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와 장례식장에 가니 생긴 일

by 단신부인

외조부께서 돌아가셨을 때는 아이가 없었는데,

올해 외할머니 상을 치를 땐 아기를 차마 두고 올 수 없어 남편과 함께 동행했다.

신생아 때부터 엄마인 내가 하루 약 12시간 이상 전담해서 돌보다보니,

당일 잠깐도 아니고 하루 이상 떨어져 있는다는 게 쉽지 않은 선택이었고,

더구나 상주 가족 입장으로, 할머니 모시는 자리에 찾아뵙지 못하면 크게 후회할 것 같아 먼 걸음을 옮겼다.


맘같아서는 돌아가신 당일 새벽에 바로 출발하고 싶었으나,

육아 전선에 뛰어든 나를 엄마와 외가 어르신들이 배려하여 그 다음날, 입관 시간 전에 도착했다.


아직 '죽음'이라는 개념을 모르는, 천진난만하고 순진하기 짝이 없는 우리 아이는

이 여정이 그저 놀이의 연속성인 줄로만 알고 분위기에 맞지 않게 즐거운 모습이라 참 이질적이었다.


바닥에서 재울 수 없기에...


이전에 장례를 치를 땐, 자리를 지키는 가족 친지 모두가 바닥에서 자고 새벽 일찍 일어났는데,

아직 뭣도 모르는 아이를 여기서 재울 순 없어 숙소를 예약하는 길을 택했다.

가급적이면 낙상 위험이 없는 온돌방에서 재우고 싶었으나,

급하게 예약을 잡는 바람에 원하는 숙소엔 객실이 없었고 결국 널찍한 침대가 있는 다른 숙소를 택했다.


아마 관광지 근처였다면, 영유아 욕조, 침대가드 등 편의시설이 있었겠으나 그런걸 따질 여유가 없었다.

그나마 급히 찾았던 곳은 널찍한 침대가 있는데다 식장과 10분 이내로 멀지 않아 오가기 편했다.

그저 신이 우리를 도왔구나! 싶어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아직 어린 자녀와 어디 나가긴 쉽지 않으니까.


제발, 가만히 좀 있어...


평소 매일 보는 얼굴이 엄마인 나 뿐이기에,

아직 어린이집 같은 시설에 다니지 않아 많은 사람을 만나고 볼 기회가 많지 않기에,

MBTI로 따지면 EEEE 성향의 울 아기는 장례식장이라는 환경에도 아랑곳 앉고 온 테이블을 휩쓸고 다녔다.


한데, 집안 어르신들, 사촌들은 외려 그게 신선하고 마냥 귀여웠나보다.

눈물 많은 친정엄마도 입관 때, 조문객 맞을 때만 해도 엉엉 우시더니,

그 외 여유 시간엔 손주를 보며 한결 맘을 놓으셨다.


아이에겐 낯선 환경이었지만 엄마 & 아빠와 같이 왔기에 맘을 놓은 탓일까.

돌 지났을 무렵부터 걷기 시작하더니 테이블, 의자, 방 등을 연신 누비고 다녔고,

나와 아이 아빠는 아이를 계속 잡으러 다녔다.

내가 지치면 사촌동생들 또는 다른 친척들이 종종 거들어주었다.


심심해하는 것 같으면 안고 나가서 근조화환에 꽂힌 꽃을 보여주었고,

조문객이 좀 덜 오는 여유 시간대엔 잠깐 근처에 나가 산책을 시키면서 에너지를 소진시켰다.


그러나 낮잠을 자야 할 때를 놓쳤음에도 아이는 에너자이저처럼 쌩쌩했고 지치지 않았다.


새벽의 배앓이


이대로 계속 깨어있으면 나중에 잠투정이 심해질 것 같아, 숙소 입실시간에 맞춰 식장을 잠시 떠났다.

아니나다를까, 차에 태우자마자, 카시트 벨트가 채워지자마자 5분도 안돼서 꿈나라로 빠지는 울 아기.

피곤했으면서 무리한 것이다.


원래 계획 상 새벽 5시까지 오라고 해서 4시쯤 일어나면 되겠지 싶었고,

자정이 다 돼서 아이도 재우고 불 끄고 잘 자고 있었는데...

별안간 새벽 3시에 아기가 깨더니 계속 울기 시작했다.


이가 날 때라 이앓이하나 싶어 토닥여줬는데 누우려고 하지 않고 몸부림과 짜증섞인 울음을 토했다.

직감적으로 이앓이나 자다가 놀라서 깬 게 원인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단기간에 끝날 것 같지 않아 결국 안아들고 토닥였고, 떡뻥 간식도 주니 조금씩 진정하는 듯 했다.

조금이라도 잠을 자보려 했던 나의 계획은 저 멀리 건너가버렸다.


진정시키고 나서 물도 좀 주고 배를 살살 만져주니 눈을 감을랑말랑 하는 게 보여 눕혔고,

그 후 10분도 되지 않아 대변의 향기가 솔솔~


아! 배앓이였구나...


당일 변 횟수가 오전 뿐이었다는 걸 간과해버렸다. 오랜만이기도 했고...

아직 어려 말로 설명할 수 없으니 소통의 오류가 생긴 셈이다.

엉덩이를 깨끗이 씻겨주고, 보송한 기저귀에 따뜻한 옷까지 입혀주니 그제사 편해졌나보다.


그저 여행이었다면 더 재울 수 있었겠지만 그럴 여유는 없었다.

아이가 있는지라 선산에 모시기 직전까지만 외가 친척들과 동행했는데,

마지막 인사를 드리기도 전에 어느새 차에서 쿨쿨 잠이 들어버렸다.




귀성길엔 별안간 비가 많이 내렸다.

앞유리 발수코팅을 열심히 해놓지 않았더라면 운전길이 훨씬 무서웠을 것이고,

둘 다 잠을 충분히 못 잔 상태에서 남편 운전 시키느라 미안했고 또 무사히 집에 오게 도와줘서 감사했다.


아이는 잠들어도 집에 돌아와서 정리는 해야 한다.

오전까지도 비가 오고 습해서 빨래와 함께 건조기까지 돌리고 한숨 잠들었는데...

일어나고 나니 오후께는 언제 그랬냐는 듯 햇빛이 쨍쨍 내리쬐고 있어 허탈했다.


인생도 날씨도 참 모를 일이다.

장례식장에 아이를 데려 간 건 이번이 처음이나, 아마도 내생애 잊지 못할 경험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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