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덧을 견디고 싶어 애쓰는 매일
난임의 벽을 가까스로 넘었건만, 임신 초반에 위기가 찾아왔다.
영어로는 Morning Sickness 라고 했던가.
임산부의 70~80%가 겪는다던, 입덧이 찾아온 것이다.
모친께 여쭤보니 당신께서는 나와 내 동생을 가질 적에 특정한 먹거리가 당겼고,
심하게 앓지 않았다고 하였으나 자식이라도 예외가 있는 듯 싶다.
입덧은 임신 4~5주부터 시작해서 12주가 지나면 서서히 사그러들기 시작한다고 하는데,
심한 경우는 출산 전까지 계속되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동결배아를 이식하고, 임신확인서를 받았던 때가 5주 2일이었는데
임신낭(아기집)을 확인한 이후부터 속이 미식거리기 시작하더니 자각 증상이 여실히 느껴졌다.
입덧의 종류와 증상
울렁거림을 기본으로 토덧, 먹덧, 양치덧, 침덧 등 다양한 양상이 있다.
하나만 오는 경우도 있으나 여러 개가 한꺼번에 겹치는 경우들도 없진 않다고 한다.
내가 임신하기 전, 입덧을 겪던 동료 직원이 말하던 표현이 직접 겪고서야 실감이 됐다.
가만히 있는데도 차멀미를 계속 하고 있는 듯한 느낌,
강하게 흔들리는 놀이기구를 타는 것처럼 장기가 한 번 들렸다가 내려진 듯한 거북함,
언제 어디서 터질 지 모르는 활화산 같은 위장.
마치 게임 스타크래프트1에 나오는 산 뿜는 히드라리스크가 된 기분이다.
나에겐 토덧이 가장 강하게 왔다.
조금이라도 수틀리면 우웩- 하는 소리를 낸 지 얼마 되지 않아 역으로 솟구쳤다.
토하면 치워야 하니까, 외향형인 성격을 참고, 당분간은 두문불출하기로 했다.
어쩌다 바깥으로 나가야 할 때는 입에 물고 있을 신 맛의 입덧캔디와 흰 봉투 2장을 꼭 챙겼다.
임신 전보다 비위가 상당히 약해진 듯 했고, 마치 위가 입이랑 바로 연결된 것처럼 토하는 속도가 LTE 급이다.
휴직 종료 시점이 다가와서 회사 담당자와 전화 통화하는 와중에도
눈치없는 위장은 토하고 싶다며 거부하기 버거운 아우성을 쳤다.
결국 통화가 어려울 것 같다며 급히 종결하곤 채팅봇처럼 메신저로 소통할 수밖에 없었다.
어떤 음식에 어떻게 거부감을 일으킬 지 예측하기 어려워 먹는 게 조심스럽다.
하루에도 몇 번씩 게워내는 경우가 있었다.
그렇게 좋아하던 순대국도 당분간 먹지 못하게 됐다.
돼지를 삶는 등 특정한 음식 냄새가 전보다 역하게 후각으로 들어오니 울렁거림을 자극했다.
먹은 지 한참이나 되어 소화 중인 것도 조금이라도 거슬리면 위로 올라왔다.
위장 깊숙이 있는 걸 어떻게든 끄집어내려고 복잡한 연동운동을 벌이다 못해 콜록거리면,
위산에 섞인 토사물이 입으로 나오는 게 아니라 콧구멍으로도 나올 수 있음을 알았다.
산성에 절여진 방울토마토가 비강을 넘어오는 순간 알보칠을 바른 것처럼 쓰라리고 아파 눈물이 찔끔 나왔다.
그러고도 남은 찌꺼기들은 코를 풀어 해결해야 했다.
먹덧은 의외로 토덧과 불가분의 관계인가보다.
겨우 입맛이 돌아 먹은 것을 다 뱉어내고 나면, 위장이 비어 허기가 진다.
한참 홍역을 치른 변기, 세면대를 다 닦아내고 나면 빈 속으로 인해 울렁거림이 시작된다.
저녁을 먹고 느즈막히 잠을 청할 때가 되니 소화가 다 되어 위가 비게 되는데,
그 공백을 못참고 느글거림이 시작되더니 빈 속에 또 뭘 끄집어내려는지 비틀림이 생긴다.
물을 양껏 먹을 수도 없는게 물을 먹고도 근근히 토하곤 해서 무섭다.
탈수가 오면 안되니까, 뱃속 아가는 오롯이 나를 의지할 수밖에 없으니까
목 마를 때마다 조금씩 축이는 식으로 한 모금 단위로 마시면서 버티는 중이다 .
뭘 먹고 이를 안 닦을 수도 없는데, 서럽게도 양치덧이 찾아왔다.
처음엔 치약 문제인가 싶어 바꿔봤는데 아무래도 물로 입 안을 헹궈서 뱉는 과정이 문제인가보다.
나름 요령이 생겨 퉤- 하는 동작을 덜 하고 가글하고 주르륵 비우는 방식으로 하니 덜 역겹게 느껴진다.
입덧 완화 노력
임신 전에는 먹을 수 있었던 것들이 입덧 시작하고 나니 먹을 수 없게 됐다.
식도로 넣는 건 내 자유지만, 조금이라도 거부감이 일어나는 순간 토하기 일쑤다.
잔뜩 토하고 나면 현타가 찾아온다.
혹여 나로인해 아기한테 자극이 되고 문제가 생길까봐 걱정됐다.
아직 태아는 2.75cm 밖에 되지 않는 작은 젤리곰 사이즈인데...
위장이 수축 이완을 하는 동안 모체가 아파하면서 고통스러워하는 것도 아기에게 전달되는 건 아닌가해서
잔뜩 토한 날에는 미안한 마음에 눈물이 주르르 흐르곤 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던 건 아니다.
SNS 정보 등을 부던히 찾아보고 시도해봤다는 방법들을 나도 최대한 쓰려고 했다.
신 음식을 먹는 건 임시방편처럼 느껴졌다.
토마토를 토했고, 블루베리와 귤을 토했으며, 오렌지 주스도 간간히 토했다.
미음처럼 묽게 끓인 죽은 아침 입맛이 없을 때 허기를 면하는 정도로 족했다.
견디다 못해 약 3시간에 걸쳐 수액도 맞아봤지만 효과는 미미할 따름이다.
그나마 효과를 본 건 자기 전 먹는 입덧약인데, 9~10주차가 되니 오후가 되면 다시 미식거린다.
아예 안 먹는 것보단 나은데, 먹고나면 노곤하고 졸려서 아침에 일어나기가 곤혹스럽다.
벌써부터 이리 힘겨우면 나중에 출산의 고통은 어찌 버텨내나 싶다.
나보다 먼저 아이를 낳은 엄마 선배님들이 그저 대단할 따름이다.
부디, 시간이 해결해줘서 12주 딱 지나가는 순간 입덧이 멎어들었으면 좋겠다.
#임신초기 #초산 #입덧