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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산산인 Jul 28. 2024

비슈케크 샹젤리제, 에르킨딕 이야기

비슈케크에서 그리는 서울의 미래

    

   세상 어딜 가도 이른 아침의 공원은 호젓하다. 오늘 아침도 나는 자유란 이름의 가로공원, 에르킨딕(Erkindik)의 벤치에 앉아 이방인의 자유를 만끽했다. 초여름에 아침운동을 시작할 때는 겨울에 부족해 질 산소를 여름동안에 미리 흠뻑 마셔두자는 심산이었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가벼운 운동 이후에 벤치에 앉아서 멍 때리고 쉬는 시간이 점점 더 좋아지기 시작했다. 그러다보니 요즘은 주객이 전도되어 20분 운동하고, 30분 한가롭게 휴식을 취하는 패턴이 나의 아침 산보길이 되었다. 이렇게 가까운 거리에 자유로운 사유의 공간이 있으니 이는 분명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 소확행이다.      


  에르킨딕은 비슈케크의 자랑이자, 가장 사랑 받는 길이다. ‘비단길’이란 의미를 가진 ‘지벡졸루(Jibek Jolu)’ 대로에서 비슈케크 중앙역에 이르는 2.8km를 직선으로 관통하는 폭 70m 정도의 인공 숲길이다. 여름에는 설산의 눈 녹은 물이 작은 도랑을 이루어 제법 콸콸 흘러가고, 그 물을 먹고 자란 나무들이 쑥쑥 자라서 제법 거목 숲을 이루고 있다. 이 길을 따라 비슈케크 최고가의 아파트들과 부티크 숍들이 즐비하기에 이 일대를 일컬어 "황금구역(Golden Square)"이라고 부르고 있다. 에르킨딕은 유모차에서 화평하게 자는 아이들, 엄마 손 잡고 놀러 나온 어린이들, 데이트하는 청춘남녀들까지 모두들 미소를 띠고 천천히 걷는 시민들의 휴식공간이다. 한 켠에서는 우리나라 파고다공원처럼 영감-할배들이 삼삼오오 모여 연신 훈수를 두면서 어둑해 질 때까지 체스게임에 열중이고, 다른 한 켠에서는 가수 지망생들인지 우리나라 노래방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는 가창력으로, 불러서 즐겁고 들어서 괴로운 노래를 열심히 부르고 있다. 가끔씩은 전문가 수준의 피아니스트가 키보드를 들고 나와서 클래식 음악을 연주하기도 하고, 수준급 색소폰 연주자들이 어스름 가로등불 아래서 「What a Wonderful World」, 「Somewhere Over the Rainbow」  같은 재즈곡들을 멋지게 연주하기도 한다. 참으로 낭만적이고 화평한 공간이다. 그래서 내가 에르킨딕을 일컬어 ‘비슈케크 샹젤리제’라고 불렀다. 그러나 내 작명은 잘못된 것이다.         


         

  흔히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이라고 할 때 주저없이 꼽는 곳이 파리의 상젤리제(Champs-Élysées)다. 그러나 샹젤리제는 개선문과 콩코드 광장을 잇는 폭 70m, 길이 1.9km의 대로로 가로수 이외는 나무가 없는 넓은 찻길(당초에는 마차길)일 뿐이다. 넓은 길 대부분을 차에게 양보하고 보행자들은 정작 그 길은 쳐다보지도 않고, 양 옆 보도를 따라 늘어선 명품 상점들만 기웃거리며 걷는 욕망의 길이다. 그나마 에디 피아프(Édith Piaf, 1915-1963)의 로맨틱한 노래에서 인용되었기 망정이지, 그 노래들마저 없었다면 샹젤리제는 차량이 질주하는 그저 그런 길 중 하나에 불과했을지 모른다. 샹젤리제의 역사와 낭만은 그 길 위가 아니라, 그 길 너머에 있을 뿐이다. 그러나 에르킨딕은 그 길이 역사고, 낭만이다. 에르킨딕은 양 옆으로 2차선씩만 차도로 쓸 뿐, 도로 대부분이 숲으로 덮여있고, 그 사이로 보행자들의 산책로가 설치된 2.8km의 도심 숲길, 그리고 우거진 녹음 사이로 천산의 빙하 녹은 물이 졸졸졸 흐르는 멋진 가로공원이다.



  에르킨딕 가로공원은 1800년대 후반 러시아 제국 시절에 조성되었다. 당초에는 그냥 러시아식 ‘대로(大路)’란 보통명사인 ‘불바르나야 (Bulvarnaya)’로 불렸었다. 그러나 소비에트 혁명이후 이 가로공원이 받은 이름은 현재의 화평한 분위기와는 사뭇 대조적인 공산혁명의 포연과 피비린내가 연상되는 명칭이었다. 1924년에 받은 최초의 고유명은 ‘혁명전사’란 뜻을 가진 ‘콤소몰스카야(Komsomolskaya)’였다. 이 이름은 후일 모스크바의 아름다운 지하철역에도 명명된다. 그러나 불과 3년 후 이 가로공원의 이름이 변경된다. 1926년 소비에트연방 국가안전정보부(KGB)의 전신인 국가안보국(Cheka)의 창설자로 ‘철의 펠릭스(Iron Felix)’로 불리며 1918년에서 1922년까지 반혁명분자를 색출-처형하는 ‘피의 숙청(Red Terror)’을 주도했던 벨라루스 출신의 제르진스키(Felix Edmundovich Dzerzhinsky, 1877-1926)가 심장마비로 죽었다. 1927년 소비에트 정부는 뜬금없이 중앙아시아의 산골짜기 자치공화국 수도 프룬제의 평화로운 공원을 소비에트 잔혹사의 상징적 인물에게 헌정한다. 1991년 키르기즈공화국으로 독립하면서 독립기념일인 8월 31일을 기해 공원의 분위기에 잘 어울리는 ‘에르킨딕(독립 혹은 자유)’으로 명명되기 전까지 64년동안 이 공원은 ‘제르징카 공원’으로 불렸었다. 그래서 아직도 나이 드신 어른들은 이 공원을 ‘제르징카’로 기억하고 있다.        


