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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노아 Feb 25. 2024

갈등에 대처할 것인가, 해결할 것인가? Part III

국별 갈등 해결 노하우 by 터키

인간사에 갈등은 무조건 발생한다. 갈등을 없애는 유일한 방법은 내가 갈등보다 커지는 것이다. 조직도 마찬가지다. 조직의 양적 규모뿐만 아니라 질적 규모가 커지면 기존의 갈등은 더 이상 갈등이 아니다. 이 말은 인간과 조직의 연계 안에서 갈등은 무조건 발생하며 갈등의 속성은 인간 또는 조직의 크기와 비례한다는 의미다. 조직이 크면 갈등도 크게, 조직이 작으면 갈등도 작게. 단, 갈등에 초점 맞추지 말고 인간 또는 조직을 키우는 것에 초점 맞추면 갈등이 사라진다. 


다른 시각으로, 사업을 하나의 유기체로 보면 사업의 속성에 갈등이 존재한다고 볼 수 있다. 유기체는 자체적으로 정화능력이 있지만 시간과 문화를 함유한 사업에서 자체적으로 해결되기만을 기다리는 경우는 드물다. 즉, 인간이 주체적으로 갈등에 대처하거나 해결해야 하는 것이다.  


10개국에서 사업을 펼쳐 본 나로서는 각 나라의 문화나 습관을 배제하면 갈등을 풀어낼 수 없다는 숱한 경험을 했다. 전편에 이어, 조직 내의 개인 간의 갈등에 집중하여 각 나라의 독특한 해결 방식을 나열해보려 한다.  

오늘은 터키 사례로, 조직 내에서 갈등이 생겼을 때 어떻게 해결하는지 그 노하우에 대해 재미있는 시각으로 얘기해 보려 한다.   




“다니엘, 개인 면담을 할 수 있을까요?” 


얼굴이 붓고 눈 주위가 벌건 모습으로 야스민은 갑자기 법인장인 내 방으로 들어왔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무슨 일일까? 비교적 이성적인 야스민이었기에 부은 얼굴만으로도 사태의 심각성이 가늠되었다.


야스민은 대학 졸업예정자 대상으로 진행한 채용 프로그램에 의해 선발된 인재였다. 입사 후 불과 3개월 만에 직무 훈련을 완수했고 판매 법인에서 제일 중요한 역할인 PM 조직으로 배치가 되었다. 이 조직에서 TV를 담당하였는데 업무 파악도 빨랐고 세밀함, 집요함, 호기심, 책임감이 강한 탁월한 사원이었다. 야스민에게 일을 맡기면 빨리, 깔끔, 정확하게 진행이 되었기에 여러 부서장들이 탐을 내어 언제든 자기 부서로 데려가고 싶어 했다.


사연은 이러했다. PM으로 근무한 지 2년이 지난 즈음에 야스민은 다른 제품을 맡아보고 싶다고 부서장 에르칸에게 다른 부서로의 전배를 요청했다. 사전에 아무런 조짐을 느끼지 못했던 터라 에르칸은 야스민의 느닷없는 행동에 당황했으나 후배양성에 적극적이던 그는 어떤 이유로 전배를 요청했는지 먼저 알아보고 결정하기로 한 것이다.


야스민의 총명함을 탐낸 온라인 팀 부서장 무랏이 그녀를 꼬드긴 것이었다. 온라인 팀은 뜨고 있던 부서였기에 직원들의 선호도에서 #1이었다. 앞으로 성장 가능성이 높은 부서에서 오라고 하니 똑똑하고 야무진 야스민도 앞뒤 안 보고 온라인 팀으로 가겠다고, 모든 일에 자신감 넘치는 야스민답게 이 건도 다소 쉽게, 그러나 자신감 있게 결정해 버린 것이다.


에르칸은 대략의 상황을 파악한 후에 온라인 팀장인 무랏에게 따졌다. 절차를 무시한 점과 야스민에게 헛바람을 넣은 점 등에 대해 조목조목 설명하였고 야스민은 못 데려간다고 못을 박아 버렸다. 그리고 야스민도 혼쭐을 냈다. 에르칸은 야스민을 키울 생각이 있었기에 빠르게 성장하는 온라인팀으로 보내 줄 계획을 이미 갖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런데 야스민은 모든 절차를 무시한 채 본인이 하고 싶은 대로 한 것이었다.


에르칸의 항의를 받은 후에, 무랏은 야스민에게 부서 이동은 없던 일로 하자고 통보를 했다. 사건의 전반적인 스토리가 드러났고 사내에서 소문이 빠르게 퍼져 ‘야스민은 이기적이다’라는 이미지가 형성되었다. 온라인팀에도 못 가고 기존 부서에서는 미운털이 박힌 신세로, 오도 가도 못하는 처지가 되어버렸다. 야스민과 에르칸, 야스민과 무랏의 갈등은 점점 커졌고 부서장이었던 에르칸과 무랏의 사이에도 갈등이 생겨 대면대면한 사이가 되어버렸다. 




