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tv에서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를 봤다. 이런 배경에서 보편적으로 등장하는 인물 가운데 하나는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데 어떤 연유로 완. 장.이라는 것을 찬 작자다. 동료, 친지, 지인들을 배신하고 괴롭히고 감시하는, 권력에 빌붙어 있는데도 표면적으로는 시대에 부응하는 듯 보이고 깊이 있게는 하대와 천대를 당한 것에 대한 복수심에 불타 사리분별 못하고 정의가 뭔지도 모르는 작자들이다. 완장. 이들에게 이런 권력(?)을 부여한 것은 왼쪽 팔에 낀 완장이다. 이 빨간색의 완장 자체가 권력의 상징이니 이들에겐 신줏단지인 것이다. 완장을 차는 순간 주인도 아닌데 주인행세를 하고 마을의 대소사에도 감나라배나라 할 권리가 주어진다.
이 완장은 살아왔던 습관부터 생각까지 모든 걸 바꿔버리는 강력한 힘을 준다. 물론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 보이지 않는 힘을 빌어 하대 받던 군상들이 상전이 되는, 그래서 상전의 위치에서 생각이란 것을 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제대로 된 생각 없이 마치 유레카라도 발견한 듯 이치에도 맞지 않는 다른 세상을 향해 앞으로만 질주하는 것이다. 이 과정을 통해 또 다른 완장차는 이들을 마구마구 양산하는... 사실 해방 이후에 부자가 된 사람들 중에는 완장출신들이 많지 않을까 싶다.
부정적인 측면을 보면, 완장은 원래 타고난 역할을 부정하고 스스로 감당할 수 없는 역할까지 하게 하여 많은 모순과 부조리를 만들게 된다. 완장을 차고 있는 사람과 악연이 있다면 죄 없는 사람도 죄가 있는 사람이 되기도 한다. 부를 가졌던 사람은 완장 찬 사람의 계략으로 하루아침에 거지로 전락하기도 한다. 단순히 싫어한다고, 과거에 당했다고, 방해한다는 이유로 모함을 하여 세상에 없는 나쁜 사람으로 만들기도 한다. 이런 과정으로 사회는 불안, 모순, 혼란이 생기게 되기도 한다.
이처럼 그 시대의 특수한 상황에서 생긴 완장과 완장을 찬 사람, 완장 짓으로 인해 역사 흐름의 물줄기 일부는 방향을 틀어 다른 곳으로 흐르기도 한다. 선한 부자가 망하거나, 곧은 이가 악인이 되거나, 뜻있는 사람이 역적이 되거나, 건강한 마을이 황폐해지거나, 믿음이 있는 곳에 의심이 생기거나, 단합이 있는 곳에 분열이 생기거나, 열심히 일하기보다는 쉽게 하려는 현상들이 생기게 되는 것이다. 그만큼 완장 짓이 무서운 에너지라는 것이다.
사회적 존재는 폭정과 노예, 협상으로 이뤄져 있다(주 1)고 한다. 하고 싶은 대로 하는 폭정. 상대방이 원하는 대로 하는 노예, 그리고 협상이 그것인데 완장을 찬 사람은 폭정이기도 노예이기도 하다. 결코 협상의 상대인물은 되지 못한다.
결국, 완장은 폭정이거나 노예이거나 아니면 둘 다 이거나이다.
일과 사람으로 모인 조직에도 이런 완장 짓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내 조직에 이런 완장 짓 하는 리더, 혹은 동료가 있다고 생각하면 무섭고 아찔할 것이다. 특히 조직의 리더가 완장 짓을 한다면 그 조직은 결코 성과를 만들 수 없고 무너질 수밖에 없다. 조직은 불신, 기만, 비리, 사리사욕, 사고, 개인기만 난무하고 다져왔던 기초도 붕괴되고 하려는 사람들은 떠나게 된다. 실지로 그런 사례들을 여럿 봤다.
현지 법인은 (법인장 포함) 주재원과 현지직원들이 공존하는 조직이다. 주재원은 본사의 일부 기능을 위임받아 현지 법인_즉 회사_에 소속된 직원들이 여하히 자신의 역할을 다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주 임무이다. 이를 위해, 본사에는 현지를 대변하고, 현지에서는 본사의 방향과 메시지를 전달하여 현지에 맞게 활용이 되도록 하고 한 방향으로 가도록 지원하는 것이다.
현지 법인에는 법인장(CEO), 관리담당(CFO), 영업 담당, 혁신 담당, 물류 담당, 서비스 담당, 마케팅 담당 등 본사의 기능에 준해 주재원이 파견되어 있다. 물론 법인의 규모에 따라 주재원 수와 기능은 다를 수도 있다. 주재원이 속한 부서에는 현지인력들이 있다. 주재원과 현지 인력들이 한 팀이 되어 원활한 소통도 하고 한 가족처럼 일을 하는 것이 최선의 결과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이것이 주재원에게 기대하는 것이다.
그런데, 주재원들이 자신의 역할에 대해 잘못 이해하여 불필요한 상황을 만드는 경우도 발생한다. 그 사례들을 살펴보자.
1. 완장 짓 하는 경우 : 최악의 주재원
비용을 담당하는 부서 주재원 경우, 회사의 모든 비용 관리 권한을 갖고 있는데 이 권한을 이용하여 현지 직원들 대상으로 갑질을 하거나, 거칠게 대하거나, 이간질시키거나, 사적인 일을 시키는 사례들이 발생한다. 자기에게 충성하게 하고 이를 위해 직원들을 차별 대우 하는 방법을 취한다.
