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별 갈등 해결 노하우 by 러시아
인간사에 갈등은 무조건 발생한다. 갈등을 없애는 유일한 방법은 내가 갈등보다 커지는 것이다. 조직도 마찬가지다. 조직의 양적 규모뿐만 아니라 질적 규모가 커지면 기존의 갈등은 더 이상 갈등이 아니다. 이 말은 인간과 조직의 연계 안에서 갈등은 무조건 발생하며 갈등의 속성은 인간 또는 조직의 크기와 비례한다는 의미다. 조직이 크면 갈등도 크게, 조직이 작으면 갈등도 작게. 단, 갈등에 초점 맞추지 말고 인간 또는 조직을 키우는 것에 초점 맞추면 갈등이 사라진다.
다른 시각으로, 사업을 하나의 유기체로 보면 사업의 속성에 갈등이 존재한다고 볼 수 있다. 유기체는 자체적으로 정화능력이 있지만 시간과 문화를 함유한 사업에서 자체적으로 해결되기만을 기다리는 경우는 드물다. 즉, 인간이 주체적으로 갈등에 대처하거나 해결해야 하는 것이다.
10개국에서 사업을 펼쳐 본 나로서는 각 나라의 문화나 습관을 배제하면 갈등을 풀어낼 수 없다는 숱한 경험을 했다. 전편에 이어, 조직 내의 개인 간의 갈등에 집중하여 각 나라의 독특한 해결 방식을 나열해보려 한다.
오늘은 러시아 사례로, 조직 내에서 갈등이 생겼을 때 어떻게 해결하는지 그 노하우에 대해 재미있는 사례로 얘기해 보려 한다.
러시아 근무 첫날, 모스크바 사무실에 각 부서의 리더들을 불러 모았다. 물론 미팅 전에 전임 CEO, 주재원을 통해 주요 인물들의 성향, 성격, 업무 역량, 근무 연수 외 특장점을 파악하였다.
이들 중 유독 내 시선을 끄는 이가 있었다. 샤사라는 직원인데 근무연수가 오래되었고 러시아 남자 특유의 마초 기질이 강하며, 부서원들을 확실히 장악하고 있지만 타 부서장들과 교류가 없는 독특한 인물이었다. 일을 열심히 하지도 않고 열정도 없고 조직에는 다소 삐딱한 인물이었다. 조직 관리 측면에서는 정리를 해야 하는 인물인데 이상하게 거래선들은 그를 옹호했기에 처내지 못하는 오묘한 그였다.
이런 에너지뱀파이어들은 조직에 꼭 있지만 일반적으로 비슷한 성향을 보인다. 이들은 회사에서 생존하는 방법을 본능적으로 안다. 거래선, 부서원들을 자신만의 개인적인 친화력으로 감화시켜 자신이 설 땅을 만들어 두는 데다 자존심도 강하고 자신에게 도전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자신의 자리를 위협할만한 이인자에게는 절대 마음을 주지 않고 자신에게 복종하는 자는 철저히 케어하는 보스기질도 남다르다. 더 악질적인 인물은 자신이 해고당할 상황을 대비하여 회사를 상대로 협박할 자료들을 미리 모아두기도 한다.
이러한 인력을 관리하는 것이 조직의 역량을 키우고 성장하기 위해 중요한 과제이다. 내치거나, 조직에 필요한 존재로 변화시키거나.. 리더는 리스크를 지더라도 판단하고 선택을 해야 한다.
신임 CEO와의 첫 대면, 부서장들은 호기심 반, 긴장 반의 모습으로 회의실에서 웅성웅성 얘기를 나누며 기다리고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 쥐 죽은 듯 조용해졌고 뭔가 새로운 것을 기대하듯 나를 쳐다봤다. 사전에 공부한 인사 파일 덕택에 누가 누구인지 한눈에 구분이 되었다. 한동안 말을 하지 않고 한 명 한 명 얼굴을 쳐다보면서 눈인사를 했다. 미소로 눈인사를 하는 부서장도 있었고 눈을 피하는 부서장, 그리고 딴짓하는 부서장도 있었다. 요주의 인물인 샤샤는 기둥 뒤에 앉아서 나의 시선에서 온전히 비껴 가려했고 아니나 다를까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면서 딴짓을 하고 있었다.
