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 2
산자락을 따라 구불구불 이어진 오솔길은 언제나 고요의 강을 흘려보낸다. 도시의 날카로운 소음들이 닿지 못하는 곳, 오직 자연만이 숨 쉬는 성역. 나무들은 바람의 손길에 몸을 맡기며 나지막한 선율을 연주하고, 풀잎 하나하나는 햇살의 키스를 받아 보석처럼 반짝인다. 그 길을 걷는 시간은 내게 일상에서 벗어난 작은 순례와도 같다. 세상의 무게를 잠시 내려놓고, 나라는 존재와 온전히 마주하는 순간들.
답답한 마음을 견디지 못해 무작정 집을 나섰다. 발길이 이끄는 대로, 마음이 부르는 대로 걷다 보니 이 산자락에 닿게 되었다. 숲 어귀에서 실오라기처럼 가느다란 흙길을 발견했을 때, 무언가 운명적인 것을 느꼈다. 그 길은 마치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부드럽게 품 안으로 이끌었다. 첫 발을 내디딜 때부터 느껴진 것은 고요함이었다. 단순한 정적이 아닌, 마음의 가장 깊은 곳까지 스며드는 평화의 물결이었다.
그래서 나는 이 길의 단골 순례자가 되었다. 계절의 옷 갈아입기를 지켜보며, 자연이 들려주는 무언의 가르침에 귀 기울였다. 봄의 연둣빛 희망, 여름의 짙푸른 생명력, 가을의 붉은 성숙, 겨울의 하얀 침묵. 모든 계절이 저마다의 아름다움으로 이 길을 새롭게 태어나게 했다.
그날도 새벽 정적을 가르며 오솔길에 발을 내디뎠다. 밤이 물러가며 남긴 이슬방울들이 풀잎 위에서 진주처럼 굴러다녔고, 나뭇잎 사이로 스며드는 햇살이 황금빛 실로 숲을 수놓고 있었다. 흙길에는 지난밤 비가 남긴 촉촉한 흔적이 새겨져 있었고, 그 위로 내 발자국이 하나씩 조심스럽게 새겨져 갔다.
전날 밤 잠을 이루지 못해 여명과 함께 집을 나선 것이었다. 새벽의 오솔길은 낮과는 또 다른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 아직 완전히 깨어나지 않은 숲의 몽롱함, 이슬에 젖어 더욱 진해진 흙냄새, 그리고 하늘이 서서히 밝아오며 펼쳐내는 색채의 교향곡. 이 모든 것이 하루의 서막을 알리는 성스러운 의식처럼 느껴졌다.
평소보다 더욱 천천히, 더욱 의식적으로 걸었다. 급할 것도 없었거니와, 이 고요한 시간의 결 하나하나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삼 년 동안 이 길을 걸으며 터득한 지혜가 있었다. 목적지에 빨리 도착하는 것보다 그 과정에서 마주하는 순간들이 더 소중하다는 것, 때로는 멈춰 서서 주변을 온전히 느끼는 것이 더 깊은 여행이라는 것을.
길가의 들풀들이 미풍에 살랑거리는 모습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키 큰 풀도, 작은 풀도 모두 제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자라고 있었다. 남과 비교하지 않고, 서두르지 않고, 오직 자신의 리듬으로 생명을 펼쳐내고 있었다. 사람의 삶도 이와 다르지 않으리라. 각자의 계절에, 각자의 속도로 피어나는 것이 자연의 이치가 아닐까.
그렇게 명상에 잠겨 걷던 중, 작은 바람결 같은 기척이 느껴졌다. 처음에는 나뭇가지가 스치는 소리인 줄 알았으나, 그것은 분명 살아있는 것의 움직임이었다. 미세한 진동이 공기를 타고 전해져 왔다.
고개를 돌리는 순간, 시간이 멈췄다. 숲의 초록 장막 사이로 작은 고양이 한 마리가 조심스럽게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은회색 털에 감도는 아침 햇살, 맑고 깊은 눈동자에 담긴 고요한 지혜. 그 아이는 나를 바라보며 잠시 동상처럼 멈춰 있었다.
그 눈빛에는 야생의 경계심과 함께 묘한 호기심이 공존하고 있었다. '너는 누구인가? 무엇을 찾아 이곳에 왔는가?' 하고 묻는 듯한, 인간의 언어로는 번역할 수 없는 깊은 질문이 담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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