. 몇 초 사이에 누군가 취소한 예약 자리를 잡은 것이었다.
때마침 언니도 하던 일을 잠시 쉬게되는 상황이 되어 나를 도울 수 있었다.
마치 퍼즐조각이 맞춰지듯 진행이 되었다. 다들 하늘이 도왔다 했다.
소식을 듣고 멀리 사는 친구가 달려왔다.
이른 아침 머리는 풀어헤치고 슬리퍼 차림이었다. 황망한 표정으로 나를 보자마자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렸다. 1년에 한 번 볼까 말까 하는 친구였다. 우리가 친구가 맞나 의심할 정도였다. 한걸음에 달려온 친구에게 고맙고도 미안했다. 친구는 만남의 횟수가 중요한 게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해 주었다.
잃어버린 고양이를 인연으로 동네 친구가 된 미연이도 발 벗고 도움을 줬다. 이것저것 살뜰히 챙겨주었다.
함께 목공을 배운 동료들도 여러모로 마음을 써주었다.
갑작스럽게 서울로 가게 되어 처리하지 못한 뒷 일이 남아 있었다. 그런 내게 뒷 일은 다 알아서 할 테니 아무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치료에만 전념하고 몸이 잘 버텨야 한다고 맛난 고기도 사주었다.
목이 아파 제대로 먹을 수는 없었어도 그 마음이 너무도 고마웠다.
KTX를 타고 서울로 올라가는 길, 배웅을 나온 친구의 모습이 점점 작아 보였다.
과연 저 친구의 모습을 다시 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끝을 알 수 없는 어둡고 긴 터널로 들어서는 기분이었다. 마치 거대한 쓰나미가 나를 덮치러 몰려오는 것만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