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 눈앞에 뚝 떨어졌다
저 멀리 펼쳐진 산등성이 너머가 붉게 타오른다. 동이 트는 것인지 석양이 지는 것인지 구별이 가지 않을 정도로 활활 타오르고 있다. 붉게 물든 시야와는 정반대로 코끝을 스치는 공기는 차갑기 그지없다. 내가 아침을 맞이한 것인지 저녁으로 향하고 있는 것인지 혼란스럽다.
차가운 겨울의 냄새가 난다. 겨울이 눈앞에 뚝 떨어졌다.
떨어지지 않는 온도에 배추가 녹아내리고, 김장철을 맞은 한국에는 비상이 걸렸다. 예견된 재난이었을 것이다. 올 추석 연휴에 이례적으로 아빠의 집에서는 에어컨이 가동되었고, 반팔을 입고 할머니, 할아버지가 나란히 누워계신 공원묘지로 성묘를 다녀왔다. 좀처럼 불어오지 않는 찬바람을 기다리며 9월이 지나고, 10월도 그렇게 무심히 흘러갔다.
그리고 오늘 (11월 7일 목요일), 나는 월요일에 비와 함께 벼락처럼 찾아온 겨울의 찬 공기가 한층 더 짙어졌음을 체감하며 공원을 거닐었다. 추위를 많이 타기에 일부러 코트까지 야무지게 챙겨 입고 나왔는데도 뇌가 얼어붙었다. 꽝꽝 얼어가는 머릿속에는 이윽고 두통이 찾아왔다.
코를 통해 들어오는 차가운 공기. 겨울의 냄새.
호수를 뒤덮고 있던 연잎은 차가운 바람에 대부분 급속도로 시들어 황량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호수 주위를 따라 심어진 단풍나무의 잎들은 채 붉게 물들기도 전에 말라비틀어져 안타까움을 불러일으켰다. 사람이 제법 돌아다닐 시각인데도 인적이 드문 거리가 꼭 세기말의 풍경처럼 느껴진다. 그렇게 시야에 들어오는 모든 것이 차갑다. 생명이 움츠러드는 겨울이 이제 시작되었을 뿐인데 나는 이미 동사할 것처럼 한기를 느꼈다.
운전면허 갱신을 위해 증명사진을 찍고 시간을 때울 겸 호수공원을 돌기로 한 것인데,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그저 눈을 시리게 만들 뿐이라 묘한 불안함에 심장이 콩닥거렸다. 나는 계절을 그리 타지 않는다고 여겨왔는데 겨울에는 약한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앙상하게 나뭇가지만 남게 될 나무들. 곧 제거될 죽은 연잎들. 호수를 채우고 있던 물은 모두 빠져나가고 그 자리에는 까만 진흙이 드러날 것이다. 이제 이 호수공원이 한눈에 내다보이는 나의 집 베란다에서 보이는 풍경은, 단언컨대 한낮의 햇빛이 따스하게 내리쬐어도 그 풍경은 결단코 차가울 것이다. 그리고 내 마음은 그 풍경이 몰고 올 한기를 견디지 못하고 얼어붙을 것이다. 미래에 대한 온갖 불안으로 상념에 젖어들며, 황량해진 기분에 더불어 무기력이 덮쳐오리라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다.
남편과 공원을 한 바퀴 다 돌았을 때쯤, 월동준비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안하게도 남편의 수다에는 집중하지 않은 채, 남은 2024년 두 달을 내년에 찾아올 마음의 혹한기를 대비하는데 보내야겠다고 다짐했다.
현재 나는 직업을 전환할지, 아니면 이대로 커리어를 이어갈지, 그 기로에 서 있다. 어릴 적에는 한 번 전공을 선택하면 바꿀 수 없다는 강박감이 강했던 탓에 나는 세상 경험을 다채롭게 해보지 못했다. 원체 겁이 많은 탓도 있었을 것이고, 지금도 유효한 약점이기는 하다.
하지만 10년 전의 나와 현재의 내가 다른 점은 지금 갈림길에 서 있는, 내가 처한 상황이 나를 끝없이 불안하게 할 가장 큰 요인이라는 것을 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불안을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나는 이제 그 방법을 알고 있다. 중요한 것은 발을 떼는 것. 문을 두드려보는 것.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이 한 문장이 나를 움직이게 한다.
사실 잘난 체하며 글을 쓰고 있지만, 지금도 굉장히 두렵다. 미지의 영역에 발을 들이는 것만큼 공포스러운 것이 없다고 생각하기에. 그럼에도 나는 결국 나아갈 것이다. 새로운 길, 또는 익숙한 길 어느 쪽으로든. 얼어붙은 다리를 억지로 움직여가면서, 꽁꽁 언 손으로 더듬더듬 길을 찾아가면서.
지금 쓰는 글은 온전히 나를 위한 글이다. 겁 많은 내가 꼭 결심한 대로 움직이도록 등을 떠밀기 위한, 월동 준비의 첫 단계다.
부디 이 겨울을 잘 견디어 내기를.
겨울은 이제 막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