2. 부서원들 하대하는 경우 : 마치 자기가 다 안다는 생각을 하는 주재원
주재원이 제일 많이 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고 자신의 생각과 다르면 직원들을 하대하거나 무시한다. 의견이 부딪힐 경우, 철저하게 무시하거나 목소리를 높이고, 조직에서 왕따를 시킨다. 이것도 일종의 완장 짓이다.
3. 부서원들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경우 : 소신이 없고 책임질 행동과 결정을 안 하는 주재원
절대 책임을 지려 하지 않고 책임을 져야 하는 상황이 생기면 자신은 빠지고 직원들에게 책임을 돌리거나 역으로 책임을 묻는다. 과감한 의사결정은 안 하고 가장 쉬운 방법을 택하거나 늘 중간을 선택하는 의사결정을 한다. 이것도 일종의 완장 짓이다.
4. 부서원들과 소통하지 않는 경우 : 혼자서 뭘 하는지 아무도 모르지만 바쁜 주재원
일은 열심히 하는데 직원들과는 소통하지 않고 철저히 혼자서 한다. 본사와의 소통도 혼자의 생각만으로 하고 직원들의 의견, 생각은 반영할 생각을 안 한다. 소통을 안 하니 모른다는 것이 맞을 수 있다. 소통 없이 일하는 주재 기간 동안 조직은 망가지거나 썩어 간다. 이것도 일종의 완장 짓이다.
5. 부서원들과 갈등만 하는 경우 : 소통하지 않는 것보다는 나으나 갈등만 만드는 주재원
직원들에게 왕따를 당하는 경우이다. 업무에 대해 아는 것이 없거나 본사에서 리스펙트 받지 못해 직원들을 보호하거나 대변할 역량이 부족하다. 본사의 메시지를 직원들에게 제대로 전달하지도 못하고 직원들의 뜻과 아이디어를 어필하지도 못하니 어디에서도 환영받지 못한다. 그러나 주재원이라는 신분이라는 이유로 직원들에게 강제로 요구를 하는 순간 갈등만 초래한다. 그렇다고 갈등을 해결하여 발전적인 단계로 나아가지도 못한다. 이것도 일종의 완장 짓이다.
이 외에도 여러 경우들이 더 있으나 여기서 중략한다.
새 법인에 부임할 때마다 주재원들에게 제일 강조하여 얘기하는 것이 완장 짓 하지 말라는 것과 주인 행세 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완장 짓의 폐해를 알기에, 완장 짓을 하는 주재원의 마음 자세를 알기에, 완장 짓으로 인해 법인의 역할이 훼손됨을 알기에 여러 번 강조하였다. 그럼에도 완장 짓을 하는 주재원이 있었음에 나의 리더십에 깊은 고민을 했었고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또 확인하게 되었다.
정말 사람은 변하지 않는 걸까? 변하지 못하는 것일까? 아니면 자신이 변화하는 것보다 완장짓이 더 자신에게 유리한 것일까? 이 문제는 철학자들부터 깊이 고뇌하는 문제이니 내 선에서 판단하기는 애매한 노릇이다.
주재원은 가족과 같이 부임하기에 웬만한 잘못이 아니면 조기 귀임을 시키지 않으려 했다. 그러나 완장 짓을 하는 주재원은 몇 번의 기회에도 변하지 않는다는 것과 기본 소양이 안된 것임을 알기에 용서하지 않았다. 왜 그런 주재원을 선발했느냐 질문한다면, 사람을 잘못 봤고 그것은 나의 오만이었다.
건강한 완장 짓은 있을 수가 없다. 조직을 위해 완장 짓을 할 수밖에 없다는 것도 성립이 되지 않는다. 완장 짓은 완장 짓일 뿐 그 이상의 의미가 부여될 수 없다.
일제 강점기 얘기에서 언급하였지만 완장 짓 이면에는 억울, 반항, 적개, 복수 등의 부정의 기운이 깔려 있는 것이다. 현지 문화에 녹아 들으려는 노력, 소통하려는 노력, 이해하려는 노력, 공감하려는 노력, 지원하려는 노력, 같이 하려는 노력 등이 있다면 아무리 강한 권한, 권력을 줘도 완장 짓은 하지 않을 것이다.
일은 사람이 한다. 사람이 되어야 일도 된다. 사람이 안되어 있는데 일의 결과를 기대하는 것은 부정, 부실을 요구하는 것과 같다. 보이는 모든 증상은 보이지 않는 것의 결과이며 현실은 과거 판단들의 실체다. 결국, 사람이 되어 있지 않는다면 일에서의 결과도 기대할 수 없다.
법인장, 주재원은 회사의 얼굴이다. 현지에서 건강한 회사, 존경받을 수 있는 회사로 발전시켜야 책임이 있는 사람들이다. 명함에 적힐 어떤 위치만 이렇다는 것은 아니다. 자기 신분과 자격에 맞는 자신의 책임하에 모든 완장짓은 철저하게 근절되어야 할 것이다. 역할을 위임받은 것이지 권력을 위임받은 것이 아니다. 각자에게 주어진 역할을 다 할 때, 법인은 건강하게 지속 성장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주재원들도 더 크게 성장할 것이다.
즐겁게 위임받은 역할을 다하는 것이 선순환의 흐름, 지속 성장 흐름, 건강한 에너지의 흐름을 만드는 지혜이지 않을까?
(맡은 바 역할 이상을 하고 현지의 문화에 녹아들고 직원과 사회와 소통하며 목표를 성취하는 주재원들이 대다수입니다. 오해가 없으시를 바라면서..)
(주 1) 조던피터슨, 질서너머, 2021, 웅진지식하우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