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 I - 2편
인생의 절반을 글로벌 비즈니스에 몸담았습니다. 지난 30여 년 경험과 구력이 해외 비즈니스를 계획하거나 도모하는 이들에게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찬찬히 그간의 경험, 실용적인 얘기를 풀어내봅니다.
저의 브런치북 도전자들의 이야기(목요일 발행)와 30년 해외비즈니스 이야기(일요일 발행)에 계속 싣도록 하겠습니다.
I. 글로벌 비즈니스의 먹이사슬에 대해 : Chap. I - 2 편
이러한 먹이사슬의 구조에 의해 실제 한국 사업가들은 터키를 비롯한 이슬람, 유대국가의 사업가들에게 뒤통수를 맞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일례로 1997년, 터키 정부의 지원 하에 아시아의 한 자동차기업이 터키진출에 성공하여 공장까지 건립했던 적이 있다. 정부의 허가취득 및 지정학적 리스크를 분산한다는 차원에서 터키 회사와 5:5의 합자회사로 설립했었는데 이것이 향후 골치거리의 시작이 되었던 것이다.
일을 진행할 때마다 사사건건 반대를 위한 반대를 일삼았고, 투자나 생산규모를 확대해야 하는 안정경영을 위한 의사결정에 있어서도 과도한 요구사항을 앞세워 자신들의 실속만을 챙기는 행위를 서슴치 않았다. 만약 자기들의 요구가 관철되지 않을 경우엔 합자회사로서의 의결권을 행사하지 않으면서 일에 차질을 빚게 하는 등 한번도 쉽게 넘어간 적이 없었다. 우기는 상대를 쳐내지 못할 때는 달래거나 요구를 들어줄 수밖에 없으니 매번 당하면서도 그들의 요구를 들어줄 수밖에 없는, 말 그대로 갑의 위치에서 횡포를 일삼는 것이다.
이러한 횡포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터키지분을 인수하는 것뿐인데 이들의 지분을 가져오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인가? 무대포식의 요구, 요구사항이 관철될 때까지 차일피일 미루는 시간끌기. 결국 글로벌 스탠더드 비즈니스의 절차는 형식일 뿐 터키와의 거래에서는 처음부터 포식자가 되지 않으면 무조건 당한다. 아마 그 자동차회사는 아직까지도 지분을 확보하지 못한 것으로 알고 있다.
이와 유사한 사례로 터키기업과 컨소시업으로 참여한 A교량건설 사례도 한국 굴지의 기업이 당한 사례로 유명하다. 말도 안된다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지 모르겠지만 앞서 거론한대로 교량건설 수주시에 터키기업은 상당히 우호적이고 협조적이었지만 교량건설이 끝난 후 이들의 태도, 입장은 돌변했다. 수주가 이뤄졌다는 것은 대금지불방법이나 기타 조건들이 상호 합의에 의해 계약되었다는 의미인데 이들은 이 모든 것을 무시하고 교량통행료로 대금지불을 대체한다는 정부의 방침에 동의하고 통행료를 받아 상쇄시키려 했다.
노동을 시켰으면 노동에 대한 대가를 지불하는 것이 상식인데 이는 마치 노동은 노동이고 차후 돈이 벌리는대로 임금을 지불하겠다는 처사와 다를 바가 없는 태도다. 우리의 상식과 그들의 상식이 다른 것인지, 아니면 문화가 다른 것인지 도통 알 수 없지만 여하튼 이 기업 역시 지금까지 투자금을 회수하지 못하고 통행료를 징수 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이렇게 한국 굴지의 기업도 이렇게 뒤통수를 제대로 맞는데 중소기업이나 더 작은 기업인 경우 상황은 불보듯 뻔하다. 터키에 진출한 중소기업 상당수는 정부의 지원에도 불구하고 상당수가 당한 경험들이 있다.
이러한 관행과 문화의 차이로 인해, 한국과 터키와의 먹이사슬에서, 사업하는 방식에서 터키가 한국보다 상위에 포진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우리는 글로벌 스탠다드 방식을 따르는 반면, 그들은 그들만의 방식을 경우에 따라 다르게 적용하며 자신들의 룰을 따르게 하기 때문이다.
