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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산우옹 Jul 24. 2024

천산(天山) 기슭에서 부르는 ‘아침이슬’

우리 시대의 영웅을 떠나 보내며...

 

  오늘이 키르기스스탄에 온 지 정확하게 반년이 된 날이다. “Bishkek, The City of CO₂” 숨쉬기 어려울 정도로 혼탁한 공기를 마시며 빙판길을 더듬더듬 걷던 긴 겨울을 지나자, 늦게 찾아온 봄은 그래서 더욱 찬란했다.


국기봉 언덕 위 설산을 배경으로 핀 수백만평의 양귀비 꽃밭은 그야말로 ‘절세가경(絶世佳景), 천상의 화원’이었다. 영화 『Sound of Music』의 첫 장면에서 말괄량이 수녀 마리아 역을 맡은 Julie Andrews가 빙글빙글 돌면서 부르는 그 가사 “The hills are alive with the sound of music (음악의 계곡과 더불어 산과 들이 생동하네)”가 절로 튀어 나왔었다. 그리고 여름이 되면서 맑은 공기가 도시를 관통하고, 녹음이 드리우고, 설산의 얼음 녹은 물이 비슈케크 시내를 요리조리 흐르기 시작했다. 도시에 낭만이 깃들었다.     


  오늘 아침도 나는 에르킨딕 공원 벤치에 앉아 이방인의 자유를 만끽했다. 높이 솟아있는 나뭇가지 사이로 하늘을 우러러 본다. 도심의 숲속에서 바라보는 하늘. 짙은 초록 배경 사이사이로 옅은 하늘색이 살며시 드러나서 쳐다보는 이의 눈길을 시원하게 만들어 주는 광경이다.    

 

  여느 때처럼 핸드폰을 펼치고 오늘의 기사를 쓸어 내려가다가 갑자기 손길이 멈췄다. 『학전 이끈 ‘아침이슬’ 김민기 별세...향년 73』. “이게 무슨 기사지? 가만있자. 이 김민기가 그 김민긴가? 학전은 대체 무엇이람?”하는 의문을 품고 기사를 읽어 내려갔다. 그가 맞다. 불과 73세. 2024년 7월 22일, '뒷것' 인생이기를 자처했던, 우리 시대 순수의 표상, 작곡가 김민기씨가 서거했다.      


  우리 세대는 그에게 진 빚이 많다. 우리 모두는 가난과 독재의 질곡 속에서 숨쉬기 어렵던 시절이 있었다. 그 때 우린 이 척박한 땅, 저주받은 나라 대한민국에 태어난 것에 절망하곤 했다. 그리고 굳게 다짐했다. “서럽고 슬프던 지난날들도, 다시는 다시는 오지 말라고, 땀 흘리리라, 깨우치리라, 거치른 들판에 솔잎되리라.” 그의 노래 '상록수'다.


  최류탄 자욱한 길 모퉁이에서, 굽이굽이 인생의 뒤안길을 헐떡이며 올라갈 때마다 수없이 주먹 불끈 쥐고 눈물 그렁이며 부르던 노래가 있었다. “태양은 묘지 위에 붉게 타오르고, 한 낮에 는 더위는 나의 시련일지라~ 나 이제 가노라. 저 거친 광야로 서러움 모두 버리고, 나 이제 가노라” 그의 노래 ‘아침이슬’이었다.

  그리고 살아가면서 방향을 잃고 헤맬 때, 도무지 살아가기 힘들고, 살아야 할 이유를 모를 때 우리는 그의 가사에 깊이 공감했다. “검푸른 바닷가에 비가 내리면 어디가 하늘이고 어디가 물이요. 그 깊은 바닷 속에 고요히 잠기면 무엇이 산 것이고 무엇이 죽었소...” 그의 노래 ‘친구’다.


  나이 들어 돌아 본 세월이 회한으로 내 가슴에 되돌아올 때 우리는 “아~ 다시 못 올 흘러간 내 청춘, 푸른 옷에 실려 간 꽃다운 이 내 청춘”이란 가사를 읊조리곤 했다. 그의 노래 ‘늙은 군인의 노래’다.     


  이렇게 우리를 위로하고, 우리와 공감해 주시던 그 분이 떠나갔다. 그는 노래하는 철학자였다. 암울한 시대의 아픔을 노랫말 속에 녹여 낸 당대의 양심이었다. 그의 노래는 사랑, 이별, 질투 같은 나 혼자만의 시시콜콜한 감정을 징징 거리지 않았다. 그의 노래는 어색한 가성으로 꺾어 부르며 반복하는 정체불명의 싸구려 노래도 아니었다. 그의 노래는 대승(大乘)적이었다. 민중의 삶을 아파하고, 시대의 왜곡에 분노하고, 인생의 고독을 서글퍼했다. 그의 노래는 뜬금없이 땡고함을 질러야만 하는 요즘 세대의 천박한 오디션용 노래가 아니었다. 깊은 밤, 아무도 없는 강가에서 은은하고 깊이 있게 웅얼거려야 그 맛을 알 수 있는 인생의 원초적 슬픔이 담긴 노래였다.    

  

  망연자실한 채 한참을 벤치에 앉아 푸른 하늘만 올려다보고 있었다. 뭔가 써야될 것 같은데 떠오르지 않았다. 신문을 돌리던 13살 때 좋아하던 록앤롤 가수의 비행기 추락사고 기사를 발견하고 “The day when music died(음악이 죽은 날)”이란 명문(名文)을 얻었고, 후일 이를 『American Pie』란 곡으로 작곡했다던 Don McLean의 일화가 떠올랐다. 문득 가벼운 진동이 내 몽상을 깨운다. 글벗이자 오랜 붕우(朋友)인 수산(修山) 김석진 교수의 문자다. <그가 갔다>란 제목의 시다. 같은 시절을 살아온 지기(知己)들은 망설이지 않고 공감한다. 여기서 그는 김민기다. 수산의 시는 이렇게 마무리되고 있었다. “... 인간적이기에, 사랑했다는 이유로, 금지되고 고초 겪은, 그가 갔다. 그리고 추웠지만 따스했던 시대도 갔다.”      


  영특한 친구 수산공의 시를 곱씹어 되뇌일 때 내 가슴 속 어디선가 나지막한 그의 노래 소리가 들려온다. “먼 길 가는 친구들아, 이 노랠 들어요. 나 가진 것 하나 없어도 이 노래 불러요. 언젠가 또 다시 만나게 될런지. 잘 가시오. 친구여 부디 안녕히” 그의 노래 ‘잘가오’다.      


  에르킨딕 가로공원의 백양목 높은 가지가 바람결에 흔들린다. 나뭇가지 사이로 흐르는 흰구름이 아련히 멀어져 간다. 휘청휘청 집으로 돌아와서 삐걱거리는 나무침대에 홀로 누워 그의 노래 “아침이슬”을 읊조렸다. 생각할 때마다 부끄럽다. 순수도 열정도 빠져 나간 내겐 무엇이 남아 있는지... 그와 더불어 우리들의 “춥지만 따스했던 시대도 갔다.” 그렇게 나는 오늘 이 곳 서역 땅 천산 기슭에서 우리 시대의 영웅 김민기를 “저 거친 광야로” 떠나보냈다. 부디 잘 가시오.   

     

                                                                                                  (2024년 7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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