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곡의 겨울은 단순히 춥다는 말로는 다 설명되지 않는다. 그것은 일종의 단절이자, 철저한 고립이다. 화려한 수사를 다 떼어내고 남은 본연의 살풍경. 나무들은 잎을 다 떨군 채 서로의 몸을 부딪치며 마른 소리를 내고, 계곡의 바위들은 이끼마저 바짝 말라붙어 차가운 금속의 질감을 낸다. 그 풍경 어디에도 부드러운 구석은 없다.
졸졸 소리를 내는 물소리도 없다. 아니, 어쩌면 물소리는 죽은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가둔 것일지도 모른다. 저 단단한 얼음장 밑 어딘가에서, 세상의 눈을 피해 가장 낮은 포즈로 숨죽여 흐르고 있을 터다. 밖으로 내뱉는 비명이 거부당한 계절, 물은 제 몸을 깎아 얼음이라는 성벽을 쌓고 그 안으로 유폐되기를 자처했다.
그 적막한 빈자리를 채우는 것은 오직 바람뿐이다. 휭휭, 골짜기의 굽이굽이를 헤집고 다니는 바람소리는 마치 길 잃은 짐승의 울부짖음 같다. 그 바람은 다정하게 뺨을 스치는 법이 없다. 사정없이 파고들어 살갗을 베고, 마음의 가장 연약한 구석까지 가차 없이 휘저어 놓는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옷깃을 여민다. 여미고 또 여며보지만, 바람은 기어이 옷감의 조직 사이를 뚫고 들어와 내 안의 온기를 앗아간다. 이 계절에 옷깃을 여미는 행위는 단순히 추위를 막으려는 본능이 아니라, 무너져가는 내면의 질서를 간신히 붙잡으려는 처절한 몸짓에 가깝다.
이 을씨년스러운 풍경 앞에서 나는 곧 닥쳐올 설 명절을 생각한다.
명절이라는 단어는 본래 풍요와 화합의 상징이어야 마땅하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그 단어는 내게 겨울 계곡의 바람소리처럼 다가오기 시작했다. 휭휭 소리를 내며 다가오는 명절의 기운은, 내가 평소에 잘 갈무리해 두었던 고독과 피로를 사정없이 들쑤셔 놓는다. TV에서는 연신 가족의 소중함과 고향의 정을 노래하지만, 그 소란스러운 축제 뒤편에 선 나의 마음은 얼어붙은 계곡의 바위처럼 차갑기만 하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어쩌면 물소리가 사라진 계곡을 묵묵히 지키는 일인지도 모른다. 누군가의 기대를 채우기 위해 억지웃음을 지어야 하고, 안부를 묻는 친척들의 말들 속에서 가시 돋친 비교를 견뎌내야 한다. "올해는 어떠냐", "자식들은 잘 지내느냐"는 물음들은 계곡의 칼바람보다 더 날카롭게 가슴을 파고든다. 그럴 때마다 나는 대답 대신 쓴 소주 한 잔을 삼키거나, 공연히 텔레비전 채널을 돌리며 내 안의 옷깃을 여민다. 들키고 싶지 않은 나의 남루함과, 차마 내보이지 못한 진심들이 그 옷깃 사이로 삐져나올까 봐 겁이 난다.
사람들은 말한다. 명절엔 모름지기 복작복작해야 맛이라고. 하지만 나는 그 '맛'을 내기 위해 치러야 하는 소모적인 감정의 노동이 버겁다. 정성껏 음식을 차리고, 먼 길을 달려가고, 다시 먼 길을 돌아오는 그 모든 과정이 이제는 즐거움이 아닌 숙제처럼 느껴진다. 마음속에선 이미 물소리가 멎었는데, 겉으로는 여전히 졸졸 소리를 내며 흐르는 척해야 하는 그 괴리감이 나를 지치게 한다.
다시 계곡을 본다. 문득 멈춰 선 발치 아래, 두껍게 얼어붙은 투명한 얼음층 밑으로 아주 미세한 기포가 움직이는 것을 발견한다. 그것은 죽음의 침묵이 아니었다. 소리는 죽었으나 흐름은 멈추지 않았다. 계곡은 무능해서 침묵하는 것이 아니라, 이 모진 겨울을 견뎌내기 위해 에너지를 안으로 안으로만 모으고 있는 것이었다. 밖으로 내지르는 소리를 포기하는 대신, 제 깊은 바닥을 적시는 내밀한 생존을 택한 셈이다.
나의 이번 설도 저 얼음장 밑의 흐름 같기를 바란다. 억지로 활기찬 척, 행복한 척 소리를 내지 않아도 괜찮다고 스스로를 다독여본다. 세상이 요구하는 '명절의 전형'에 나를 맞추려 애쓰다 보면, 내 마음의 온기는 금방 바닥나고 말 것이다. 차라리 저 계곡처럼, 잠시 침묵하고 잠시 소리를 지우며 나 자신을 보호하는 쪽을 택하고 싶다.
화려한 덕담 대신 고요한 명상을, 떠들썩한 술자리 대신 따뜻한 차 한 잔의 위로를 선택하는 것이 비단 나만의 외로움은 아닐 것이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수많은 이들이 명절이라는 거대한 바람 앞에서 각자의 옷깃을 여미며, 저마다의 얼어붙은 계곡을 지나가고 있을 테니 말이다.
바람이 다시 한번 휭휭 소리를 내며 산등성을 넘어간다. 옷깃을 여민 손에 힘을 준다. 이 바람이 잦아들고 얼음이 녹아 다시 물소리가 들리기 시작할 때, 그때는 내 마음에도 진정한 안부가 찾아올 수 있을까.
올 설은 그저 이 을씨년스러운 계절을 정직하게 견뎌내는 시간이었으면 한다. 거창한 계획도, 대단한 화합도 없어도 좋다. 그저 내 안의 물소리가 완전히 마르지 않도록, 얼음장 밑의 그 작은 흐름을 가만히 지켜봐 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것 같다.
겨울 계곡의 고독은 차갑지만 투명하다. 그 투명함 속에서 나는 비로소 남의 눈에 비친 내가 아닌, 오롯이 나 자신으로 존재하는 법을 배운다. 비록 졸졸거리는 물소리는 들리지 않아도, 나는 내 안에서 여전히 흐르고 있는 생의 의지를 믿는다. 휭휭 바람소리가 멎고 다시 따스한 햇살이 골짜기를 비출 때, 나는 그때 비로소 여몄던 옷깃을 풀고 세상을 향해 환하게 웃어 보일 수 있을 것이다.
그날이 오기까지, 나는 이 고요한 동토(凍土)의 시간을 묵묵히 걸어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