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의 오솔길

코스모

by 산들강바람

가을은 걷는 계절이라고 했던가. 발걸음이 닿는 곳마다 새로운 이야기가 펼쳐지는 길을 따라 걸었다. 하늘거리는 코스모스들이 양옆으로 도열하듯 피어 있는 오솔길은 그 자체로 한 폭의 그림이었다.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발아래에서는 자그작, 자그작, 돌멩이가 밟히는 소리가 정겹게 들려온다. 그 소리는 마치 “어서 와, 반갑다”라고 속삭이는 듯하여, 고독한 가을의 정취를 따스하게 감싸 안아주었다. 고요한 길을 걷다 보면, 그저 스쳐 지나가는 풍경들도 하나둘 살아있는 이야기가 되어 말을 걸어오는 듯하다.


문득 고개를 들어보니, 파아란 하늘이 구름을 덮치며 달려오고 있었다. 마치 누군가 장난스럽게 하늘을 휘저어 놓은 듯, 바람은 낙엽들을 흩날리며 먼 곳으로 향한다. 그 모습은 좇고 쫓기는 역동적인 춤사위 같았다. 이내 그 장난이 지나간 자리에 졸졸 흐르는 시냇물이 나타나, 그 바람의 이야기를 대신 전해주는 듯하다. 시원한 산들바람이 들려주는 숲의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들으며 발걸음을 옮긴다. 이 길은 단순한 길이 아니라, 자연이 들려주는 시와 노래를 감상하는 특별한 공간이 되었다.


숲은 언제나 수다스러운 곳이다. 다양한 음색을 가진 수많은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에 귀를 기울여 본다. 그 소란스러움 속에서 숲의 생명력을 느낀다. 작은 다람쥐 한 마리가 민첩하게 나무줄기를 오르내리는 모습은 숲의 활기를 그대로 보여준다. 그 작은 몸짓 하나에도 숲의 에너지가 넘실거린다. 나뭇잎 사이로 쏟아져 내리는 따스한 햇살은 바닥에 작은 조각들을 만들고, 그 햇살을 머금은 채 다시 나무를 타고 올라간다. 빛과 그림자가 만들어내는 섬세한 무늬들은 숲의 또 다른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작은 풀벌레들이 바삐 움직이는 그 옆으로 봉긋 솟아난 버섯들이 보인다. 어둡고 축축한 숲 속에서 조용히 피어난 버섯들은 신비롭고 몽환적인 분위기를 더한다. 이렇듯 작은 생명들이 만들어내는 풍경에 마음이 평온해진다.


한참을 걷다 보니, 바람이 더욱 우렁차게 나무를 흔든다. 숲 전체가 흔들리는 듯한 장엄한 소리에 압도된다. 바람이 일으키는 소용돌이 속에서 나무들은 묵묵히 그 무게를 견뎌내며 존재감을 드러낸다. 계곡을 지나 산등성이에 오르면, 하루의 끝을 알리는 해가 숲 저편으로 천천히 사라진다. 붉게 물든 하늘은 하루의 마지막 인사를 건네고, 해가 사라진 숲은 차분한 어둠을 맞이할 준비를 한다. 나지막이 속삭이던 길의 소리들은 어느새 잦아들고, 하루는 그렇게 조용히 끝이 난다. 코스모스 오솔길에서 시작된 나의 하루는 숲과 계곡을 지나, 붉게 물든 하늘 아래서 마무리된다. 그리고 나는 다음 날, 또 다른 이야기를 들려줄 이 길을 다시 걸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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