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가 어르신 장례 치르며 깨달은 것
철없던 어린 시절엔 '감히' 의문을 품을 생각조차 못했다.
어른들이 하니까, 모두들 제 역할이 정해져 있다는 듯 군말없이 따르니까!
한데, 머리 굵어지고, 본인도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여러 경험을 하고, 애를 낳고 보니까 관점이 달라졌다.
우리나라 제사, 참 이상하다!
태어난 이상, 인간은 생로병사를 피할 수 없다.
권력을 누렸다던, 그 옛날 중국 진나라 시황제조차 불로불사의 명약을 결국 못 찾지 않았던가.
언젠가 찾아올 죽음은 나이와 순서를 가리지 않고, 시도때도 가리지 않고 찾아올 수 있다.
청소년기, 중학생 시절 돌아가신 할아버지도 그랬고,
사회생활 시작하고 돌아가신 외할아버지, 몇 년 전에 돌아가신 할머니, 그리고 불과 며칠 전 외할머니까지.
영원한 건 없다지만, 부디 모두들 영면에 드셨기를...
친가, 외가 모두의 장례를 겪으며...
한때, 우리 집도 명절을 비롯해 증조부모 제사를 지내던 시절이 있었다.
그 땐 형제가 얼마 없는 아빠 중심으로 진행했고, 장녀와 장손은 나와 동생이라 이상함을 못 느꼈는데
외가쪽 장례를 몇 번 겪어보니 참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닥 나이를 중시하는 것 같지도 않고, 자손의 낳은 순서를 중요시 여기는 것도 아니고,
특이하게도 '첫째 아들의 첫째 아들의 첫째 아들...'을 강조한다.
이 무슨 조선시대 교조화된 유교 문화의 정수를 보는 것만 같았달까.
모친 쪽은 부친 쪽과 다르게 형제, 친척이 많은 편이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나이 차이가 10살 이상 족히 나는 사촌 동생, 언니, 오빠들이 있는데
장례문화지도사의 진행 하,
제사를 주도하는 건 엄마의 남자 형제 중 가장 첫째였으며, 그의 첫째 아들(장손)이었다.
그는 나의 사촌 동생이며, 무려 10살 이상 어리다.
동복으로 태어나, 본인의 손윗사람이 되는 누님들이 존재하며
사촌 중에는 그보다 나이가 많은 남자 형제가 한 명도 아니고 무려 여러 명이나 있는 상황이다.
그 중에는 나보다도 나이가 많은 형님들이 계신데도 거의 막내뻘인 아이가 제례에서 요직을 차지하고 있으니
나름 생각건데, 그 아이가 지고 있을 부담도 상당하지 않을까 싶다. 멀리 있어도 와야 하고...
내 위의 언니, 오빠들은 각자의 사정을 이유로 참여하지 않았다.
아마 스스로를 '없어도 되는 인력'으로 판단했거나, 절차가 번거로웠을 수도 있겠다 싶다.
제사를 싫어했던 이유
예전엔 우리 집에서도 제사를 지내긴 했으나, 나는 늘 그게 싫었다.
다행히, 딸자식인 나에게 음식을 하라거나 수발을 드는 강요는 하지 않았고,
아빠도 작은아빠도 동생도 모두 일손을 조금씩 거들어 돕긴 했지만 말이다.
일단, 할머니, 엄마나 작은 엄마가 준비하고 치우는 게 힘들어 보였다.
한식은 양념도 해야 하고 굽고 찌고 조리 과정이 복잡한데 그걸 여러 개나 동시에 만들어야 하며,
이맘 때 물가가 올라 과일값 등 재료는 또 얼마나 비싼가.
대인원이라도 한 번에 다 소화하지 못할 음식은 결국 냉장고행, 냉동실행이었다 잡탕찌개로 나오기 일쑤.
세상에 이런 비효율과 낭비가 따로 없다.
친척들이 모여 담소와 덕담 나누고 근황 묻고 교류한다는 취지는 좋은데, 형식에 넘 치중한 게 아닐까.
현재 우리 집은 제사를 지내지 않는다.
아빠가 중병으로 요양병원에 계시게 된 때부터 말이다.
작은 아빠도 계시지만, 굳이 계속할 필요성을 못 느끼는 지 제안도 없고 현재에도 하지 않는다.
한데, 옛부터 했던 습관을 아예 버리진 못하겠는지, 엄마는 명절 때마다 음식을 한 가득 하곤 하신다.
여전히 반찬 가짓수는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많지만, 그래도 제사 지내던 때보단 한결 간결해진 편이다.
우연의 일치인건지, 현재 남편 집안도 제사를 지내지 않는다.
종교적 이유도 있겠지만, 육친께서 돌아가신 이후로는 명절마다 절에 상차림을 위임해서 진행한다.
하니, 준비하고 치울 부담도 없고 간소하게 끝내곤 한다.
그러다보니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제사, 없애려면 충분히 없앨 수 있는 거잖아?!
요컨대, 추진할 의지만 있으면 가능한 것 같다.
간소화 하거나 아예 하지 않거나.
아빠가 그리 되신 이후로...
지금 우리 집은 제사를 지내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