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군들이 떠난 후 마을에는 묘한 고요함이 흘렀다.
불타는 집들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곳곳에 흩어진 피의 흔적이 방금 전 벌어진 일이 꿈이 아니었음을 증명했다. 마을 사람들은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정말로... 이긴 건가?"
싸리나무집 영감이 중얼거렸다. 그의 코에서는 아직도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지만, 그의 목소리에는 놀라움과 함께 뿌듯함이 섞여 있었다.
"이겼지. 우리가 이겼어."
순덕이 언니가 대답했다. 그녀의 손에는 아직도 낫이 들려 있었고, 옷에는 먼지와 땀이 뒤범벅이 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눈에는 자신감이 빛나고 있었다.
돌쇠는 바위에 기대어 앉아 옆구리의 상처를 살펴보고 있었다. 김씨 할머니가 준 약초를 꺼내어 상처에 발랐다. 쓰라렸지만 참을 만했다.
"돌쇠야, 괜찮으냐?"
정덕수 촌장이 다가와 물었다. 그의 목소리에는 걱정과 함께 존경이 섞여 있었다.
"괜찮습니다. 깊지 않은 상처예요."
돌쇠는 담담하게 대답했다. 하지만 그의 마음은 전혀 담담하지 않았다. 방금 전 일어난 일이 아직도 믿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을 사람들의 반응은 다양했다. 어떤 이는 기뻐했고, 어떤 이는 걱정했다. 하지만 모두에게 공통으로 나타나는 것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변화였다.
"우리가 정말 해낸 거야."
김 대장간 영감이 어깨의 상처를 누르며 말했다. 그의 목소리에는 놀라움이 가득했다. 평생 농사만 짓고 살아온 자신들이 훈련받은 왜군들을 물리쳤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던 것이다.
"처음에는 무서웠는데, 막상 싸우고 보니 별것 아니더라고."
순덕이 언니가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그녀의 손은 아직도 떨리고 있었다. 긴장이 풀리면서 나타나는 몸의 반응이었다.
"왜놈들도 사람이구나. 우리랑 똑같이 아프고, 무서워하고..."
다른 아낙이 말했다. 그녀는 전투 중에 왜군이 고통으로 비명 지르는 소리를 들었던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하나둘씩 자신들이 겪은 일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무서웠던 순간, 분노했던 순간, 그리고 용기를 낸 순간들을 나누었다. 그러면서 서서히 깨달았다. 자신들이 생각보다 강하다는 것을.
"그런데 이제 어떻게 하지?"
한 아낙이 현실적인 문제를 제기했다. 왜군들이 떠나면서 한 말이 위협적이었기 때문이다. 분명히 더 많은 병력을 이끌고 돌아올 것이었다.
"또 오면 또 싸우면 되지."
싸리나무집 영감이 단호하게 말했다. 방금 전 승리의 기억이 그에게 자신감을 주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섯 명이었잖아. 다음에는 더 많이 올 텐데..."
"그럼 우리도 더 잘 준비하면 되지."
김 대장간 영감이 끼어들었다. 그는 자신이 만든 창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번에 해보니까 뭐가 부족한지 알겠어. 무기도 더 만들어야 하고, 함정도 더 파야 하고..."
사람들의 분위기가 달라지고 있었다. 처음에는 절망적이었던 상황이 이제는 극복할 수 있는 도전으로 여겨지고 있었다. 한 번 해봤으니 다시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긴 것이었다.
돌쇠는 이런 사람들의 모습을 지켜보며 놀랐다. 몇 시간 전만 해도 왜군의 소식에 떨고 있던 사람들이 이제는 다음 전투를 준비하자고 말하고 있었다.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