준비한 내용을 부서장들에게 하나하나 설명하고 2025년 비전까지 제시했다. 지역 전체 2025년 75억 불 매출 및 각 제품별 목표와 위상을 보여주며 충분히 성취 가능함을 강조하고 달성하기 위한 핵심 과제들을 제시하였다. 지난 7년간은 내실중심경영으로 매출이 정체되고 조직의 다이내믹스가 떨어져 침체된 분위기였기에 2025년까지의 목표와 비전 제시는 이들의 관심을 끌어내기에 충분했고 부서장들의 표정도 들뜨기 시작했다. 웅성웅성, 부서장들 간에 대화가 오고 가며 에너지가 올라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런 분위기와는 달리 요주의 인물 샤샤는 여전히 혼자서 딴짓을 하고 있었고 시큰둥한 표정으로 주변의 부서장들 마저 불편하게 만들고 있었다. 아무도 샤샤를 건드리지 않는 상황을 보니 신임 CEO인 내가 그에 대한 조치를 취해주길 바라는 듯했고 실제 그 타이밍이 된 것도 직감적으로 알아챘다.
“샤사!”
화난 목소리로 이름을 불렀다. 자기 이름을 부를 것으로 예상을 안 했을 것이고 더욱이 매우 화가 난 목소리에 적잖이 놀라는 표정이었다.
“샤사!”
한번 더 화난 목소리를 불렀을 땐 무슨 뜻인지 알 것이었다.
“예스, 미스터 김”
말투는 평이했지만 긴장한 것이 분명했다.
“샤사, 당장 미팅룸에서 나가!”
긴말 필요 없이 미팅룸에서 내쫓았다. 자존심이 누구보다 센 샤사가, 전례에도 없었던 CEO 주관 미팅 중에 쫓겨났으니.. 그리곤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미팅을 계속했고 앞으로의 업무 프로토콜까지 설명을 하고 마쳤다.
새로 부임한 회사의 첫 미팅에서 요주의 인물을 쫓아낸 신임 CEO의 메시지는 명확했고 같은 날 전 직원에게 퍼졌으며 지역 내의 타 회사에도 전파가 되었다. ‘문제를 일으키는 인물은 가차 없다’는 메시지는 그렇게 자연스럽게 퍼졌다.
그렇다. 초강수. 조직 내 갈등 시 적절한 타임에 필요한 능력이다. 서열, 체면, 겉으로 드러난 모습이 중요한 러시아 조직 문화에서 갈등이 생겼을 때 곧바로 해결이 안 되면 하이라키에서도 균열이 생긴다. 즉, 항명, 저항이 생기게 되는 것이다. 부서 간의 갈등에서도 강수를 활용해서 해결을 해야 한다. 깔끔한 해결을 못한 채 미적미적하다간 부서 간의 불편한 감정만 쌓이고 리더십도 손상을 입게 된다.
러시아에서 갈등은 권력, 리더십에의 도전이다. 종종 갈등의 상황을 만든다. 갈등 해결 역량이 곧 힘이고 리더십이 된다. 반대로 갈등 해결을 못하면 사각지대가 발생하고 샤샤와 같은 인물들이 발생하여 조직의 분위기를 흐려 놓고 리더십에 상처를 낸다. 상처 난 리더십에서는 조직이 움직이지 않는다.
나는 강조한다. 갈등 원인 혹은 갈등 제공자를 제거 함에 다양한 리스크 요인이 있더라도 강수를 둬서 갈등을 해결하는 것이 적절한 선택이 된다. 갈등이 해결되면 리스크는 오히려 넘어설 수 있고 더 단단한 조직, 더 강한 힘과 리더십을 갖게 된다.
샤샤의 경우, 업무 사보타주, 동료 간 위화감 조성 등의 리스크가 있을 수 있는 인물이었지만 이 사건이 자신의 위상, 자신을 바라보는 동료들의 시각, 평가를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 나와 업무 프로토콜을 맞추기 위해 노력을 하였고 자세, 행동 또한 스스로 고쳐 긍정적인 부서장으로 변화하기 시작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하듯이 갈등 해결은 사람도 변하게 만든다.
어느 나라에서든 기업 활동에서 갈등은 없을 수가 없다. 그리고 갈등은 피하는 것이 아니라 부딪혀 해결을 해야 하는 것이다. 갈등 해소 뒤에는 얻을 수 있는 것이 많기 때문이다.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그 나라의 문화적 특성을 알아야 하는 것이 선결 과제이다. 시간이 지나면 자연히 알 수 있는 부분들이 있겠지만 하루라도 빨리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각 나라에서 이방인으로서 기업 경영의 성과를 창출하기 위해선 그 나라의 문화 속에 있어야 하고 문화적 특성을 파악하려는 부단한 노력이 있어야 함을 또 강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