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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민선 Aug 27. 2022

16화- 옆집 할머니

마음과 마음이 닿는 순간

옆집에는 따글따글한 할머니가 한 분 계신다.
작달막한 키에 깐깐하시기가 여간 아니시다.

옆집 할머니와의 인연은 집터를 고르는 순간부터 시작되었다.
앞에 전망을 가리면 안 된다, 통행권 내주는 대신 본인 담벼락 밑에 도랑을 내달라, 명절 때마다 오는 자식들이 댈 주차장을 내달라, 등등 요구조건이 끝이 없었다.
처음엔 뭐 이런 경우가 다 있나? 몇 발자국도 안 되는 길 좀 지난다고 해도 해도 너무한다 생각했다.
하지만 살다 보니 할머니를 아주 쪼금은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80 순이 넘으시고 병약한 할아버지와 살다 보니 논농사며 밭농사는 거의 할머니의 몫이었다. 더욱이 자식들에게 손 벌리고 싶지 않아  당신 스스로 살림을 꾸려 나가시는 눈치였다.
장성한 자식들은 시집 장가 다 가고 도시에 살고 있었다. 명절이나 행사 때만 오니 아쉬운 게 많으신 거였다.

어찌나 알뜰하고 부지런 하신지 고추장 된장은 기본이셨다. 빨랫비누까지 만들어 쓰실 뿐만 아니라 파시기까지 하셨다.

운동이라도 한다고 좀 일찍 일어나 나가보면, 여지없이 여기 밭에서 불쑥 저기 밭에서 불쑥 나타나시기 일쑤셨다.
나를 보시면 환하게 웃으시며 반기셨다.
깐깐하신 성격에 비해 유독 나한테만은 호의적이셨다.

" 집이는 부지런하고 일을 잘하데..."

내가 텃밭을 만들고 뭐라도 심고 하는 것을 다 보고 계신 거였다. 때에 따라 뭘 심어야 할지 몰라 여쭈면 신이 나서 알려주시곤 했다.

한 번은 콩 털이를 하시는데 어찌나 채질을 잘하시는지 가르쳐 달라고 했다. 할머니는 여유만만하게 시범을 보이시며 약간 우쭐해하셨다.

나의 엉성함을 아주 재밌어하셨다.

할머니 할아버지께서는 농담까지 하시면서 즐거워하셨다. 나도 즐거웠다.


우리 집에 TV가 없을 때였는데, 몇 년 만에 TV 나온 나훈아 쇼가 보고 싶었다. 늦은 시간이라 마을 회관서 보기도 그렇고 아쉬웠던 차였다.

마침 지나가시던 할머니께 여쭈었더니 당신 집에

서 보자고 하셨다. 저녁 8시면 주무시는 편인데 괜찮을지를 물으니 상관없다 하셨다.

간식거리를 들고 편안한 복장으로 할머니 댁에 갔다. 알사탕도 같이 까먹으며 나란히 앉아 쇼를 봤다. 중간중간 같이 따라 부르기도 했다. 막간을 이용해 당신이 살아오신 이야기며, 시집살이 얘기들을 슬쩍슬쩍 내비치셨다.


새벽까지 같이 본 TV쇼의 경험은 할머니와 뭔지 모를 유대감을 갖게 했고, 할머니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내가 치료 중에 있을 때 만날 때마다 진심으로 걱정과 위로를 해주셨다. 당신이 아껴드시던 간식을 건네주시기도 했다. 두 손에 받아 든 눈깔사탕과 비스킷을 보니 눈물이 핑하고 돌았다.


서울에서 치료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회복을 하던 즈음에, 옆집 할아버지께서 갑자기 쓰러지셨다는 얘기를 들었다. 서울에 있는 병원으로 옮겨 가셨고 근처에 자식이 있지만 코로나 상황으로 면회조차 안된다고 했다.
할머니는 어쩌다 영상통화로 얼굴만 한 번씩 보신다고 했다. 할아버지께서 말씀을 못하시게 되어서 할머니만 일방적으로 말씀을 전할 뿐이라고 했다.

어쩌다 골목에서 만나는 할머니는 수척하셨고 수심이 가득해 보이셨다.

할머니와 같이 밥이라도 한 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할머니는 부담 줄까 염려는 하셨지만 한편으론 싫지는 않은 기색이셨다.
차를 타고 바람도 쐴 겸 좀 떨어진 동네에 있는 냉면집으로 모셨다.
가는 내내 여기 나온 지 얼마만인지 모르겠다는 얘길 줄곧 하셨다. 잠시나마 시름을 덜고 맛나게 드시는 모습을 보니 기뻤다. 돌아가신 엄마 생각도 스쳐 지났다.

"할머니! 진지 잘 드시고 혹시라도 도움 필요하시면 언제든 알려주세요! 꼭이요!"

" 응, 알았어! 고마워서 어쩌스까! "

돌아오는 길 할머니의 얼굴은 훨씬 밝아지셨고 나의 마음도 한결 가벼웠다. 마음과 마음이 닿는 순간이었다.


#시골살이 #이웃 #상호 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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