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티재에 왜군의 정찰대가 접근하고 있다는 급보가 전해진 것은 그로부터 사흘 후 새벽이었다.
이웃 고개 너머 동막골에서 도망쳐 온 농부가 숨을 헐떡이며 마을로 뛰어들었다. 그의 몸에는 피가 묻어 있었고, 옷은 찢어져 누더기가 되어 있었다.
"왜... 왜놈들이 오고 있습니다! 말을 탄 놈들이 이쪽으로 오고 있어요!"
농부의 외침에 마을 사람들이 하나둘 나왔다. 아직 동이 트기 전 어둠 속에서 사람들의 얼굴은 창백하게 드러났다. 모두들 이런 날이 올 것을 예감하고 있었지만, 막상 그 순간이 닥치자 어찌할 바를 몰랐다.
정덕수 촌장이 제일 먼저 달려 나왔다. 그는 농부를 부축하며 물었다.
"얼마나 많이 오는가? 언제쯤 이곳에 닿겠는가?"
"다섯... 아니 여섯 명 정도 되는 것 같습니다. 말을 타고 오니까 빠르면 해질 무렵에는..."
농부는 말을 잇지 못하고 주저앉았다. 그의 다리에는 깊은 상처가 나 있었다. 어떻게든 왜군의 추격을 따돌리고 이곳까지 온 것이었다.
"동막골은 어떻게 되었소?"
"불... 불타버렸습니다. 사람들은... 사람들은..."
더 이상 말할 수 없다는 듯 농부는 고개를 떨구었다. 마을 사람들의 얼굴에서 핏기가 사라졌다.
곧이어 마을 사람들이 급히 모였다. 다섯 집씩 무리를 지어 앉았지만, 젊은 남자들이 없어 대부분 늙은이와 여인들뿐이었다. 정덕수 촌장이 앞에 나서서 말했다.
"이제 더 이상 미룰 수 없게 되었소. 우리도 대책을 세워야 하오."
"도망갈 곳이 있기나 합니까?"
김씨 할머니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깊은 산으로 들어가면..."
"노인들과 아이들을 데리고 어디까지 갈 수 있겠습니까? 게다가 이 장마철에..."
사람들의 목소리가 점점 높아졌다. 절망과 분노, 그리고 두려움이 뒤섞인 감정이 마을을 휩쓸었다. 어떤 이는 산으로 피해야 한다고 했고, 어떤 이는 관군이 올 때까지 버텨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실질적인 해결책은 나오지 않았다.
"그럼 그냥 앉아서 죽자는 말이오?"
싸리나무집 영감이 분통을 터뜨렸다. 아들 만수가 떠난 후 그의 성격은 더욱 거칠어졌다.
"왜놈들이 와서 우리를 다 죽일 텐데, 가만히 있을 수는 없지 않소?"
"그렇다고 우리가 뭘 할 수 있다는 말이오?"
"무기라도 있으면..."
"무기는 무슨 무기요. 농기구밖에 없는데."
사람들의 논의는 계속 맴돌기만 했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하나씩 의견이 모아지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산에서 나물을 캐며 길을 잘 안다고 했고, 누군가는 함정을 파는 법을 안다고 했다. 또 다른 이는 돌팔매질을 잘한다고 나섰다.
이름도 없고 특별할 것도 없는 평범한 사람들이었지만, 저마다 가진 것이 있었다. 작은 기술들, 소박한 지혜들, 오랜 경험에서 우러나온 노하우들이었다.
그때 돌쇠가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사람들의 시선이 그에게 집중되었다. 평소에는 말수가 적고 눈에 띄지 않던 그였지만, 지금은 왠지 달라 보였다.
"저는..." 돌쇠가 입을 열었다. "저는 혼자라도 싸우겠습니다."
순간 마을이 조용해졌다. 모든 사람들이 돌쇠를 바라보았다. 그의 얼굴에는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단호함이 어려 있었다.
"돌쇠야, 그게 무슨..."
정덕수 촌장이 말을 막으려 했지만, 돌쇠는 계속해서 말했다.
"왜놈들이 이 마을에 오는 것을 막을 수는 없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적어도 시간은 벌 수 있을 것입니다. 그 사이에 마을 사람들은 안전한 곳으로 피하세요."
"혼자서 어떻게..."
"아버지의 활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 산은 제가 어릴 때부터 뛰어다닌 곳입니다. 왜놈들보다는 지형을 잘 압니다."
사람들은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돌쇠의 말에는 무언가 사람을 설득하는 힘이 있었다. 그동안 마을을 위해 묵묵히 일해온 그의 모습을 모두들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너무 위험하지 않겠느냐?"
김씨 할머니가 걱정스럽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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