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이 글이 되다 II
배움에는 끝이 없다는 문장의 뜻을 알기엔 나이와 상관없이 어떤 이들에게는 아직도 어려운가 보다. 자신을 알고 일생 동안 배움에는 소홀함이 없어야 한다는 것은 명확한 진리인데…
내 잘난 맛에 사는 부류는 세상 경험은 다 했고 이치를 깨달은 듯 얘기하고 다른 이의 소중하고 깊이와 밀도가 있는 얘기는 나도 안다는 듯, 냉소를 머금은 채 귓등으로도 안 듣는다. 게다가 자신의 지식, 의식 세계에 갇혀 그것이 정답인 냥 자신이 믿는 내용으로 훈수까지 둔다. 대화는 단절되고 한쪽은 실망, 한쪽은 철없이 의기양양 하니, 공감 부분 없이 서로 간의 거리만 확인한 채 돌아선다. 한쪽은 안타까워하고 한쪽은 가소로워하니 다시 만날 일이 없는 관계이면 각자의 갈 길을 가다가 늦은 깨침을 하거나, 계속 봐야 하는 관계이면 보이지 않는 벽을 두고 살다가 뒤늦은 공감을 할 기회를 만날 수도 있다.
자신만의 세계에 갇힌 부류는 어쩌면 뿌리도, 명분도, 이유도 없는 다소 유혹적인 대화에는 귀를 솔깃한 채 몸을 가까이 다가가 진중하게 듣는다. 마치 자신을 존중하는 듯한 말의 내용이기에 너무나 이해도 쉽고 평소 자신의 생각과 비슷하기에 심지어 확신까지 가져 여과 없는 공감을 표현한다. 유혹을 감춘 채 나열된 단어들이 진실을 설명하는지 진위여부를 가리지도, 사리 분명한 판단조차 못한다. 전체의 맥락도 보지 못하고, 한번 더 짚어가는 과정도 생략한 채, 쉽게 들리는 말에 기대, 믿음으로 의사결정하고 물적, 심적 양분을 그 결정에 맡긴다.
그러다가 기대한 바와 너무 멀어진 어떤 시점에 그 모든 말들 속에 감춰진 유혹이 드러나면 이건 아니라고, 절대 아니라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떨쳐버리려 하는 자신의 모습과 마주하게 된다. 이 결과가 인생을 바꿔 놓을 정도로 심각한 것이라면 모든 것에서 퇴출되어 좌절의 세계에 빠지고, 타격은 심각하나 재기의 기회가 있는 것이라면 처절한 깨달음으로 괴로워한다. 유혹을 선택한 결과의 정도와는 상관없이 나 잘난 것에 파묻혔던 부류는 스스로가 얼마나 무지했는지 자각하여 땅을 치고 후회하지만 이미 배는 뒤집어진 상태이기에 몸이라도 건져야 다음을 생각할 수 있게 된다. 좌절의 세계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면 굴러가는 질서에서 사라지는 것이다.
그러나 더 어리석게도 이들은 뒤집힌 배에서 겨우 탈출했던 순간을 망각한 채 또 같은 과정을 되풀이한다.
우리가 현명한 자신이 되고자 하지 않은 채 어제로서만 자신을 투사하고 있다면, 우리가 관람객으로서 유인원을 보며 웃음을 터뜨리듯 인간보다 고등한 어떤 생명체가 우리 인간을, 어쩌면 자신을 보고 배꼽 잡는 모습을 상상할 수 있지 않을까.
삶에서 배움이 부족하거나, 끊임없이 배우고 깨쳐야 한다는 진리를 깨닫지 못하니 어리석음이 어리석음인 줄 모르는 것이다.
<아라비아 속담>
자기가 모르면서 모른다는 사실조차도 모르는 사람, 바보니까 피해라.
자기가 모르면서 모른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 단순하니까 가르쳐 주어라.
알면서 안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 자고 있으니 깨우라.
알면서 안다는 사실도 아는 사람, 현명한 사람이니 따르라.
삶의 한 부분은 이런 것 같다. 나의 의식세계 속에서 살면서 평행으로 가는 세계를 보지 못한다면 나에게 다가오는 것은 오직 달달하고 부드럽고 간지러운 유혹이다. 이 유혹이 나의 귀속을 오염시키고 나의 정신을 헤쳐 놓고 나의 판단을 무력화시키다는 것을 인지하지도 못한다. 나의 굳어진 의식이 나의 눈, 귀, 정신을 딱딱한 콘크리트들로 가려놓으니 오직 그 틈을 비집고 들어가는 것은 형체가 보이지 않는 유혹뿐임도 모른다.
조직생활에서 이러한 부류를 쉽게 볼 수 있다. 자기 자만 혹은 일신의 안정을 위해 귀를 닫고 있다가 ‘너는 잘하고 있어’라는 달콤한 유혹에 빠져 잘못된 판단과 결정을 내리는 경우, 회사에 위기를 가져오는 상황을 만들기도 한다. 이로 인한 결과의 몫은 열심히 노력한 사람들에게 돌아가는데 일을 저지른 당사자는 여전히 무슨 잘못을 한지도 모른다. 최고 경영자, 혹은 대주주가 굳어진 자기의식으로 이러한 판단을 하게 되면 그 회사는 진정 위태한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미국 속담>
'웃을 때는 세상이 함께 웃는다.
그러나 울 때는 혼자 운다.'
나 외의 세계는 너무도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데 여전히 굳어진 의식, 굳어진 경험에 저당 잡힌 채, 사리 분명한 판단과 결정을 못하거나 엉뚱한 선택을 하게 될 때 그 피해는 많은 구성원들에 고스란히 가게 된다. 내가 아는 것이 최선이고 내가 아는 것이 쉬운 길이라는 오만한 믿음에 점점 더워지는 물 잔에서 놀고 있는 개구리 마냥 조직이, 사람이, 궁극적으로 회사 실체가 죽어가게 한다. 최근 일부 대 기업에서 나타나는 현상이 이와 유사한 면이 있어 보인다.
개인의 생활도 유사하다. 굳어진 의식, 오만함, 근본적인 무지로 인해 유혹에 빠지게 된다. 유혹은 오판을 하게 만들고 잘못된 선택, 쉬운 선택을 하도록 속삭인다. 그 결과는 좌절과 괴로움으로 돌아오는데 그럼에도 그 뜻을 깨치는 이와 못 깨치는 이가 있다. 쉬운 선택을 하는 이는 좌절과 괴로운 상황에서도 포기나 외면과 같은 쉬운 선택을 한다. 반면, 쉬운 선택의 결말이 뭔지 깨달은 이는 어려운 선택을 한다. 그리고 편안하고 쉬움을 거부하고 불편함을 감내하려 한다. 그 속에서 길을 다시 찾으려 한다.
상술한 오류에서 벗어나는 길은 끊임없이 배우는 것이다. 배우려 노력하는 것이다. 책을 통해서, 사람을 통해서, 소통을 통해서, 경청을 통해서, 경험을 통해서, 내려놓음을 통해서, 변화를 통해서, 스스로 혁신을 통해서 나아가야 하는 것이다. 어려움은 누구에게나 다가온다. 무조건 온다. 그러나 열어두고 배우려는 마음, 내려놓고 알려는 마음, 경험하고 깨닫는 마음, 공감하고 알아채는 감각이 있다면 어려움은 지나가는 과정이고 근본을 더욱 단단히 하는 좋은 스승이 된다.
나는 지금 이 글을 쓰면서 한번 더 생각하고 스스로 다지고 있다. 지금의 어려움이 나를 단단하게 다지고 있음을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