터키뿐만 아니라 다른 이슬람, 유대국가와 사업할 때도 우리는 먹이사슬의 아래층에 존재하니 결코 만만하게 볼 대상이 아닌 것만은 분명하다. 그들의 상술은 정확하고 철저한 계산하에 시작된다. 아니, 시작부터 목적하는 바가 분명한 것이다. 협상시 이슈없이 잘 진행이 되었다면 그들이 원하는 수준에 맞춰졌다고 여기면 된다. 반면, 그들의 반응이 거칠고 요구사항이 많아진다면 그들의 계산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하면 된다. 따라서 이슬람인, 이슬람기업, 유대인, 유대기업과 사업을 시작할때는 모든 가능한 상황을 예상하여 계약서에 다 반영해두는 것이 최소한의 방어장치가 된다고 할 수 있지만 필자의 경험상 그러한 내용이 있더라도 이들은 자기들에게 불리할 때는 너죽고 나죽자 식으로 덤빌 가능성이 아주 크다. 근거 없는 해꼬지투서는 기본이고 불편을 넘어 때로는 살벌한 협박도 서슴지 않는다.
한국과 중동의 주요국가에서도 한국은 먹이사슬의 피지배층에 놓여 있다. 큰 수주를 많이 하여 한국의 성장에 도움이 많이 되었지만, 그 이면에는 여러국가에서 대금회수까지 무척 힘든 과정을 겪어야 했다. 특히 사우디에서 한국기업들이 당한 사례는 많다. 빌딩건설, 공장건설, 인프라 건설사업에 뛰어들었지만 공사 완료 후 대금을 제대로 받은 경우는 드물었다. 한국의 대기업 역시 사우디에서 대형 빌딩 공사를 했지만 제 때 대금을 회수하지 못했다.
신뢰란 전적으로 믿는 것이 아니다. 관계에 따라 신뢰의 강도와 밀도는 달라져야 한다. 신뢰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고 게다가 어떠한 갈등요소가 빚어낸 위험기간을 함께 넘어선 이후에 신뢰의 잣대를 들이밀 수 있고 또 쌓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정서때문인지, 좁은 지역에서 좁은 해석으로 교육되어서인지 단일민족이 주는 단편적인 시각때문인지 우호적인 것을 신뢰로 연결짓는 오류를 자주 범한다. 상대는 전문적인 사업가들이다. 이들 눈에는 우리가 힘이 있는지 없는지를 아는 능력이 있다. 자신들에게 도움이 될 때는 간이라도 빼줄 듯 하지만, 도움이 안된다고 판단될 때는 과감하게 등에 칼을 꽂는다. 따라서, 신뢰를 너무 일찍, 게다가 듬뿍 주고받아서는 안될 것이다.
신뢰할 만한 자가 아니라면 신뢰는 보류되어야 마땅하다. 오히려 신뢰보다는 여운을 남기기를 권한다. 너희들이 잘못했을 때는 언제든 내 쪽에서 거래를 중단할 수 있다는 강력한 메세지를 직간접적으로 줘야만 한다. 힘은 힘이 누른다. 신뢰가 힘으로 유용해질 때까지 상황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그러니 힘이 있다는 것을 반드시 미리 보여줘야 하고 호구로 보일만한 부분은 철저히 감춰야 한다.
지나친 신뢰의 양태인 겸손과 배려, 인내는 호구의 보증서와 다름없다. 진실과 신뢰. 참으로 인간사에 필요한 부분이지만 사업에서는, 특히 상대가 상식에서 벗어난 자신만의 룰을 적용하는 거래에서는 진실과 신뢰를 돈독히 하는 방법 역시 달리 가야만 하는 것이다. 진실과 진리는 세상을 지배하는 대법(大法)인 것만은 분명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사업에 있어 진실을 이기는 것은 거짓일 수 있으며 인내를 이기는 것이 우기고 떼쓰는 고집과 아집일 때도 있음을 간과하지 않아야겠다. 물론, 이러한 묘한 경계를 잘 파악하는 것이 쉽지는 않겠지만 말이다.
Chap. I - 3편은 계속 이어집니다.
*** 본 내용은 투르키에를 폄하하기 위한 것이 아님을 명확히 해두고자 한다. 터키에서 비즈니스 할 때 어려운 점들이 있기에 그 부분에 대해 공유하여 터키 진출을 계획하는 기업들이 탄탄히 준비함에 작은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필자는 터키에서 오래 살았기에 감성적으로 무척 교감이 된다. 역사가 있고 제국의 기운이 있고, 한국 전쟁 시 자발적인 참전으로 도왔던 나라이기에 좋아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