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아지도 시차적응이 필요할까?
갑자기 궁금해졌다. 코디의 이런저런 행동을 보면, 답은 ‘시차적응이 필요하다’이다. 아직 분리불안 장애가 남아 있는 녀석인데 캐나다에서 한국으로, 비행기 속에서 거의 갇혀 있다시피 왔고, 한국의 집은 처음 마주하는 환경이니 컨디션이 좋을 수가 없을 터이다. 딸아이와 약 3주를 떨어져 지낼 수는 없으니 고생이 되더라도 같이 온 것인데 여정 자체가 녀석에게는 힘든 도전일 텐데… 불쌍한 우리 반려견 코디... 물론 코디를 아이처럼 돌보는 딸아이도 힘들어 하긴 매 한 가지.
도착한 첫날 저녁 무렵, 목욕을 시키니 딸아이가 있는 침대로 올라가 자리를 먼저 잡았다. 분위기 파악을 위해 두리번거림도 잠시, 이내 골아떨어졌다. 공항에서 집으로 오는 차 안에서도 어리둥절 정신을 못 차리고 딸의 품에 안겨 축 늘어졌는데 집에서도 곧바로 퍼진 것이다. 당연히 동물이니까 자기 습성, 관성이 있고 '시차'가 아니라도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것에 관성이 저해가 되겠지. 그러니 코디도 힘들겠지. 그러면서도 코디가 자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혹시나 아픈 곳이 생겼나 걱정이 되었다.
미국 전문 사이트를 통해 알게 된 강아지들의 대표적인 시차적응 증상들은 이러했다. ‘잠을 충분히 자도 지속 졸려한다’, ‘시차에 맞지 않은 시간에 배고파한다’, ‘평소 대비, 방향 감각이나 행동이 둔해진다’, ‘평소 대비, 반응이 느리고 놀이에 흥미가 덜하다’, ‘분리불안이 심해진다.’ 이런 증상들이 2~3일이 지나면 없어진다고 하는데 지속된다면 문제가 생긴 것이니 동물병원에 가보라 한다.
지금은 별다른 특이점이 보이지 않지만, 몇 일간은 시차적응 증상과 코디의 상태를 유심히 비교하여 체크해야겠다. 강아지도 인간과 마찬가지로 특정 시간에 자고, 일어나고, 먹는 일정한 리듬, 패턴이 있는데 이 패턴을 지켜주기 위해 여행 전에 목적지 시차에 맞추어 리듬을 바꿔줘야 했던 모양이다.
코디에 대한 모니터링은 평소에도 해야 하지만 환경이 달라졌으니 좀 더 세밀히 봐야겠다. 기력은 괜찮은지, 먹는 양은 어떤지, 배변 상태는 양호한 지 등등.. 그리고 먹는 음식도 너무 급하게 현지식으로 변경하면 안 될 것 같다. 기존에 먹던 것에서 천천히 비중을 현지식으로 옮겨 조절해야 할 듯 하다.
강아지 돌보는 것이 아이 돌보는 것과 다를 바가 없이 손길이 많이 간다. 평상시 딸아이의 코디에 대한 손길을 떠올려보니 얼마나 깊은 사랑과 애착이 담겨 있는지 느껴졌다. 어쩌면 우리 부부가 딸아이에 주었던 것보다 더 깊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고 어린 나이에 오랜 기간 동안 홀로 버텨냈던 딸아이의 깊었던 외로움도 느껴져 울컥해졌다. 코디와 딸아이의 모습은 연민, 미안함을 불러왔고 점점 더 지울 수 없는 감정이 되어 가는 것 같다.
캐나다에서 온 코디가 한국강아지들과 소통하다니!
새벽녘에 딸도, 코디도 깨어 난 듯했다. 녀석들의 시차 적응이 본격 시작된 것이다. 다행인 것은 딸과 같이 코디도 리듬이 같다는 것이다. 이렇게 새벽에 뒤척이다 분명 다시 골아떨어질 것이니..
아침 9시, 늦은 시간에 딸아이가 일어나 나갈 준비를 할 때까지 코디는 딸의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 분명 코디가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는데.. 이 녀석이 딸아이가 외출할 것임을 아는 듯했다. 안 그래도 새 환경인데, 떨어져 있어야 할 상황이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모양이었다. 나와 아내는 딸아이 방으로 들어가 코디 곁에 앉았다. 딸이 나가기 전까지 우리의 냄새와 캐나다에서의 기억을 떠올리도록 머리를 쓰다듬고, 이름을 부르고, 코디의 먹이로 꼬드겼다. 그러나 코디는 하염없이 딸아이만 쳐다보았다.
