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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민선 Aug 27. 2022

15화- 어쨌거나 행복

가장 위기의 순간에 찾아온 행복

가난하고 몸이 아프다고 해서 모두 불행한 것은 아니었다.

반대로 상황과 조건에 상관없이, 어쨌거나 행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넘어진 김에 쉬어간다'라고 아픔을 통해 몸도 마음도 쉬어갈 수 있기 때문이었다.

돈도 부족하고 몸도 아팠지만 나에게는 발병으로 인한 치료의 시간이 믿어지지 않을 만큼 내 생애 가장 행복하고 따스한 시간이었다.


처음에는 생각지도 못한 발병으로 나는 황망하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 나한테 왜? 열심히 산 거밖에 없는데 왜?"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생각할 여지가 없었다.

너무나 긴박하게 돌아가는 일정 때문이었다.

그러나 어쩌면 소식을 듣고 제일 먼저 달려온 고교 동창의 한마디가 은연중 작용했을지도 몰랐다. "다른 사람한테 일어날 수 있는 일은 나한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야. 그러니 딴생각 말고 치료에만 꼭 전념해"라는 말이었다.

마음 다짐의 계기였지 싶다.


돌이켜 보면 가난한 살림에도 불구하고 대학은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사람은 배워야 한다'는 엄마의 열렬한 교육열 덕이었다.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여겨 더 이상 부모님에게 손을 벌리지 않기로 작정했다.

서울 유학 이후의 모든 삶을 스스로 책임져야 했다. 쉽지 않았다. 팍팍한 삶 가운데 부담감이 컸다.

뭐든 개미처럼 열심히 일했다. 적성에 맞는 학원일을 하게 되었고 처음엔 적은 수입에도 만족하고 즐거웠다. 그러나 수입이 늘어갈수록 일정 수익을 유지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짓눌렀다. 돈에 집착하게 되었다. 통장의 돈은 쌓였지만 두피가 물렁할 정도로 피로와 긴장상태로 살았다.


자기 팔을 자기가 흔들어야만 하는 삶은 언제나 혼자라는 외로움과 시린 공허를 느끼게 했다.

외로움을 견디기 힘들어 사람에게 집착하기도 했다. 집착하는 관계는 건강하기 어려웠다. 상대가 떠날까 봐 늘 두려웠고 눈치를 살피게 했다.  바깥의 대상에 의존하고 매달리는 삶은 결국 내 안의 소리를 외면하고 소외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외로움은 더해가고 무수한 상처만을 남긴 채 늘 피해자로 남을 수밖에 없었다.

삶은 결국 홀로 일 수밖에 없다 느꼈다.


그러나 나의 발병은 그런 생각이 여지없이 무너져 내리는 경험을 하게 했다.

소식을 듣고 두 팔 걷어붙이고 세세히 챙겨준 친구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내 일을 대신 맡아 처음과 마무리까지 최선으로 도와주었다.


고이 접어 쓴 편지 안에 "조금밖에 못 넣었어" 오히려 미안해하던 친구가 있었다.

병기가 나오기 전까지 숨죽여 애태우다 초기라는 말에 울음을 터뜨린 따듯한 마음이 있었다.

동생을 위해 줄기차게 병원을 따라다닌 울 언니가 있었다.

바쁜 와중에 항암치료 때마다 몇 시간을 함께 해줬던 대학동창 베프가 있었다.

어려운 형편임에도 항암 중에 물이 중요하다고 치료 끝까지 물을 대주기까지 했다

입맛 없을 때 끓여먹으라고 죽통 기계도 보내주고 따듯한 핫팩도 보내주었다.

병마와 대적할 때 마음 다잡으라고 법문을 꾸준히 보내주기도 했다.

하루하루 삶의 소중함을 느끼게 했던 일기장을 만들어 주기도 했다.


서울 올라가서 2주 넘도록 택배를 받아야 했다.

건강에 좋은 검정콩에서부터 제주 은갈치까지...

각지에서 보내주는 친구들의 응원이었다.

면역이 바닥을 치고 다시 올라오면 시골집으로 내려와 지내곤 했었다.

무엇보다 가장 가까이에서 나의 손과 발이 되어 주었던 같이 사는 친구가 곁에 있었다.

자신의 약한 몸도 바쁨도 잊은 채, 나의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챙겨준 눈물겨운 정성이 있었다.


친구들이 보내준 따듯한 위로와 응원에 힘입어 흔들리는 몸과 마음을 일으켜 세울 수 있었다. 그리고 무사히 모든 과정을 마칠 수 있었다.


삶은 혼자이고 외로울 수밖에 없다는 나의 생각은 나만의 관념이며 정답이 아니었음을 깨닫는 시간이었다.

돈도 없고 몸도 아픈 내 생애 가장 위기의 순간이 내겐 가장 따듯하고 행복한 시간들이었다.

사람이기에 때론 고집을 부리고 이기적일 수도 있지만 우리 속에 선함과 사랑을 체험하는 순간들이었다. 나 또한 누군가의 위로와 힘이 돼주길 발원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돈은 가지고도 만족을 모르면 그처럼 가난한 것이 없고, 건강한 몸도 언젠가는 스러져 갈 것이다.

변하지 않는 것은 없는 거 같다. 사랑도 관계도 무엇이든...

100년도 안 되는 삶을 살면서 무엇을 얼마나 소유할 것이냐 보다는 어떤 마음으로 살 것인가를 스스로에게 묻고 다짐하는 시간이었다.

나에게 다가오는 어떠한 삶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겠다고... 어떠한 상황과 조건에도 불구하고 행복한 존재로 남고 싶다고...      


#시골살이 #아픔 #우정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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