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없는 영웅』(연재소설)

by 산들강바람

제1장: 전쟁의 그림자

1

선조 25년, 임진년 사월 열사흗날. 부산포에 왜선이 나타났다는 급보가 한양에 전해진 것은 그로부터 사흘이 지나서였다. 하지만 그 소식이 경상도 깊숙한 산간의 작은 마을 솔티재에 닿기까지는 보름이 더 걸렸다.

소식을 전한 것은 영천에서 온 보부상이었다. 그는 평소와 달리 물건을 제대로 챙겨 오지도 못한 채 급하게 마을에 들어섰고, 마을 사람들이 둘러싸자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

"왜... 왜놈들이 쳐들어왔어요! 부산에서 시작해서 지금 경주까지 밀려 올라오고 있다고 합니다!"

마을 촌장인 정덕수가 보부상의 어깨를 붙잡으며 다그쳤다.

"정말이오? 확실한 소식이오?"

"제가 거짓말을 왜 하겠습니까! 관군들이 무너져 내리고 있어요. 경주 관아에서도 피난 준비를 하고 있다니까요!"

그 순간 마을 전체가 술렁였다. 여인들의 한숨소리와 아이들의 울음소리가 뒤섞였고, 노인들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왜란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지는 못했지만, 전쟁이 닥쳤다는 것만은 분명했다.

하지만 여전히 실감이 나지 않았다. 지금까지 이 산골 마을에는 세상의 큰 변화가 미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임금이 바뀌어도, 관리가 바뀌어도, 이곳의 봄과 가을은 변함없이 찾아왔고, 사람들은 농사를 짓고 아이를 낳고 늙어갔다. 전쟁이라는 것도 멀고 먼 한양이나 국경지대의 일일 뿐, 이곳까지는 오지 않을 것이라고 막연히 생각하고 있었다.

2

솔티재는 태백산맥의 한 자락에 자리한 작은 마을이었다. 마을 이름은 소나무가 우거진 고개라는 뜻으로, 실제로 마을 앞뒤로 울창한 소나무 숲이 둘러싸고 있었다. 큰길에서 한참 들어가야 닿을 수 있는 외진 곳이라, 지나가는 나그네도 드물고 관아의 간섭도 적었다.

스무 가구 남짓한 이 마을은 대부분 농업에 종사했다. 산비탈을 개간하여 만든 다랑이 논에서 벼를 기르고, 밭에서는 조와 콩, 메밀을 재배했다. 마을 한가운데로 맑은 개울이 흘렀고, 그 개울가에는 공동 우물과 빨래터가 있었다. 마을 뒤편으로는 험준한 산이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어, 겨울이면 찬바람을 막아주고 여름에는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주었다.

사람들은 서로의 이름과 집안사정을 다 알고 지내는 작은 공동체였다. 농사일은 서로 품을 바꾸어 가며 함께 했고, 경사나 상사가 있으면 마을 전체가 함께 기뻐하고 슬퍼했다. 아이들은 마을의 공동 재산이나 다름없어서, 누구든지 잘못하면 어른들에게 혼이 났고, 배고프면 아무 집이나 들어가서 밥을 얻어먹을 수 있었다.

이런 평화로운 마을에 전쟁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것이었다. 처음에는 믿을 수 없었던 소식이었지만, 며칠 후 이웃 마을에서 온 피난민들을 보고서야 사람들은 현실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보따리 하나 들고 온 그들의 얼굴에는 공포와 절망이 어려 있었다.

"왜놈들이 오면 젊은 남자들은 다 죽인대요. 그리고 여자들은..."

피난민 중 한 중년 여인이 말을 하다가 울음을 터뜨렸다. 더 이상 말을 이어갈 수 없었다.

3

그즈음 마을에는 장정이라고 할 만한 남자가 몇 명 남지 않았다. 스물에서 마흔 사이의 건장한 남자들은 모두 관군에 징집되어 떠났기 때문이다. 관아에서 온 아전들이 호적을 뒤져가며 장정들을 하나하나 끌어간 것이었다.

"나라에 큰일이 났으니 장정들은 모두 나와야 한다!"

"하지만 농사는 누가 짓습니까?"

"농사보다 나라가 먼저다! 왜놈들을 막지 못하면 농사고 뭐고 다 소용없다!"

결국 마을의 젊은 남자들은 하나둘씩 떠나갔다. 아내와 아이들의 눈물을 뒤로하고, 언제 돌아올지 모르는 길을 떠났다. 남겨진 가족들은 불안한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런 가운데 징집을 피한 몇 명이 있었다. 그중 하나가 돌쇠였다.

돌쇠는 서른두 살의 총각이었다. 결혼할 나이는 한참 지났지만, 가난한 집안 형편과 신체적 결함 때문에 혼처를 구하지 못했다. 그의 왼쪽 다리는 어린 시절 소에 밟혀 부러진 후 제대로 치료받지 못해 절뚝거렸다. 걸음걸이가 부자연스럽고 빨리 달릴 수도 없었다.

"이런 절름발이가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관아의 아전들은 돌쇠를 한 번 보더니 고개를 저으며 징집 명단에서 제외했다. 돌쇠는 그들의 시선에서 경멸을 읽을 수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안도감도 느꼈다. 적어도 전쟁터에 끌려가지는 않을 테니까.

키도 보통보다 작았고 체격도 왜소했다. 얼굴은 해와 바람에 그을려 거무스름했고, 손은 농사일로 굳은살이 박여 있었다. 글을 읽을 줄도 쓸 줄도 몰랐다. 평범하기 그지없는 시골 농부의 모습이었다.

4

돌쇠에게는 가족이라고 할 만한 사람이 없었다. 부모는 그가 열다섯 살 되던 해에 모두 세상을 떠났다. 먼저 아버지가 들에서 일하다가 갑자기 쓰러져 숨을 거두었고, 슬픔에 잠긴 어머니도 몇 달 후 따라갔다. 형제자매도 없는 혈혈단신이었다.

하지만 돌쇠는 혼자가 아니었다. 마을 사람들이 그를 거두어 키웠기 때문이다.

정덕수 촌장은 돌쇠에게 농사짓는 법을 가르쳐주었다. 밭 갈고 씨 뿌리는 일부터 곡식 거두는 일까지, 농부로서 알아야 할 모든 것을 알려주었다. 김씨 할머니는 밥을 해주고 옷을 지어주었다. 바느질을 할 줄 모르는 돌쇠를 위해 계절마다 새 옷을 마련해 주었다.

다른 마을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누군가는 농기구를 빌려주었고, 누군가는 종자를 나누어주었다. 공동 일을 할 때도 돌쇠의 절뚝거리는 다리를 탓하는 사람은 없었다. 오히려 그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맡겨주었다.

돌쇠도 자신이 받은 은혜를 잊지 않았다. 힘이 딸려도 성실하게 일했고, 마을 일이 있으면 누구보다 먼저 나섰다. 우물을 파거나 다리를 놓는 일, 마을 제사를 준비하는 일까지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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