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쏭달쏭 13개월 아기 육아
독박육아 마스터의 길을 어쩔 수 없이 걸어온 이래, 내내 확신하는 것 하나가 있다.
아기는 짐승이다.
내 자식이지만 솔직히 사람이 되려면(?) 한 참 멀은 것 같다.
단군신화의 곰 정도 되었다면 마늘을 먹고 100일 만에 사람이 되었겠으나,
처음 걷기까지 약 1년이라는 시간이 필요했고, 스스로 밥을 먹고 배변을 가릴 수 없으며
말은 서투른데다 할 줄 아는 말은 단순하고, 제대로 된 문장을 구사하기까지는 더 필요한 상황이니 말이다.
지금의 나 역시 아기 때는 짐승이었으리라.
한 마리 짐승과 다를 바 없던 나를 어른으로 성장하게 키워준 부모님이 실로 대단할 뿐이다.
하고 많은 짐승들 중에서 닮은 것을 꼽아보자면, 단연코 '고양이'라고 할 것이다.
지금부터 왜 그렇게 판단하게 되었는지 이유를 살펴보려 한다.
울음소리
동네에 길냥이가 많았던 곳에 살았던 무렵,
시시때때로 발정기가 찾아오는 고양이들은 밤마다 이성을 유혹하는 울음소리를 내곤 했다.
그 울음소리가 마치 아기가 우는 것처럼 들리기도 할 때가 있었는데,
실제로 아기를 낳아 기르고 보니 그 소리가 대단히 유사했다.
심지어 말 안듣는 돌 이후 아기로 성장한 지금도,
떼쓰면서 강성 울음 터뜨릴 때는 고양이같은 느낌이 든다.
관심을 보이는 듯 도망가기
100일 전까지만 해도 포옹을 좋아해서 누가 안아주건 좋아했는데,
낯가림이 시작되니 자주 보는 애착 대상(주로 부모 또는 보호자)이 아니면 울음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돌이켜보건대, 분명 생후 6개월 정도까지는 안아준다고 하면 좋아했고 거부감이 없었다.
한데! 배밀이를 터득하면서부터 요상한 행동을 보이기 시작했다.
마치 '나 잡아봐라' 놀이를 하듯 안아달라고 할 것처럼 굴더니, 막상 다가가면 쌩! 하고 도망가는 것이다.
그나마 배밀이 때야 발을 못 쓰니 이동반경 한계가 있어 금방 잡히곤 했지만
네발기기에 이제 걸음마까지 시작하니 매번 패턴이 '나 잡아봐라'로 변했다.
문제는 똥을 싸서 기저귀 좀 갈아주려고 하면 도망가는 점이다.
제발 도망가지마... 이불에 묻어나는 대참사를 일으키지 말아주렴!
물건을 어지름
고양이가 호기심이 많듯, 주변을 탐색하기 좋아하는 아기 역시 마찬가지다.
걸음마 학습을 통해 이동력이 확보되면서 집안 곳곳에 있는 물건을 빼고 잡아당기고 떨어뜨리고 난리다!
10분 이상 갖고 놀지도 않을 장난감을 보관함에서 다 빼고 헤집어 놓고 도망가는가하면,
애써 곱게 개놓은 손수건 보관함에도 접근하여 와르르 다 쏟고 도망간다.
제 키보다 높은 곳은 발꿈치를 들어 버텨보다가 잡히는 물건이 있으면 떨어뜨리고,
이제는 빨대컵도 실리콘 재질인 것은 기어이 돌려서 그 안에 담긴 액체를 다 쏟아버린다.
하루종일 애 잡으러 다니다, 놀아달라고 오는 아이랑 장난쳐주다가, 밥주고 씻기다가 보면 하루가 훅 간다.
박스를 좋아함
살림에 필요한 물건을 사서 정리해두려고 잠시 박스를 내려놓기가 무섭게
우다다다 걸어와서는 그 안에 쏙 들어가버린다.
아니 대체, 이 좁은 공간이 왜 좋은걸까?! 할 수 있는 것도 많지 않은데!
심지어는 다시 나갔다가 애착 장난감을 다시 갖고 와선 앉아 놀기 시작한다.
머릿속엔 온통 물음표, 와중에 귀여우니까 해탈한 미소까지 짓고 말았다.
다시 나왔다가 들어갔다가, 박스를 뒤집어도 봤다가, 급기야 그 위에까지 올라가서 탕탕 내려치기까지 했다.
진실로 내가 고양이를 낳은 것인가,
아니면 예전에 은혜 입은 고양이가 환생해서 내 딸로 태어난 것인가 싶었다.
카피캣
고양이가 성장 환경에 따라 주변 사물 & 동물의 행동을 따라하는 특성을 보이는 것처럼
돌 즈음부터 눈에 띄는 변화는 특정 행동과 말투를 기억해두었다가 따라하는 것이다.
애 by 애라 집마다 다르겠지만, 대략 기억나는 대로 목록화 하면 아래와 같다.
- 목욕 후 수건으로 몸 닦아주면 뺏어서 까꿍~ 놀이 하기
- 얼굴을 손으로 가렸다가 펼치며 까꿍! 말하기
- 허리가 아파 잠시 발로 물건을 치우면 본인도 쪼르르 와서 밟아보기(?)
- 슬리퍼를 잠깐 벗으면 자기도 쪼르르 와서 신어보기
- 손을 쥐었다 펴면서 죔죔, 고개를 돌리며 도리도리
- 손바닥을 귀에 대고 여보세요~ 전화 통화 흉내
- 주변에 나무, 풀만 보이면 '꽃' 이라고 말하며 손가락으로 가리키기
수염 난 애착인형
아쿠아리움 등 전시관을 가보면 마지막에 꼭 기프트샵이 나온다.
거기에 파는 상어, 물범, 인어공주 인형 등을 누가 사나 했는데... 아이를 키우고 나서야 깨닫게 됐다.
그게 나였다는 걸! (움파둠파 두비두밥! 라랄라!)
고양이가 부드러운 감촉을 주는 쿠션을 좋아하듯, 아기도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기어이 한 번쯤은 사줄 수 밖에 없는 상황이 찾아오게 된다.
지금도 우리 아이 범퍼침대 안에는 온갖 인형들과 극세사 담요가 널려 있다.
와중에 선호도는 또 애마다 다른데, 누가 백의 민족 아니랄까봐(?) 우리 딸은 유독 흰색 인형을 좋아한다.
낮잠 자고 나서 범퍼 울타리 해제를 해주면 자기가 좋아하는 흰색 인형 두 개를 잡고 나온다.
문제는 아직 구강기를 벗어나지 않은 관계로 뭐든 입가로 가져간다는 점인데,
그로 인해 주둥이가 튀어나온 강아지, 곰인형은 침 범벅에 마치 잔수염이 남은 것처럼 삼촌 인형이 돼버렸다.
자주 세척하고 빨아도... 착색이 돼 버려 더는 원형으로 돌아갈 수 없는 실정이다.
지금이야 영락없이 짐승같은 아기이지만, 잘 훈육해서 열심히 사람을 만들어야겠다.
나의 영혼과 얼마 없는 재산과, 저질 체력 등이 살살 갈리겠지.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던가.
열심히 키우다 보면 분명, 나중에 보람은 있을 것이다. 그렇게 믿어야 희망이 보이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