  이 공원에는 산책길을 따라 많은 동상이 건립되어 있다. 에르킨딕 공원에서 가장 큰 동상은 비슈케크역 앞에 있는 붉은 군대의 영웅인 프룬제(Mikhail Vasilievich Frunze, 1885-1925) 장군의 기마상 동상이지만, 가장 인기있는 동상은 시인 주마르트 보콘바예브(Joomart Bokonbayev, 1910-1944)의 동상이다. 이 곳에는 다른 동상 주위에는 없는 꽃밭이 조성되어 있고, 가끔씩은 누가 갖다 두었는지 꽃다발도 심심찮게 발견된다. 이 나라 사람들의 예술에 대한 열정을 엿볼 수 있는 단면이다. 마치 파리의 유명한 공동묘지 뻬레 라쉐즈(Pѐre Lachaise)에 묻힌 수많은 유명인사들 중 유독 쇼팽(Frédéric François Chopin, 1810-1849)의 묘역에 별스레 참배객들이 많고 꽃다발이 넘치는 것처럼 키르기스인들도 프랑스 사람 못지않게 예술인에 대한 존경심이 대단한 것 같다.   

  


  반년 전 이 나라 정부의 자문관으로 키르기스스탄에 도착할 때는 내색을 안했지만 오만했었다. 세계은행 통계만으로 추측컨대 형편없이 못살고 길거리엔 거지가 득실거리고, 외곽엔 험한 슬럼가가 즐비한 전형적인 제3세계의 도시를 연상했었다. 그러나 도착한 날 공항도로를 달리면서 고개가 갸웃거려지기 시작하더니, 바둑판으로 잘 구획된 도시계획, 잘 차려 입은 시민들, 줄줄이 달리는 고급 승용차에 단아한 차림의 식당 종업원들을 보면서 내 예상은 보기좋게 빗나가기 시작했다. 게다가 족탈불급(足脫不及), 우리가 도저히 범접할 수 없는 대자연의 웅장함에서랴... 그러나 내 오만을 부러움으로 바뀌게 만든 것은 사실 저 멀리 보이는 웅장한 설산보다도 집 가까이에 있는 이 가로공원 에르킨딕이었다.  

    

  이 길이 얼마나 대단한 길인지는 이 공원을 서울시에 대입해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만약 세종대로에 아름드리 나무가 즐비하고, 산책로 옆에 시냇물이 흐르는 왕복 16차선 넓이의 짙은 숲길이 광화문에서 시작하여 남대문-서울역을 거쳐 삼각지까지 (혹은 한강까지) 일직선으로 뻗어 있다고 생각해 보자. 그 중간쯤에 해당되는 서울역 인근에 여의도 시민공원만한 별도의 공원(Oak Park)이 가로질러 조성되어 있고, 높게 자란 나뭇가지 사이로 저 남쪽 멀리 만년설 봉우리가 있는 관악산 연봉이 힐끗힐끗 바라보인다고 생각하면 이 가로공원의 가치를 가늠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비슈케크엔 약 4km 떨어져서 에르킨딕과 평행으로 만든 쌍둥이 길(Molodaya-Gvardia Boulevard)도 있다. 이렇게 보면 에르킨딕이 ‘비슈케크 샹젤리제’가 아니고, 샹젤리제를 ‘파리 에르킨딕’이라고 불러도 과언이 아닐 것 같다.   

   


  1인당 소득 35,000불의 선진국 대한민국에서 온 경제학자가 1인당 국민소득 1,700불의 중앙아시아의 후진국 키르기스스탄을 부러워하고 있으니 스스로 생각해도 참 이상하다. 그러나 이 공원만큼은 정말 부럽다. 그래서 나는 오늘 아침도 에르킨딕 가로공원의 울창한 나무 그늘 벤치에 앉아서 서울의 지도를 그려보고 있다. 광화문에서 용산 한강변까지, 영동대교부터 구룡터널까지, 한남대교부터 양재동 시민의 숲을 넘어 분당에 이르기까지 비슈케크의 에르킨딕 같은 숲으로 뒤덮인 가로공원이 있는 푸른 서울을 상상해본다. 너무 '거대착각(The Great Illusion)'일까? 아님 '위대한 유산(The Great Expectation)'일까?      

                                                                                                        (2024년 7월 27일)


각주

우리나라에서는 Norman Angell의 책 <The Great Illusion>(1909) "거대한 착각"으로, Charles Dickens의 책 <The Great Expectations>(1861) "위대한 유산"으로 의역하여 출판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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