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켜낸 빛깔》(연재소설)

by 산들강바람

제3장: 흙을 찾아서

새벽.

이원은 석동을 깨웠다.

"일어나거라."

석동이 비몽사몽 눈을 떴다. "스승님? 아직 날도 안 밝았는데..."

"산에 가야 한다."

"산이요?"

"흙을 찾으러."

석동이 벌떡 일어났다. 잠이 확 달아났다. "지금요?"

"지금."

이원은 이미 짐을 꾸리고 있었다. 삽, 광주리, 물통, 그리고 낡은 천 조각들.

"서두르거라. 해뜨기 전에 출발해야 한다."

석동이 급히 옷을 입었다. "어느 산으로 가십니까?"

"북쪽."

"북쪽이요? 거긴... 사람이 잘 안 가는 곳 아닙니까?"

"그래서 좋다."

이원이 짐을 메고 밖으로 나갔다. 석동이 황급히 따라나섰다.

밤은 아직 어두웠다. 별들이 희미하게 빛나고 있었다. 동쪽 하늘이 조금씩 밝아지기 시작했다.

"스승님." 석동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지금까지 쓰시던 흙은 안 되는 겁니까?"

"안 된다."

"왜요?"

이원이 걸음을 멈췄다. 석동을 돌아보았다.

"마지막 작품이기 때문이다."

그가 다시 걷기 시작했다. "마지막 작품에는 마지막 흙이 필요하다."

산길은 험했다.

낙엽이 쌓여 미끄러웠고, 돌부리가 숨어 있었고, 가시덤불이 옷을 찢었다.

석동이 헐떡이며 뒤따랐다. 이원은 육십팔의 노인이었지만, 산을 오르는 발걸음은 젊은이 못지않았다.

"스승님, 잠깐 쉬었다 가면 안 됩니까?"

"아니다. 해가 뜨기 전에 도착해야 한다."

"왜요?"

"흙은 아침 이슬을 머금었을 때 가장 좋다."

석동은 이해할 수 없었다. 흙은 흙이지, 아침이든 저녁이든 무슨 상관인가. 하지만 스승의 말이니 따를 수밖에 없었다.

한 시간쯤 올랐을까.

이원이 걸음을 멈췄다.

"여기다."

석동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나무들 사이로 작은 공터가 있었다. 특별할 것 없는 곳이었다.

"여기가... 뭐가 특별합니까?"

이원은 대답하지 않았다. 쪼그리고 앉아 땅을 만졌다.

낙엽을 걷어냈다. 그 아래 흙이 드러났다.

검붉은 흙.

이원이 한 줌 쥐었다. 손가락 사이로 흙이 스며들었다.

"이거다."

그의 목소리가 떨렸다.

"이 흙이 뭐가 다릅니까?"

석동이 물었다.

이원이 흙을 석동의 손에 쥐어주었다. "만져봐라."

석동이 흙을 만졌다. 부드러웠다. 촉촉했다. 하지만 다른 흙과 무엇이 다른지 모르겠다.

"잘 모르겠습니다."

"그래, 너는 아직 모른다."

이원이 흙을 코에 가까이 댔다. 냄새를 맡았다.

"흙은 살아있다. 숨을 쉰다. 기억한다."

"기억요?"

"이 흙은..." 이원이 눈을 감았다. "사십 년을 기다렸다."

석동이 고개를 갸웃했다.

이원이 눈을 떴다. 그의 눈에 먼 기억이 어렸다.

"사십 년 전, 나는 여기 왔었다. 월선과 함께."

"월선 님과 요?"

"그래. 우리는 함께 흙을 찾아 이 산을 올랐다."

이원의 목소리가 부드러워졌다. "그날도 이렇게 새벽이었다. 해가 뜨기 전. 별이 빛나고, 이슬이 내리고, 세상이 고요했다."

그가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리고 우리는 이곳에서 흙을 찾았다. 바로 이 흙을."

"그 흙으로 만든 게..."

"비색 청자다."

석동의 눈이 커졌다. "그럼 이 흙으로 다시 만들면...!"

"그럴 수도 있다." 이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흙만으로는 안 된다. 흙과 물과 불과 바람,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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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의 고요함, 바람의 속삭임, 강과 계곡의 흐름, 그리고 바다의 깊이를 글로 담아내고 싶은 사람입니다. 자연은 언제나 저에게 가장 진실한 위로와 질문을 안겨주었습니다. 수필,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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