이들의 갈등을 해결해야 했다. 야스민, 에르칸, 무랏 모두가 중요한 역할을 하는 동료들이었기에 이들의 갈등은 회사로서는 손실이었다. 


이들을 한자리에 불러 모았다. 각자가 가지고 있는 불만을 얘기하도록 했다. 그리고 서로에게 바라는 것을 얘기하도록 했다. 의외로 각자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알고 있었다. 왜 갈등이 생겼는지도 아는 듯했다. 


잘못을 인지하고, 갈등이 있음을 인지하는 이들의 갈등을 해결하는 것은 수월했다. 사과를 먼저 하도록 했고, 사과 내용을 존중하도록 했다. 사과하는 것을 어려워하는 성격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기에 사과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든 것이다. 그리고 이들 모두를 저녁 식사에 초대했다. 터키 전통 술인 라크 (Raki)를 마시면서 이들의 본연에 깔려 있는 흥을 돋웠다. 이들의 중요성을 얘기하고 서로가 협업하면 더 나은 성과를 만들 수 있는 존재들 임을 강조하였다. 즉, 이들의 가치를 높이 평가하고 자존심을 올려 주었다. 실지로 충분히 역량을 갖춘 인재들이었다. 


다음날 아침에 출근해서 이들을 또 내 직무실로 불렀다. 터키 전통차인 차이를 마시면서 다시 다독였고 즐거운 얘기를 나누면서 웃음소리가 직무실 밖으로 새어 나가게 했다. 밖에 있는 직원들이 귀를 쫑긋 하고 있음을 알았기에.. 이들이 중요한 인재들임을 서로 알게 했고 직원들도 알게 한 것이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갈등은 해소되었고 야스민은 다시 부서에서 더 즐겁게 일을 했고 두 부서장의 협업으로 TV도, 온라인 판매도 늘었다. 1년 후, 야스민을 온라인 부서로 배치하여 미래 리더로 육성하였다.       

   

의외로 이틀 만에 갈등이 해결되었다. 사실 사람 간의 감정이 격해지고, 간과해도 될만하여 무시한 절차로 인한 갈등은 규정보다는 감정에 초점을 맞춰야 했다. 중요한 것은 터키인들은 자존감이 낮은 대신 자존심이 상당히 강한 성향이 있다. 심지어 월급을 서로 비교할 정도로 항상 동료와 자신을 비교하여 감정에 휘둘린다. 소문에도 아주 민감하며 뒷 담화인 남 얘기도 많이 하는 데다 본인이 남들에게 어떻게 비칠지에 민감하다. 그래서 내가 갈등해결의 포인트를 둔 것은 이들의 높은 자존심을 모두의 앞에서 세워준 것이었다. 일부러 밖에 들리도록 커다란 웃음소리를 낸다거나 함께 식사를 하며 각자의 역할에 대한 칭찬으로 개개인을 고무시켰던 것이다.


그렇게 야스민의 사례처럼, 자존심으로 인해 서로 얘기하지 못했던 부분은 오히려 자존심을 부추기는 대화로 유도했다. 부서간 비교에 의해 물러서지 않았던 부분은 '따르고 존경할 만한 사람들이다'라고 두 부서장의 자존심을 세워주었다. 소문 때문에 괴로워한다면 그 소문을 커다란 웃음의 분위기를 사내에 퍼뜨리면서 상쇄시키는 식으로 풀어갔던 것이다. 




이러한 문화적 특성을 배제하면 갈등은 해소할 수 없다. 이방인이었던 나는, 나라별 문화적 특성이 있음을 알고 이를 파악하기 위해 나만의 방법으로 접근을 했다. 새로 부임하는 나라에 도착하여 제일 먼저 한 일이 인사 책임자와 상의하여 우수 인력 30명 리스트를 만드는 것이었다. 


부임 후 첫 2달은 매일 저녁, 한 명씩 식사를 했다. 식사를 하면서 이들의 성향, 애로사항, 개선사항을 파악을 하였고 매일 식사 장소를 달리하면서 로컬의 맛집들도 파악할 수 있었다. 30여 명의 얘기를 들으면서 공통적인 부분과 개별적인 부분이 나누어 법인의 동향에 대해 윤곽을 잡았다. 이렇게 파악된 30일의 기록은 법인 경영, 사업 성과 창출에 유익한 도움이 되었고 갈등 해결뿐만 아니라 더 결속을 다질 수 있는 좋은 아이디어를 제공해 주었다. 


어느 나라에서든 기업 활동에서 갈등은 없을 수가 없다. 그리고 갈등은 피하는 것이 아니라 부딪혀 해결을 해야 하는 것이다. 갈등 해소 뒤에는 얻을 수 있는 것이 많기 때문이다.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그 나라의 문화적 특성을 알아야 하는 것이 선결 과제이다. 시간이 지나면 자연히 알 수 있는 부분들이 있겠지만 하루라도 빨리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각 나라에서 이방인으로서 기업 경영의 성과를 창출하기 위해선 그 나라의 문화 속에 있어야 하고 문화적 특성을 파악하려는 부단한 노력이 있어야 함을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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