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와 나눈 아침의 대화

산책

by 산들강바람

오늘 아침, 해가 뜨기 전 조용한 시간에 영일대 해변을 걸었습니다. 아직 도시의 소음이 깨어나기 전, 바다는 이미 하루를 시작한 듯 잔잔한 파도 소리를 내며 나를 맞이하더군요. 그 소리는 말이 없지만, 묘하게 따뜻했습니다. 마치 오래된 친구가 아무 말 없이 옆에 있어주는 느낌이랄까요. 말이 없어 더 깊이 위로가 되는 그런 존재 말이에요.


모래 위에 남겨지는 발자국은 금세 지워졌습니다. 파도가 다가와 흔적을 삼키고, 다시 고요해지는 모습이 참 인상적이었어요. 그걸 보며 생각했죠. 우리 삶도 이와 같지 않을까. 남기려 애쓴 흔적도 결국은 자연스럽게 사라지고, 그 자리에 또 다른 하루가 시작되는 것처럼요. 어쩌면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남기려 애쓰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기억, 성과, 관계, 말들… 하지만 바다는 말합니다. “흔적은 사라져도 너는 남는다.”


바다와 나는 말을 하지 않았지만, 그 침묵 속에서 위로를 받았습니다. 어제의 고민, 오늘의 불안, 내일의 기대—모든 것이 파도에 실려 잠시 멀어지는 듯했어요. 바다는 내 마음을 읽는 듯, 때로는 거칠게, 때로는 부드럽게 말을 건넸습니다. “괜찮아, 너는 잘하고 있어.”라고. 그 말이 들리는 듯한 착각 속에서 나는 한참을 멈춰 서 있었습니다.


해가 수평선 너머로 얼굴을 내밀기 시작하면, 바다는 금빛으로 물듭니다. 그 순간 멈춰 서서 숨을 고르고, 그 풍경을 눈에 담고 마음에 새깁니다. 바다는 늘 그 자리에 있지만, 매일 다른 얼굴을 하고 있어요. 오늘의 바다는 어제보다 조금 더 따뜻했고, 조금 더 너그럽게 느껴졌습니다. 어쩌면 내가 그렇게 느끼고 싶었던 걸지도 모르죠. 바다는 늘 같지만, 보는 내가 달라지니까요.


산책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 바다에게 작게 인사를 건넸습니다. “고마워.” 바다는 대답하지 않았지만, 나는 알죠. 내일도 이 자리에 있을 거라는 것을. 그리고 또다시 나를 맞아줄 거라는 것을. 그 약속 같은 침묵이 나를 안심시켜 줍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습니다. 바다와 나눈 대화는 말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지만, 그 어떤 말보다 깊은 울림을 남겼습니다. 우리는 때때로 말보다 침묵이 더 많은 것을 전할 수 있다는 걸 잊곤 하죠. 오늘 아침, 나는 그 침묵 속에서 나를 다시 만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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