딸아이가 외출하려 현관문을 나설 때 코디도 따라나섰다. 캐나다에서 하던 습관처럼.. 그냥 두면 따라나설 것이니 아내가 코디를 안았다. 코디는 이내 짖기 시작하고 딸이 시야에서 사라지자 낑낑대기 시작했다. 새 환경에서 분리불안 증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한참 동안이나 낑낑거림을 멈추질 않았다.
나와 아내는 코디를 산책시키기로 했다. 밖으로 나가자 코디는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여기저기가 신기한 듯 정신없이 뛰어다녔다. 사람도 많고 강아지들도 많으니 다소 흥분한 듯했다. 코디는 분명 생각했을 것이다. ‘산책로에 왜 이리 강아지들이 많지?’ 지나가는 강아지들을 피하지 않고 다가가 하나하나 체크를 하는 듯했다. 같은 종인 비숑강아지와는 좀 더 오래 서성이며 얘기를 나누는 듯했다. 밖에서는 의외로 현지 적응을 잘하는 모습이었다.
캐나다에서 왔음에도 한국말을 알아들으니 주변에서 외치는 한국말에 반응을 하는 듯했다. 딸아이에게서 듣던 한국말이 여기저기서 들리니 무의식적으로 반응을 한 것이 아닐까 싶다. 참고로 “코디야”까지 해야 고개를 돌려 쳐다보니 “코디”라고 부르면 일부러 대꾸도 안 하는 녀석이다.
그런데 궁금한 것이 또 생겼다. 길거리에서 만난 한국 강아지들과는 어떻게 소통을 할까? 구글에서는 ‘언어로 소통하지 않는 동물이기에 몸, 꼬리를 이용하여 소통이 가능하다’라고 한다. 외국에서 데려와 한국에서 키워도 다른 개들과 의사소통에 문제를 겪지 않는다고 한다. 그렇겠지, 인간만의 언어는 인간의 뛰어난 두뇌로 인해 영역이 구분되어 있겠지만 동물의 언어는 그래도 아직 자연발생적인 보편성을 띄지 않을까? 물론, 들리는 것이 낯설 수도 있지만 본능에 충실하고 본능으로 소통하니 인간보다는 종족끼리의 소통은 더욱 자연스럽고 편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사람과 강아지 사이의 의사소통에는 문제가 있을 것 같다. (캐나다에서 딸아이가 이미 검증을 하였지만) 보호자의 언어로 익숙해진 강아지는 그 언어로만 반응하기 때문에 영어로만 소통했다면 한국에서 한국어 소통은 안 되는 것이 정상이지 않을까? 그러나 코디는 한국말, 캐나다(영어) 말을 알아들으니 한국 사람과의 소통에는 문제가 없는 것 같다. 영어를 알아듣지만 한국말로 안 하면 가끔은 대꾸도 안 하는 고집도 있는 녀석이 아닌가?
한참을 산책하는 동안, 코디의 긴장은 많이 풀어진 듯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낑낑’ 소리도 안 내고 앞서서 잘 걸어갔다. 집에 들어서자 먹을 것을 찾는 듯했다. 허기졌는지 허겁지겁 먹어 치웠고 자기 방석에 가서 누웠다. 딸아이가 없음에도 우리를 아는지 더 이상 낑낑대지 않았고 시차적응 때문인지 얼마 지나지 않아 잠이 들었다.
지금까지 상황을 보면 크게 아픈 곳이 없어 보여 마음이 놓였다. 사람도 컨디션 조절이 쉽지 않을 여정이었는데 비행하는 동안 주로 케이지에서 버텨야 했던 코디이니 큰 탈이 없는 것만으로도 고맙고 기특했다. 이 녀석에게 점점 더 감정이입이 되는 것 같다.
곧 시차 적응도 할 터이니, 한국에 있는 동안 곳곳에 데리고 다니면서 딸아이 곁에서 떨어져 있는 시간을 늘려, 코디의 분리불안 장애를 더 해소시켜 보기로 했다.
오늘은 코디의 새로운 환경에서의 첫걸음 얘기였는데 다음화에는 ‘분리불안이 있는 코디가 엄마인 딸아이 없이 우리 부부와 잘 보낼 수 있을까?’에 대해 얘기 나누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